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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7. 2023

야간 플릭스 버스를 타고 뮌헨으로

네덜란드 교환학생 D+59, 독일 여행 첫째날(뮌헨)-1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그렇다. 또 여행글이다. 이번 목적지는 독일 뮌헨과 뉘른베르크!

'포르투갈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여행? 얘는 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거임?' 이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기말 페이퍼 주제를 '한국 대학생들의 혼자 여행하기 트렌드'로 잡은 만큼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위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로 내가 놀고 싶어서 가는게 아니다. 에헴.


사실 이실직고하자면 여행 일정 중 뮌헨에서 보내는 사흘은 독일에서 교환학생중인 고등학교 동창 D양과 함께하는 여행이고, 뉘른베르크에서의 하루가 내가 계획한 혼자여행이다. 내가 혼자 여행을 하는 건 국내 국외 통틀어서 처음이기 때문에 사실 무척 떨린다. 그치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바로 내가 무려 10시간동안 플릭스버스를 타고 뮌헨으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야간 플릭스 버스, 그 험난한 여정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마스트리히트는 벨기에와 독일 사이에 낑겨 있는 네덜란드 남부지방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보니 사실 마스에서 버스 타고 1시간이면 독일 아헨(Aachen)에 도착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유럽에서는 일단 국경만 넘어가면 그 나라 안에서의 이동은 비교적 쉬운 편이므로 나는 아헨으로 이동해서 움직이는게 뮌헨에 가기에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예상대로 아헨에서 뮌헨으로 가는 야간 플릭스버스가 있었다. '그냥 밤새 자다가 일어나면 뮌헨 도착이니까 개꿀 아님?'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뉘른베르크에서 한 번 환승해야 한다. 직행 버스도 있긴 했는데 D와 여행 날짜를 맞추다 보니, 내가 출발하는 날에는 직행 버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ㅠㅠ


무려 10시간이 넘는 대장정을 위해 나는 금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자 마자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도 감고, 플릭스 버스 안에서 화장을 지우기 위한 클렌징워터와 솜까지 챙겼다. 아헨에서 생각보다 널럴한 플릭스버스 좌석에 만족하면서 잠을 잘 때까지는 좋았으나... 왠지 모르게 북적북적하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이게 웬일! 버스 안은 만석이었다.(나중에 돌아올 때 알았는데 아헨이 종점이어서 그렇게 널럴했던 것이다..) 새벽 3시 경에 잠에서 깨어 혹시라도 환승역을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다 보니 뉘른베르크 플릭스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릭스버스 정류장이 그렇듯이... 뉘른베르크 역시 뻥 뚫린 야외에 정류장 막대기만 서있었고... 새벽 3시의 찬 공기와 바람은 얇은 코트만 덜렁 입고 온 나를 사정없이 몰아쳤다.


환승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시간 반 동안 추위에 떨던 나는 앞으로 다시는 새벽에 환승하는 플릭스버스를 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거기다가 웬 노숙자가 나한테 영어로 자꾸 말을 걸면서 뮌헨으로 가는 버스가 오면 자길 깨워달라며 내 옆에 앉아 잠들기까지 해서 너무너무 무서웠다ㅠㅠㅠ 그러다가 어떤 할머니가 화장실 가실 동안 본인 가방을 봐 달라고 하시길래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그 노숙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너 어디가냐"라고 말해서 더 무서웠다... 아니 분명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나한테 자꾸 뮌헨 버스는 몇시에 오냐고 물어봤다. 표에 다 적혀있는데... 아무래도 버스표가 없는 것 같아서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은 뮌헨행 버스에 나와 일행인 척 해서 들어가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짐을 맡기는데 옆에 서서 계속 얼쩡거리더니, 버스 입구에서 표 검사가 끝나자 슬쩍 올라탄 것 같았다. 아님 실패했으려나? 이후에는 그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무섭고 춥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겨우 환승을 하고 버스를 타고 가길 세 시간... 나는 드디어 뮌헨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D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넓고 넓은 유럽에서, 원래 한국에서 알던 친구를 만난다는게 참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렇듯, 만나면 바로 어제까지 함께 지내던 사이처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노이에 피나코텍(Neue Pinakothek)

