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아 May 22. 2023

간호사 지침서

병동에서 일하며 이리저리 치이고, 주저앉기도 하며 쌓은 경험들



처음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나는 일머리가 없고 빠릿빠릿하지 못해 병원에 입사하고 특히나 미움을 샀던 티눈 같은 간호사였다. 병원이 많이 바쁘기도 해서 집에 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고, 밤에 다리를 안 올리고 자면 다음 날 종아리가 저리고 퉁퉁 부었다. 일 할 때에도 압박스타킹은 필수였고 말이다. 욕도 많이 먹었고, 환자한테도 참 많이 데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누가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응원한다.

그렇지만 티눈 같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간호사로서 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처지에 있기에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다는 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라는 걸 깨달아 최대한 함께 즐겁게, 그리고 덜 상처받으며 일했으면 하여 이렇게 펜을 들기에 이르렀다. 안 그래도 힘든 환경에서 으쌰으쌰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면 그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간호학과에 진학하는 이유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라는 단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일 것이다. 누군가는 병원에서의 좋은 경험(임종, 존경 등)을 바탕으로 꿈을 갖고 진학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모님의 의견이 반영되어 간호대학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계기와 과정은 다르다 하더라도 막바지에 간호사 국가고시를 보는 것과 졸업 후 병원에 입사하는 것은 대부분이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어찌 됐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이 길을 택한 것일 텐데 병원에 입사해서 이리저리 치이고, 병이 생기고, 속에 쌓인 것을 토해낼 듯 울어보면 어느 날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간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렇게 그간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온 날을 회상하며 그저 살기 위해 임상*을 떠날 결심을 한다. 이 또한 계기가 어떻더라도 말이다. 환자를 안쓰러워하고 봉사 정신이 출중했던 사람이라도 병원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임상에서 근무해 본 간호사라면(특히 대학병원) 탈임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모든 간호사가 탈임상을 추구하니 병원의 인력은 점점 더 부족해져 가고,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정책(간호대 정원 확대**)을 낸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결과는 반복된다.

간호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임금 개선, 처우개선, 업무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법제적 조치 등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러한 해결방안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업무가 부담할 만하고, 임금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환경과 전문인의 기본적인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환경이 개선된다고 할지라도 도루묵일 것이다. 실제로 대학병원의 꽤 한가한 병동에서의 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로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참 각박해서 일터가 아니어도 치일 곳은 많고, 상처받을 일도 울 일도 참 많다. 서로서로 안쓰러워하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고자 하면 좋지 않을까? 편견 없이 말이다.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증상에 따른 간호를 수행하는 일은 꽤나 즐겁다. 솔직히 병원에 대해 잘 알고, 질병의 기전이나 증상을 아는 의료진으로서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했을 때 유용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간호사의 장점이다. 

그에 더해 아프면 병원비를 할인받아 치료받을 수 있고, 어찌 됐든 승진을 거듭하면 수간호사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 또한 간호사는 전문직이고, 은퇴도 꽉 채워 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하고 나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장점들을 죄다 내버리게 하는 단점이 너무나 치명적이라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건 없을 것이다.


이 글은 과거에 간호사 일을 시작하던 나에게 쓰는 위로글이자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초년생을 위한 비법서이기도 하며 현재 간호사 일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위한 헌정글이다. 사회생활, 즉 돈 버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병원에서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그간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한 자 한 자 적어 넣었다. 내가 진짜 똑똑하고 잘났고 임상에 있어 천재적이기에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습할 때 궁금했던 것들, 내가 근무하면서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한 것들을 혹시라도 나처럼 궁금해할 이를 위해서 적어 내려간 것이다. 중간중간 본인은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싶은 부분도 분명 있을 테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쓴 의도는 분명할 것이라 확신하기에 당신의 스타일에 맞춰 부디 무탈하게 직장에 적응하길 간절히 바란다. 정말로 진실로 바라는 것은 간호사 선생님들의 진정한 행복이다. 부디 모두 행복하셨으면 한다.


나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어리숙해 사회생활을 하며 배운 부분이 정말 많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그대만큼은 그런 상처를 덜 입길 바란다.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짧은 인생인데 가슴 찢어지도록 후려치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피해 갔으면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절대 정답은 아니다. 그러니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본인에게 맞게 변형해 가며 나중에 자신을 돌아봤을 때 흡족했으면 싶다.




*임상: 환자를 진료하는 환경을 말한다. 간호사는 병원 생활을 임상이라고 표현한다.

**간호대학 정원 확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보건복지부 지휘 아래 5개년 사업을 반복하며 입학정원을 늘려왔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 대한간호협회, 교육부가 합심하여 간호대 편입생을 원래의 3년 교육에서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계획을 내세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