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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의 일기장 Jul 30. 2022

‘이해’와 ‘억지’ 사이

‘행복’과 ‘불행’ 사이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소통’이라는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무나도 다양한 소통을 하며 살고는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따로 교육받은 적이 없다.

궁금해 본 적도 딱히 없다… 우리가 언어장애가 없다는 안일함으로 우리는 소통의 장애를 느끼고 살지 않는다.


만약, 우리에게 ‘소통’의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왜 불행을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왜 더 나은 행복을 꿈꾸는 것일까?


요즘 내가 많이 고민하고 있는 ‘소통’의 중요함은 이렇다.

우리가 하는 소통에는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이해’ 와 ‘억지’라는 이 두 요소는 우리의 소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이해’부터 살펴본다면…

누군가와 소통을 할 때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의 내용을 ‘이해’로 시작하면

대화의 뱃놀이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하게 된다.

설령 의견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이해를 전제로 하게 된다면

매우 차분함 속에서 듣고.. 듣고… 듣고.. 그리고 나의 생각과 의견도

살며시 얹어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두 가지의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두 가지의 의견으로 소통은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배움을 얻기도 한다.

일거양득이고, 일석이조이다.

다른 큰 노력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하며 들어주었던 것뿐이다.

듣지 않으면 이해도 없다.

그래서 ‘이해’의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억지’의 소통은 어떤 것일까?

‘억지’라는 단어의 어감에서부터 느껴지는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불편함.

소통의 시작에서 귀를 닫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견제하며

듣기보다 방어를 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며 대화보다는 공격을 준비한다.

이런 소통은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속도전인가?

‘억지’는 상대방을 이해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먼저 지르기로 기선을 제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통은 의견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의견은 하나인데 다름을 확인하는 절차만

수십수백 개를 만들어 내고 만다.

결국 무엇을 위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망각하게 된다.

왜? 열받아서…


‘소통’은 ‘주거니 받거니’이다.

주기만 하지도 않고 받기만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통의 이해는 중요하다.


‘행복한 소통’을 위해서는 ‘이해’를…

‘불행한 소통’을 위해서는 ‘억지’를…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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