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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6. 2023

비바람과 함께하는 신트라 여행

네덜란드 교환학생 D+44, 포르투갈 여행 셋째날(리스본)

2017년 3월 3일 금요일


오늘은 리스본 근교인 신트라에 가기로 한 날!

우리가 여행 계획표에 '☆핵 많이 걸음'이라고 써놨을 정도로 빡센 스케쥴이 예정된 날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이 우리 일정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날이 될줄은 몰랐지...

하지만 오늘이 리스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므로 선택권이 없었다. 우리는 데스티네이션 호스텔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호시우 역에서 신트라 원데이 티켓을 구매해 기차에 탑승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본 데스티네이션 호스텔 전경! 페북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저 밑에 있는 편의시설들을 다 이용 못한게 슬플 뿐..
호스텔에서 제공한 조식! 팬케이크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데, 보다시피 우리가 구운건 매우 쭈글쭈글해졌다. 조식에 한식(미역된장국)도 있었는데, 나는 그냥 양식을 먹었다.
허겁지겁 신트라로 가는 기차를 탄 우리.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돼서 내렸을 때에 별 생쇼를 다 했는데ㅋㅋㅋㅋ 동영상은 민망해서 못 올리겠다.




신트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페냐성이었다.

비가 왔다 안 왔다 하면서 우중충한 날시였음에도 알록달록한 색깔이 눈에 띄었다.

꼭 동화 속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성이어서, 우리는 우와 우와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진짜 동화 속에서 나온 것만 같은 모습. 숲속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니 이런 성이 있었다...! 이런 느낌이랄까
장난감 성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날 우리는 둘 다 치마를 입고 갔는데 외투가 길어서 잠그면 하의실종 패션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저 외투는 비상용으로 들고 간 건데, 비가 계속 오면서 날씨가 예상치 못하게 너무 추워져서 어쩌다보니 그냥 계속 입고다니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쁜 아우터 가져올걸...쒸익


그나저나 유럽 사람들은 상의 노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하의 노출에는 유달리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짧은 반바지나 치마보다도 그들이 입고 다니는 엄청 파인 상의가 훨씬 민망하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이런걸 보면 정말 문화 차이라는게 있나보다 싶다.

같은 포즈로 찍어본 룸메샷! 당시(2017년)에야 하의실종 패션이 흔했다지만 지금 보니까 좀 민망해서 사진에 다른 옷을 그려 넣어 주었다!ㅋㅋㅋㅋㅋ

외부를 구경한 후 성 내부로 들어갔다. 저번에 갔던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짜 '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까지 왕실이 사용하던 공간이라 그런지(위키를 찾아보니 19세기 후반까지도 썼다고 한다) 꽤 생활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화속 성 같은 곳에서 살면 어떤 기분이려나.



그냥 찻잔이 예뻐서 한컷. 예쁜 찻잔을 반드시 건져 가겠다는 나의 다짐은 시간 부족으로 무너졌지만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무튼 페냐성은 내가 지금까지 유럽에서 본 성 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 물론 다다음주에 뮌헨에서 노이스반스타인 성을 보면 생각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페냐성을 다 둘러본 다음에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신트라 마을로 이동했다. 거기에 피리퀴타(PIRIQUITA) 라는 빵집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 같길래 가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였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굳이 가야겠다면 신트라 마을에서 다른 맛집을 찾아보시기를...


왼쪽 사진은 가게 입구. 나머지 사진은 우리가 시켜 먹은 것들이다.

윗 사진의 동그란 빵은 케이자다 (Queijadas)라고 하고, 아래의 길쭉한 빵은 트라베세이루 (Travesseiro)이다. 케이자다는 그냥 단 맛이 났는데... 지은이의 회고에 의하면 '경주빵' 맛이라고. 트라베세이루는 필링에 따라 에그, 초코, 애플시나몬이 있었는데 초코는 다 팔려서 못 먹었다. 애플시나몬은 그냥 애플패스츄리 맛이었고, 그나마 에그가 나았지만 벨렘지구에서 먹은 에그타르트에 비하면 그저 그랬다. 아쉬워서 밀푀유도 시켜먹어 봤는데 역시 평범했다. 대체 왜 유명한 빵집인지 잘 모르겠다. 



빵집은 그저 그랬지만, 이 마을에서 유명한 다른 하나는 소개할 만 하다.

바로 초콜릿 잔에 담아 마시는 체리 술, 진자(ginja)다.

신트라 마을 여기저기에서는 진자를 팔고 있는데, 피리퀴타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와인가게에서 먹은 진자가 정말 맛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가게에서는 화이트 초콜릿 잔과 다크 초콜릿 잔 두가지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다크 초콜릿 잔을 선택했다.

술은 반만 먹고, 남은 술 반과 잔을 함께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근데 나는 설명을 제대로 안 듣고 원샷해버렸다ㅋㅋㅋㅋㅋ원래는 작은 병에 든 진자만 사가려고 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몬드 술도 추천해주시면서 시음을 하게 해 주셨다. 그것도 괜찮길래 결국 두 가지 맛 세트를 샀다. 시음할 때 레몬을 살짝 넣어서 주셨는데, 그렇게 집에서 먹어 봐야겠다.

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진자!




원래 계획한 다음 목적지는 헤갈레이라 별장이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숲속의 신비한 성처럼 보여서 엄청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신트라 마을에서 나올 때 쯤 우리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감기로 고생하던 와중에 비바람까지 맞아서 그런 것 같았다. 결국 헤갈레이라 별장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마지막에 가기로 했던 일몰 명소 아제냐스 두 마르(Azenhas do Mar) 마을로 향했다. 우리의 계획 상 경로는 다음과 같았다.


