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글에는 영화 [청년경찰]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험관 시술은 이쪽 세계의 끝판왕이니만큼 정말 힘들다. 그중에서도 많은 여성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는 바로 ‘과배란 주사’일 것이다. 사실 나는 ‘과배란 주사’를 M병원에 다니기 한참 전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유쾌한 청년들의 액션연기 그 이면에는 과배란주사를 공포로 묘사한 장면이 숨어있다.
많은 사람이 훈훈한 두 남자배우의 액션 영화로 기억하고 있는 [청년 경찰 (2017년 개봉)]이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에서 강하늘, 박서준 배우가 연기하는 경찰대 학생들은 우연히 연고 없는 소녀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어설픈 방법이지만 끈질기게 매달리며 진짜 경찰도 찾아내지 못한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때 사라진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녀들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단체로 갇힌 채 정체불명의 주사를 배에 맞는다. 그렇다. 그 주사가 바로 과배란 주사였고, 소녀들은 난자채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 때로는 부작용이나 감염으로 인해 죽음을 맞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을 당시 나는 이 장면이 얼마나 끔찍한 장면인지 실감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에만 집중했다. M병원에서 과배란 주사를 만나게 된 이후 나는 그 영화가 얼마나 끔찍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영화 속 공포스러운 묘사가 떠올라 한동안은 차마 내 손으로 배를 찌를 용기가 없어서 매일 아침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기도 했다.
과배란 주사의 종류, 용량은 시술 시점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의사는 배란 초음파를 통해 환자의 자궁 내 난포의 성장 속도를 확인하고 적정량의 난포를 키워내기 위해 3~4일 간격으로 다른 주사나 약을 처방한다. 게다가 모든 난포가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 것도 아니라서 때로는 난포들의 성장 속도를 맞추고 일정 시기에 한꺼번에 배란될 수 있도록 한쪽 배에는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반대쪽 배에는 배란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기도 한다. 난임병원이 동네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처방받은 병원 외에서 주사를 맞는 게 금지되어있기도 해서 현실적으로 과배란 주사는 자가 주사로 놓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M병원의 경우 주사를 처방받으면 주사실에서 간호사분이 샘플을 가지고 주사를 놓는 법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주사가 변질되지 않도록 보냉 가방에 아이스팩까지 챙겨 넣어 주신다. 한동안 이 주사 가방을 매일 들고 다닌 덕분에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3번의 시험관 시술 동안 나는 다양한 주사들을 만났지만, 아직도 내가 만나지 못한 주사들도 정말 많다.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과배란 주사들의 종류와 피하주사 방법에 대해 짧게 기술해보려 한다.
피하주사 방법
인터넷에서 피하주사를 검색해보면 ‘피하결합조직 내에 주삿바늘을 삽입하여 물약을 주입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그렇다면 피하결합조직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근육보다는 지방이 많은 쪽을 뜻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하복부, 똥배 부위이다.
과배란 주사를 비롯하여 난포 터지는 주사, 면역 주사 등 난임병원에서 받는 피하주사들은 배꼽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옆으로 이동한 부위에 놓는 것이 정석이다. 왼쪽, 오른쪽 구분 없이 주사를 놓을 부위를 정해 알코올 솜으로 소독해준 뒤 엄지와 검지로 그 부위를 가볍게 잡아준다. 반대쪽 손으로는 주사기를 들고 바늘의 각도가 90도가 되도록 소독 부위에 주삿바늘을 찔러넣은 뒤 정해진 용량을 투약하면 주사는 끝이 난다.
주사를 맞은 부위는 문지르기보다는 알코올 솜으로 10초 정도 꾸욱 누르고 있는 것이 멍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험상 주삿바늘을 빼고 피가 흘러나올 때는 멍이 들기 십상이었다. 경우에 따라 복부에 멍이 심하게 들어서 더는 주사가 힘든 경우 허벅지 부위에 주사를 맞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난임병원에서 만난 피하주사의 종류
과배란 주사 중 하나인 데카펩틸과 다이얼 모양의 퓨레곤
- 데카펩틸
일체형 주사기로 정량의 약물이 주입된 형태로 제공되어 별도의 조제 과정, 용량 조절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삿바늘이 타 주사기보다 굵은 데다 통증은 좀 더 있어서 난임병원에 다니는 여성들 사이에는 악명이 높다. 의학적인 부작용으로는 ‘수면장애, 홍조, 두통’이 있을 수 있다.
