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광주민주화운동, 시민
일본 주류는 한국의 계엄 사태를 삐딱하게 보고 있습니다. 정치 혼란이고, 친일 정권의 붕괴로 한일관계가 나빠질 것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사히신문>에 한국 민주화운동을 연구한 도쿄대 교수의 긴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주류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한국 상황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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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엄령과 싸우는 사회학자 마나베 유코 씨
2024년 12월 20일 5시 00분(아사히신문)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불쑥 선고한 비상계엄은 이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시민과 정치인들이 영화를 통해 군인으로 나서 단 몇 시간 만에 철회로 몰고 갔다. 사람들은 왜 행동했을까. 할 수 있었을까. 이웃 나라의 민주화의 걸음을 조용히 바라보고, 기대어 온 마나베 유코씨에게 물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무슨 생각을 했어요?
저는 한국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회와 30년간 교류하고 연구했습니다. 뉴스를 보는 순간 희생자와 유족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와르르 떠올라 윤 대통령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됐습니다. 그때 6월 항쟁에서 최루탄을 맞고 돌아가신 이한열 씨의 어머니가 예전에 저에게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많은 희생 위에 올려졌다. 그 민주화에 책상다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희생자의 목숨을 헛되이 훔치는 도둑 같다고.
군을 이용해 인권을 침해하려 했던 이 비상계엄은 희생 위에 쟁취한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로 그의 말을 빌리자면 도둑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비상계엄'은 조기에 수습되었습니다. 국회에는 많은 시민들이 빠르게 달려와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왜 이런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 역사에서 비상계엄령이 마지막으로 내려진 것은 80년 5월 17일. 그리고 계엄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많은 희생자를 내는 광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 바로 국회로 간 것은 이 시대를 체험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계엄령에 처하면 시민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계엄군이 광주에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경험하고 알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여당 일부를 포함한 190명이 모여 만장일치로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고 군은 철수했습니다.
아는 한국인 연구자가 SNS에 이렇게 적었어요. 모인 의원들 상당수도 민주화 투사로 군사독재 시절에는 투옥과 고문을 마다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해 왔다. 현재는 보수 쪽에 있는 의원도 있지만 민주화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판단력과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몇 번이나 사법시험에 떨어져 공부만 하던 윤 대통령에게는 의원들이 그 시간에 담을 기어올라가면서까지 집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라고. 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달려온 시민과 정치인의 재빠른 행동이 계엄령을 철회시켰다는 것이군요.
아니요, 사실 그 두 부류만이 아닙니다. 국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커피와 만두 등을 대접하는 시민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주 사건 때 시장 아주머니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대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동정신이라고 부릅니다. 행동하는 정치인과 시민,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이라는 3자가 존재하는 현재의 모습에 바로 광주 사건의 경험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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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계엄령을 내린 전두환 시대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한국에서 히트한 것도 이번 시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서울의 봄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근 한국영화라는 것은 광주사건을 그린 '택시운전사 약속은 바다를 넘어'나 '박하사탕' 등 외면하고 싶은 과거나 군사독재 시대의 처참한 역사 같은 현실에 일어난 사회문제에 파고드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 왔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엔터테인먼트가 가져온 파급력도 넓은 의미에서 광주 사건의 교육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사건은 44년이나 전의 일이지만, 그 무게나 경험이 남아 있군요.
광주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져 왔습니다.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1987년 민주화 선언, 이듬해인 1988년 사건에 관한 청문회가 열린 뒤에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사건 직후인 80년 5월, 6월과 서울에서는 투신과 분신으로 인한 자살이 잇따랐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보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골라 중인환시 아래서 항의의 죽음을 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은 그런 비참한 죽음을 직간접으로 봐온 사람이 많은 세대입니다. 아는 영화감독은 불덩이가 된 사람이 몸을 던져 자신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는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란한 한국과는 다른,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민주화로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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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건을 소재로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씨가 올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된 것도 어딘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광주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묻으려던 그 이전의 사건, 예를 들어 제주도에서 경찰 등이 주민을 학살한 48년 4.3사건이나 한국전쟁 때 일어난 사건 등을 서서히 파헤쳐 나갔습니다.
한강 씨가 소년이 온다를 쓴 뒤 광주 사건보다 30여 년 전에 일어난 4.3사건을 소재로 한 <이별하지 않는다>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는 촛불집회가 계기가 되어 파면되었습니다. 당시와 지금의 공통점이나 다른 점이 있나요?
계엄령 해제 이후에도 윤 씨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광장을 가득 메운 것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비폭력에서 이길 수 있었던 자신감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감에서 행동할 것입니다.
반면 지금까지와는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하나는 이번에 노동가 같은 민중가요가 아니라 K-POP이 나오고 사람들이 응원봉을 흔드는 가운데 젊은 여성이 눈에 띄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박 정권을 무너뜨리기까지의 운동은 여성이 주변화되는 등 남성중심주의적이고 마초적인 면이 강했다. 저는 이것을 87년 프레임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여성운동의 고조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번부터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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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이유를 "(북한에 복종하는)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문제를 비롯해 좌우 이념 대립의 심화가 지적되어 왔습니다.
한국에는 지금도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를 수립한 48년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 세력에 붉은 딱지를 붙이고 사회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제정한 법인데, 이는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회 양극화를 제도로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고, 거기에는 과거 일본도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양극화에 박차를 가해 온 요인은 민족이 분단된 현 상황에 있습니다. 6.25전쟁도 4.3사건도 희생자들은 대미 종속적 이데올로기 내전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민주화운동 속에서 알려졌습니다. 국제정세나 대통령의 성격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음모론이라고 뭐라 해도 팽팽한 대립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분단이 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웃이기도 한 일본은 그런 한국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저는 일본 언론이 한국 정권을 친일 반일 이원론으로 일도양단해 보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화가 납니다. 일본 마음에 드는 친일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매우 유치한 이원론입니다. 한국에서는 과거 일본 제국에 친화적이고 그 시대부터 기득권층이나 기득권을 누리는 구조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을 친일이라고 부릅니다.
상대국을 모르고 외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위의 시선으로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문제도 피해가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과제는 휴전에 불과한 한국전쟁을 미국과 북한 사이에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단 체제는 계속되고 국가보안법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다시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일본도 한국전쟁의 종결을 환영해야 합니다.
(듣는이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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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베 유코 사회학자(한국민주화운동 연구) 1963년생. 기타큐슈시 출신. 아키타대 등을 거쳐 현재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저서로 <증보 광주사건으로 읽는 현대한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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