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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두 Mar 22. 2024

남의 유서를 본 적이 있나요?

그날의 기억은 아주 단편적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난 누구보다도 쉬는 시간을 기다리던 개구쟁이 아이였다. 복도든 운동장이든 쉬는 종 땡 하면 부리나케 교실밖으로 나가 가장 즐기던 공놀이, 바로 축구를 위해서다. 당시엔 축구공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반에 한 명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더욱이 빨리 뛰쳐나가 운동장을 향해 축구공을 던져야만 했다. 왜냐? 나를 비롯한 축구에 미친 파블로프의 개들이 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 운동장에 나가기 전, 아무도 없는 우리 반에서 친구와 축구를 하고 있었다.  잘못 찬 공은 교탁 앞 책상을 건드렸고 그 위의 종이와 필통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뒹구는 물건을 줍는 그 순간, 어느 종이에 '유 서'라는 글씨를 마주했다. 그리고 아래 빼곡히 적힌 손글씨를 발견했다. 나는 의심할 틈도 없이 종이를 들고 교무실로 냅다 뛰었다. 


 담임 선생님은 입단속과 동시에 A가 어딨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그제야 유서의 주인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말 수가 적고 소심했던 A였다. 학교 곳곳을 뛰어다니며 A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교실 맨 앞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 뒤통수만이 생각났다. 나는 불안했다. 어딘가 죽어있을 것만 같은 끔찍한 A의 모습이 상상됐기 때문이다. 끝끝내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자 여자화장실만을 의심하며 가쁜 숨을 몰았다.


 불안은 안도로 바뀌었다. 좌절스러운 마음과 함께 교무실로 향하자 선생님에게 안겨있는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예비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에 안 나오고 뭐 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뇌까렸다. 단 몇 분 전과 다르게 북새통인 교실. 그러나 그 친구의 존재감은 똑같았다. 아무도 그이가 없다는 사실은 출석이 시작되서야 가닿았다.  


  종래시간, 선생님께서는 서로 챙겨주고 점심도 같이 먹으라며 빈자리의 A를 다독였다. 다음날 그녀는 평소처럼 등교했지만, 나의 지질한 성격 탓에 어떤 말도 걸지 못했다. 나는 괘념에 빠졌다. 어제의 진실을 아는 이가 나밖에 없음에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사건에 심란해졌기 때문에. 결국 멀리서 그녀가 괜찮은지 수시로 관찰만 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사춘기가 한창이라 괜히 오해받기도 싫고 남자 무리랑 어울리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어느 날 나를 비롯한 반아이들이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 자리에 없을 때 화장실에 간 건지 밥은 누구와 먹는지 예리함과 아둔함의 시선을 오가며 가끔은 노파심에 불안했는데, 가까이서 본 그녀는 영락없는 소녀였다.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철없는 남아이의 서투른 리프팅 실력이 그녀의 미소를 지켜줬구나.


 그 친구는 여전히 자신의 유서가 왜 선생님께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아주 짧은 그날의 기억을 더듬게 된 이유는 얼마 전 우연히 그녀의 SNS를 보았기 때문이다. 친구와 릴스를 찍고 있는 그녀. 몰입의 표정, 약동한 춤사위,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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