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의 일기장 Jan 11. 2022

엄마의 방탈출

모범수가 되고 말거야!

‘엄마’가된지 어언 13년차가 되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 연년생 두 아이는 차곡차곡 컸고, 큰 아이가 엊그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이제 중학생이 된단다. 교복을 맞추라는 알리미가 뜨면서 언제 벌써 이 아이가 이렇게 컸나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인 일들이 내게 변화로 다가왔나라는 생각을 되새겨 보게 되었다. 꼬박 2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으로 일상 생활은 올스톱되었고, 대수롭지 않게 반복되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지금쯤 겨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익숙함에 조금은 무뎌진 채로 이 상황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더스틴호프만이 주연으로 나왔던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로 인간의 존재가 티끌보다 못하게 작아지고 보잘  없는 존재로 보였던  장면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내일 세상의 멸망이   같이 두려움 속에서 마스크 하나에  생명줄을 담보로 잡고  밖을 나서는 공포를 하루 하루 느끼고 있는 지금의 삶이 반백년을 지낸 나에게도 낯설고 공포인데 이제 십대를  넘어선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움이고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걷지도 못하는 뒹굴이 아가들에게는  얼마나 우울한 일일까를 생각하니 마음  구석이 심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가슴 한켠이 먹먹해 지는 것은 이런 상황을 아이들이 두려워하기 보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자기 앞가림을 시작하는 시기가 얼추 왔다는 생각에 나도 방탈출을  볼까  생각하던  벌어진  상황이 나에게는 누군가 나에게 폭탄을 투척해 고막이 찢어질  같은 굉음을  사건같았다.


어쩌지?..... 이제 겨우 내가 잡았던 아이들의 양손을 살포시 놓아볼까 했는데 너무나 강력한 테이프로 나의 두 손과 두 발이 그리고 내 온 몸을 꽁꽁 묶어 버렸어. 아무리 풀어 보려해도 꼼짝달싹 할 수가 없어. 움직이려고 할수록 나를 둘러싼 올가미가 더 조여지는 느낌이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깊은 한 숨에 내 답답함을 내 뱉는 것이 고작이었다. TV를 켜면 공포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알려 주는 숫자의 공포가 매일 엄습하고 있었고, 세상에 온전한 곳이 없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상을 반복할 뿐 그 어떤 희망도 그 어떤 생각도 투명하게 할 수 없이 막막했다. 상황을 생중계 해주고 있는 관계자들의 얼굴은 하루 하루 지날 수록 초췌해져 갔고 그 그늘짐이 우리에게는 더 극한 공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포라고 느꼈던 감정이 걱정으로, 걱정으로 느꼈던 감정이 안타까움으로, 안타까웠던 감정이 감사함으로 바뀌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분명 상황은 나아지는 것 하나 없이 점점더 심해져 가고 있는데 나의 감정을 그리고 사람들의 감정은 왜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난 궁금해졌다. 공포, 걱정, 안타까움, 감사함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 감정은 다 제각기 다른 감정으로 보였지만 결국은 하나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마냥 무섭기만했던 공포와 그 공포로 인해 세상에 그리고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걱정되었고, 그 걱정이 무색할만큼 아픔을 맛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슬픔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그런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지 않음에 감사해야했던 것이다. 감정이입이 결국은 익숙함으로 인해 다른 모습으로 포장되어지기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 바이러스를 상대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함께 이겨내자! 할 수 있다!라는 구호와 함께 집단 단결력과 노력으로 대책없는 그 녀석들과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네 일 내 일의 경계가 무너졌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감사했던 것이다. 네 일도 내 일도 모두 우리의 일이었던 것이다 .


나의 방탈출은 마치 알카트라즈 섬에 갇혀 있다가 탈출을 시도했는데 바다에 빠져 상어에 잡혀 먹는 꼴이 되어버리기 일보직전인 상황 같았다. 우울했다. 아~ 이렇게 내 손과 발이 다시 묶이는구나..싶은 생각이 드니 슬픈 마음의 골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져만 갔다. 그 때 난 생각했다. 만약 내가 기가 막히게 수영을 잘 한다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탈출을 하지 않고 감옥 안에서 다른 일을 했다면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있었으니 그게 더 나은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안에서 뭐라도 해서 모범수가 되어 안전하게 배를 타고 뭍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탈출방법이 가장 아름다운 결론일까?. 짧은 순간에 내 머리에는 거미줄같은 경우의 수들이 나의 뇌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거미줄 같은 고민과 생각들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난 수영을 못하니 헤엄쳐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난 나를 포기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며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니 답은 딱 하나! 모범수가 되어 나오는 방법이 그 유일한 답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렇다. "모범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탈출의 유일한 길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은 개운함이 들었다.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출발선이기는 하지만 난 지금부터 모범수가 되기 위해 꽤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움직임으로 그냥 마냥 열심히 착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식적인 모습으로 혹여나 나의 탈출계획이 들통이라도 나면 나는 독방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만 알고 있는 이 상황이 꽤 쪼는 맛이 느껴지는게 나름 스릴있고 괜찮은 느낌이 들어 좋다. 최근들어 그럴싸한 좋은 느낌을 받으며 설레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꽁냥거리는 느낌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건 왜일까.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곳을 보고 또 돌아 본다. 내가 주리를 틀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 중심을 잡아 줄 곳이 어디인지 찾고 또 찾아 보고 있다. 그래 맞아! 나의 방탈출의 시작은 탈출할 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방이 있어야 탈출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생각이 순조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던지 일단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우리집, 우리 가족의 공간이 아닌 나만을 위한 공간. 크기나 위치는 상관없다. 그냥 나만의 테두리가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그 울타리를 넘으려 할 것 같았다.


우리집은 계단을 오르면 나름 괜찮은 공간이 있는 복층구조의 탑층 아파트이다. 사춘기가 살짝 찾아오기 시작한 아들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다락의 한 쪽을 내 주었고, 계단 때문에 조각 난 남은 한 쪽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개폐가 안되는 삼각형 창문이 있는 그 공간은 나만의 아지트 분위기를 내기에는 그럴듯 만족스러웠다. 왜 아이들이 다락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나다보면 박공지붕이라 그다지 장신이 아닌 나도 고개를 숙이거나 콩콩 머리를 부딪히는 고통을 맞닿뜨려야하지만 그 또한 귀여운 재미로 즐기면 될 것 같았다. 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바비디부~'라는 광고 카피라이트를 좋아한다.바로 그거다. 생각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인생 지론 중에 하나이다.


나는 내 반쪽에게 나의 공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고, 도움도 요청했다. 하늘에 해도 달도 따줄 마음이 있었던 그 이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바로 나의 진두지휘에 따라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아끼지 않고 움직여 주었다. 공간이 넓지 않은 탓에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늑한 나만의 다락 아지트가 탄생하게 되었고, 내 가슴에 뭉클함과 행복의 몽실거림은 내 입가이 미소와 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번졌다. 이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이제서야 이 공간을 만났을까 싶으니 그 동안의 게울렀던 내 자신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그 미안함 따위는 덮어 버릴 수 있었다. 그냥 좋았다. 마냥 좋았다.

이 공간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난 모범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자신감 뿜뿜이었다. 다락방 아지트에서 다시 나를 찾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름의 시작이 되었다.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시작된 이 공간의 꾸밈으로 최고의 모범수가 되기 위해 난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또 다른 꿈을 꾸는 몽상가가 될 것이다.


방탈출에 성공하는 그 날까지 다락방의 모범수는 끝없는 꿈을 꾸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