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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08. 2024

<서평> '극우 정치인' 아베는 어떻게 장기집권했나?


아베 신조, 역대 일본 정치인 가운데 한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아마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본 정치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싫어한다고 해서 일본 사람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이다. 한국에서 싫어하는 일본 사람일수록 일본에서는 존경을 받는다. 원망과 증오로 점철된 한일 근현대사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베 신조는 이념적으로는 극우다. 전후 역대 일본 총리를 이념의 성향에 따라 늘어놓으면,  그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와 함께 가장 오른쪽에 자리한다.



그가 1차 정권(2006.9~2007.9)과 2차 정권(2012.12~2020.9)을 합쳐 8년 9개월 총리를 역임했다. 전전과 전후를 가리지 않고 일본 역대 총리 중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코로나 대책의 실패와 지병의 재발로 최장기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인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 지원유세 중 통일교 신자의 아들에게 총을 맞고 숨졌다. 이 또한 전후 총리 출신으로선 처음이다. 이래저래 아베는 일본 정치에서  얘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아베 신조 회고록>(중앙공론신사, 하시모토 고로·오야마 히로시 묻고 정리, 기타무라 시게루 감수, 2023년 2월)은, 아베가 집권 기간 중 어떤 정책을 펼쳤고 어떻게 장기정권을 이뤘나를 인터뷰 형식으로 밝힌 책이다. 하시모토 고로 <요미우리신문> 특별편집위원과 오야마 히로시 <요미우리신문> 논설부위원장이 인터뷰를 해 정리하고, 경찰 출신으로 아베 정권에서 내각정보관과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역임한 기타무라 시게루가 감수했다.



두 저널리스트는 아베 정권이 끝난 뒤인 2020년 10월부터  1년 동안 모두 18회 36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472쪽의 분량으로 정리했다. 그들은 아베의 공과에 대해가차 없이 질문했으나 인터뷰의 주도권은 역시 말하는 사람이 쥘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인터뷰라도 말하는 사람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각정보관과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지낸 아베의 측근 기타무라가 책을 감수했다는 점은, 외교·안보뿐 아니라 내정과 관련해 미묘한 내용은 철저하게 걸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베 총리, 아베 정권에 관해 일반인이 알고 싶은 내용을 대체로 빠짐없이 담고 있다. 암살되면서 아베가 자신의 입으로 더 이상 얘기할 기회를 빼앗겼으므로 이 책은 아베 정권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 것이 분명하다. 2월 말 한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이 책은 마지막 장(헌정 사상 최장의 장기정권이 실현된 이유)을 포함해 모두 11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은 사퇴 원인이 된 2020년 코로나 확산과 그에 대한 대응이 주제이고, 2장부터 10장까지는 연도 별로 서술되어 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기 정권의 이유에 관해, 아베는 1차 정권에 대한 반성을 가장 첫손가락에 꼽았다. 대표적인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차 내각은 매우 이념적인 정책이 많았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역시 일상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부분에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제2차 내각에서는 경제정책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93쪽)



그는 이런 말도 한다. 



"외교의 기본은 리얼리즘입니다.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는 외교를 해도 아무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은, 어떻게 국익을 확보할까를 둘러싸고 각축을 하고 있습니다. 경직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국 나라가 쇠퇴합니다."(324쪽)



가장 우익적인 아베가 경제정책을 중시하고 실리외교를 강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걸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꼭 배워야 할 대목이다.



한일 역사 갈등,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정책과 관련한 그의 부정적인 생각도 수차례 나온다. 문 대통령의 이름을 거명하며 혹평하는 부분도 두 군데 정도 있다. 강제동원과 관련한 대목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일을 정권의 부양 재료로 쓰고 싶었을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확신범"이라고 주장했다.  또 아베는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반도체 재료 수출 금지 조치 발동을 강제동원 판결 뒤 아무런 해결책을 취하지 않은 문 정권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실토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강제동원 판결과 수출 금지 조치는 관련이 없다고 한 것과 전혀 다른 자백이다. 그는 "두 가지(강제동원 판결과 수출 금지)가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한국에 강제동원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는 또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관한 일본의 우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폄하했다. 아베 정권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베트남 회담을 전후해, 맹렬하게 미국 쪽에 강경론을 주문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권 입장에서 보면, 치열한 평화 프로세스 반대 공작이다. 아베가 회담 전에 직접 트럼프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야치 국가안전보장국장을 파견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를 통해, 북한이 완전한 핵 포기 약속을 하지 않으면 어떤 진전도 이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문했다. 어떤 때는 미국 국무성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들과 연계해 트럼프에게 대북 강경론을 주입하려고 노력했다고, 아베 스스로 털어놨다. 대표적인 인사가 존 볼턴, 폼페이오 같은 사람이다. 



한국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대와 방해는 아베 정권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의 어느 정권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일본 국내 정치 분야에서 눈길을 끈 것은, 아베의 관료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재무성 관료들을 싫어하고 경제산업성 관료를 좋아했다. 관료 조직의 조직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특히 재무성 관료는 "세금의 증감만 신경 쓸 뿐이고, 실물 경제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 그의 내각에서는 경제산업성 출신의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이 내정과 외정을 가리지 않고 실세 노릇을 했는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금지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이마이 비서관이었다고 아베는 밝혔다.   



예를 들어, 재무성 관료는 몇 명이 찾아와도 한 사람만 말하고 다른 사람은 메모하며 정보 수집에 힘을 쏟고, 경산성 관료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외무성 관료는 담당 지역에 따라 경쟁이 심하고 개인플레이가 강하다고 말했다. 아베의 관료 조직 평을 들으며, 관료의 힘이 일본보다는 약하지만, 우리나라도 대체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아베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만난 외국 정상들에 대한 평, 일본 정치가에 대한 평 등, 재미있는 내용이 제법 나온다. 화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포장해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인터뷰 형식의 회고록이라는 한계를 감안해서 읽는다면, 아베 개인뿐 아니라 일본 정치, 일본 사회의 속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베가 장기 집권을 한 것은 일본 사회가 우경화하는 속에서 극우적인 이념의 소지자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극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쉬운 경제를 중시하며 지지 기반을 강화했고, 외교에서도 이념을 앞세우면서도 뒤로는 실용을 중시했다. 아주 교활하고 현실적으로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려고 힘썼다.



한국 사람으로서 아베라는 일본 지도자를 절대 좋게 평가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고려도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마구 밀어붙이는 윤석열 대통령과는 종류가 다른 지도자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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