- 퓨레곤
주사기와 약물이 분리되어 나오는 다이얼 형태의 독특한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한다는 특징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인당 1개의 주사통을 받고 다음 주기 시술 때도 퓨레곤을 처방받을 수 있으니 주사통을 들고 내원해야 한다. 유리병에 든 약물을 주사기에 꽂은 뒤 다이얼을 돌려 용량을 설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주사를 맞을 때도 다이얼을 돌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점이 독특하다. 의학적인 부작용으로는 ‘두통, 복통, 복부팽만’ 등이 있을 수 있다.
주사기로 식염수를 뽑아서 약물을 조제한 뒤 다시 복부에 주사해야하는 복잡한 형태의 과배란 주사
- IVF-MHP
알약처럼 생긴 고체 약제, 식염수가 각각 1병씩 2병이 세트를 이루는 주사로 식염수가 들어있는 병에 주삿바늘을 찔러넣고 알약이 들어있는 약병에 다시 주입한 뒤 투약할 약물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경우 약물 외에 주사기도 여러 개 여분으로 챙겨주신다. 투약 시 약병에서 주사기로 정량을 뽑아내서 주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학적인 부작용으로는 ‘설사, 복부팽만, 어지러움’ 등이 있을 수 있다.
- 벰폴라
비교적 최근에 수입, 처방되기 시작한 난포자극 주사이다. 패키지 안에 주사기와 전용 주삿바늘이 들어있고 주삿바늘을 끼운 뒤 맞으려는 용량에 다이얼을 맞춘 뒤 피하 주사하면 된다. 다이얼을 맞추고 맞을 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점에서는 퓨레곤과 유사하지만, 주사액을 끼워 넣을 필요가 없고, 다이얼을 맞추기도 더 쉽다는 점에서 초보자가 주사하기에는 좀 더 편하다. 부작용으로는 ‘두통, 복부팽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배란방지 주사 오가루트란과 정해진 시간에 배란이 되도록 유도하는 오비드렐주사. 하루에 많이 맞을 때는 아침에 3번 주사하고 저녁에 또 주사하기도 했다.
- 오가루트란
조기 배란 억제제로 난포가 채취 전 빨리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맞는 주사로 맞고 난 뒤 해당 부위 근처로 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때에 따라 다른 과배란 주사와 함께 맞아서 난포를 키우지만 터지지는 못하게 유도하기도 한다. 의학적인 부작용으로는 ‘발진, 호흡 곤란’ 등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 오비드렐
일명 '난포 터지는 주사'라고 불리는 주사제이다. 난포 성숙을 유발하는 주사로 시술 시간에 따라 맞는 시간이 달라지고 다른 어떤 주사보다 정확한 시간에 맞는 것이 중요하다. 키워낸 난포의 숫자에 따라 1~2대의 주사가 처방된다. 부작용으로는 '두통, 피로, 불면, 발열'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일명 멍주사라고 불리는 공포의 주사. 이 주사로인해 멍이 심하게 들면 이제 허벅지로 옮겨갈차례다
- 크녹산
멍주사라고 불리는 주사로 난임병원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주사는 아니다. 일반적인 경우 수술 후 발생하는 정맥의 혈전색전증 예방을 위한 피하주사로 쓰이는데, 한마디로 혈전방지 예방용 주사라고 할 수 있다. 습관성 유산 검사등의 정밀검사를 통해 혈전 발생의 우려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경우 시험관 이식 후부터 길게는 2주간 사용하며 혈전반응을 예방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맞은 직후 얼음찜질을 하면 멍이 덜든다는 얘기가 있긴하지만, 약제가 잘 퍼지게 하기위해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나타날 수 있는 이상반응으로는 설사, 구역질, 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시험관 시술은 3번째, 피하주사를 만난 지는 벌써 5번째 시술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주사를 처방받을 때면 한숨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피하고 싶어서 피하주사인가 싶을 정도로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이 과배란 주사의 끝에는 아기와 함께 걷는 꽃길이 놓여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