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원서로 읽는 날이 올 줄이야.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야 원서를 읽는 즐거움을 이미 알겠지만 나는 처음이다. 아이 좋아라. 수상 소식 전에 읽은 작품이 있지만 ( 생각보다 별로 없어 또 한 번 놀란 건 비밀이다. 쉿) 그때는 원작을 읽는다는 뿌듯함은 없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는데 읽을 책이 없었다. 우리 집 책장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한 권도 없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 소설은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문학의 발전에 자그마한 이바지도 하지 않았구나. 죄송한 마음이 일어 이번에 몇 권 구입하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주문한 책이 왔다.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글이 인쇄된 띠지가 둘러져있다. 오~ 영롱하도다.
<흰>을 가장 먼저 읽기로 했다. 한강 작품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흰>에 관련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다. 주르륵 훑어보니 여백이 넓고 글도 듬성듬성해서 선택했다.. 속표지와 목차를 지나 글이 시작되었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
강보에서 수의까지,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사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건지 등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겠구나 예상을 해본다. 책장을 넘기는 대신 책장을 덮고 ‘흰’에 대한 나의 목록을 만들어본다. 직전에 본 작가의 목록을 따라 하지 않을까? 기우다. 그럼 그렇지. 책장을 덮자마자 머릿속에 남은 것은 강보와 수의뿐이더라. 내 머릿속 지우개의 어마무시한 성능에 서글픈 마음이 들지만 이번에는 다행이다 싶다. 안 그랬으면 한강 작가와 똑같은 목록을 만들었지도 모른다.
‘흰’ 이라서 일단 영어로 ’white’가 떠올랐다. 프랑스어, 독어, 일본어 등등의 외국어로 ’ 흰’을 알았으면 줄줄이 떠올릴 뻔했지만 아는 게 없다. 이 것도 다행이군. 이 작품의 영어 번역판 제목은 무엇일까? ’white’이라면 왠지 부족한 느낌이다.
다음으로 ‘구름, 솜사탕, 신부, white rose, 국화꽃, 운동회 때 백군, 하얀 양말, 두부, 가래떡……’이 떠오른다. 나의 ‘흰’ 목록은 구름 올려다보고 꽃 보며 뛰어놀고 먹는 걸로 이어진다. 지금 내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 마음이 휘청거릴 때는 어떤 ‘흰’들이 떠오를까.
<흰>을 읽기 시작한다. 예전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아리고 아팠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나의 ‘흰 ‘ 목록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