1. 신트라 역에서 호시우 역 쪽 방향으로 한 정거장 가서 Portela 역에 내린다.

2. 440번이나 441번 버스를 타고 종착역인 아제냐스 두 마르 역에 내린다.


문제는 이 버스 배차간격이 정말 거지같다는 점인데, 우리는 이왕 헤갈레이라 별장을 포기한 거 그냥 일찍 가서 일몰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Portela 역에서 내렸을 때 즈음에는 버스가 3시 35분차, 4시 20분차, 5시 05분차... 이렇게 있었는데, 우리는 4시 20분 차를 타고 빙빙 돌아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 망할 버스도 정류장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나 대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어떻게 버스 벨을 누르라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이번에도 창밖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그냥 적당히 절벽이 보이는 때에 무작정 내렸다. 어쩐지 핑크호수의 악몽이 생각나는걸...^^ 우리는 그때처럼 그냥 감을 믿고 내려서 대충 길처럼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거기서 내린게 더 잘한 일이었다! 조금 걷다 보니 블로그에서 본 것과 같은 사진 구도가 나오는 전망대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래 사진이 바로 거기서 찍은 결과물이다.


아제냐스 두 마르 마을은 절벽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돌로 담이 쳐진 것 같은 공간이 수영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수영장은 저기보다는 위에 있었다. 그치만 저 돌로 둘러진 곳에서 여름에 수영하면 자연 파도풀이 따로 없겠다 싶었다. 저곳에는 바다 거품이 엄청 많이 쌓여있었는데, 워낙 강한 바람이 불다 보니 그 거품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눈처럼 흩날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보면 동해안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하늘에 백설은 무슨 일인가'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게 어떤 모습인지 딱 알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우리는 흰 눈처럼 날리는 거품을 맞아 보겠다고 미친 사람들처럼 뛰어다녔다. 

날아오는 거품을 찍어보았다
이게 진짜 수영장이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정말 바람이 사람을 날려 버릴듯이 분다.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데, 그 와중에 또 사진 건져 보겠다고 외투를 벗고 사진을 찍어댔다. 근데 한두장 빼고는 전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실컷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사진을 찍은 우리는 외투를 끝까지 잠그고 얌전히 앉아서 일몰이나 기다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해는 언제 지는걸까...?ㅋㅋㅋㅋㅋㅋㅋ

추워....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날씨가 점점 급격히 나빠졌다. 거센 바람에 이어 비까지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 잽싸게 파노라마를 찍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찍으면서도 손이 미친듯이 흔들려서 수평선이 수평이 아니게 됐고 오른쪽에 보이는 전깃줄은 가닥가닥 끊어지게 나왔다ㅋㅋㅋㅋㅋㅋ색감을 많이 보정해서 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뿌연 하늘이었다. 


그렇게 비바람 속에서 덜덜 떨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은 때에 여기에 와서 일몰을 보게 된다면 감탄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여기에서 기다리다간 집에 못 갈 것 같았고, 뭣보다 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아래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지붕 있는 작은 건물이 버스정류장인데, 옆에 레스토랑과 화장실이 붙어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거기에는 버스 시간표가 떼어져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막차가 끊겼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다행히 지은이가 모 블로그에서 누군가가 노선도 사진을 예전에 찍어서 올려둔 것을 찾아냈다. 그 블로거님 덕분에 우리는 6시에 버스가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류장에 앉아 덜덜 떨면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춥고 배고프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던 때의 모습. 그치만 너무 추웠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 둘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호시우 역으로 대체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호시우 역에서 내리자마자 근처에 있는 해물밥 맛집 피노키오(Restaurante Pinoquio)로 들어갔다. 따뜻한 식전빵을 먹으니 다시 몸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해물밥 양은 무척 많으므로 1인분만 시켜도 아래 사진만큼 나온다. 여기 역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맛집이라 그런지 안에 한국인들이 있었고, 역시나 웨이터 아저씨께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말 안 해도 알고 계셨닼ㅋㅋㅋㅋㅋㅋ 해물밥 맛은 그저 그랬다. 식전빵이 훨 맛있었음. 이쯤되니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맛집이라고 하는 곳이 딱히 믿을 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음식점에서 힐링을 하며 우리는 다시 살아났다. 원래는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야경을 보려고 했는데,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고 나니 너무 귀찮고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데스티네이션 호스텔에서 짐을 챙겨 다음 숙소로 향했다. 


호텔 알리프 아베니다스라는 이름의 숙소였는데, 호시우 역 근처 광장에서 버스 하나를 타고 가서 또 10분가량 걸어야 하는, 입지는 좀 별로인 곳이었다. 하지만 시설은 그에 반비례했는지 무척 훌륭했다!!! 진정한 호텔이란 이런건가... 우리는 지친 몸을 좋은 숙소에서 녹였다. 또, 우리가 감기에 걸린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기본 제공되는 1리터짜리 물이 객실 안에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물은 맛있었다ㅠㅠㅠㅠ유럽에 와서 맛없는 생수들을 먹으며 고통받았는데, 이 물은 에비앙만큼 먹을 만 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침대에 누워 사진을 정리하며 힐링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2박이나 더 남았다는게 믿기지가 않았다. 5박 6일 여행은 생각보다 긴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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