숙소인 마이닝거 호스텔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아침 7시 30분이었다. D도 새벽 기차를 타고 왔고, 나도 플릭스버스에서 사실상 1박을 한 셈이라 도착하니 아침이 밝아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라운지에서 여유있게 화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 덕에 나가자마자 화장은 무쓸모가 되었지만...) 원래 일정대로면 님펜부르크 성을 먼저 갈 거였는데, 10시 오픈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단 근처의 미술관인 노이에 피나코텍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근데 막상 도착해보니 거기도 10시 오픈이더라... 그래도 숙소에서 좀 쉬고 준비도 하고 나와서 그런지, 우리가 도착했을 땐 미술관 오픈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여유있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뮌헨에는 알테, 노이에, 모던 이렇게 세개의 피나코텍이 있는데, 직역하자면 old, new, modern쯤 된다. 우리는 중세미술에는 그닥 관심이 없기도 했고 해서, 고흐랑 클림트 작품이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노이에 피나코텍에 간 것이다. 들어가 보니 사실 유명한 화가들 말고는 대부분 낯선 작가에 낯선 작품들이었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긴 했지만 굳이 그걸 진득하게 들으면서 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눈에 띄는 작품 위주로 자유롭게 구경했다.


1.

두 인물 다 정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그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덩쿨 너머 성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 그림을 보고 서 있으니 마치 나도 그림 속의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서서 해 질 무렵의 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참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오픈 직후의 미술관은 적막하고 한갓지다. 이렇게 여유롭게, 내 마음껏 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참 오랜만이었다.


2.

작품 제목은 Der arme Poet(The Poor Poet). 이 그림 역시 한참동안 구석구석 쳐다봤는데, 우리나라의 시나 소설속에 묘사된 가난한 시인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친구들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다ㅋㅋㅋㅋ이럴 때면 아무리 내가 전공 수업이 힘들다 힘들다 해도 결국 적성에 맞게 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서도 시인은 참 밥 벌어먹기 힘든 직업이었나 싶기도 하고. 지극히 서양스러운 집 안 모습이나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아궁이에 처박힌 원고라던가, 심란해 보이는 시인의 표정같은 것들이 묘하게 우리나라 시인들의 고뇌하는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게 신기했다. 이건 여담인데 침대 옆에 걸린 안대가 프릴이 달린 것 같아서 귀여웠다!ㅋㅋㅋㅋㅋ


3.

이건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룬 그림들을 모아서 액자에 끼워놓은 듯한 모양의 엄청나게 긴 그림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독일어 시간에 신데렐라의 원형이 된 독일의 아셴푸텔(Aschenputtel) 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어서 제목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 찬찬히 뜯어보니 정말 그 동화의 장면장면들을 그려놓았다. 왼쪽 사진은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아셴푸텔의 모습에 놀란 사람들과 그녀에게 푹 빠진 왕자, 오른쪽 사진은 아셴푸텔의 집에서 드디어 신발의 주인을 찾은 모습. 재미있었던 건, 독일의 아셴푸텔 이야기에서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황금구두인 걸로 알고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은색 혹은 유리처럼 보이는 색깔의 신발이 등장한다. 독일 내에서도 아셴푸텔 이야기의 다양한 변형이 있었던 걸까? 사진으로는 안 찍어왔지만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와 다르게 비둘기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슷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4.

설정샷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놀랍게도 설정샷이 아니다(!) 오 드디어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왔구나 싶어서 D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가서 섰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해서 고개를 돌린 순간 찍힌 사진. 알고 보니 이 그림의 경우 일정 거리 이상 그림에 다가가면 경보가 울리는 모양이었는데, 그림 앞에 보호하는 띠도 없고, 바닥에 선 하나조차 그어져 있지 않아서 다른 그림들을 보던 것처럼 앞으로 간 거였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심장 떨어질 뻔...


5.

이 그림의 제목은 밑에 적혀있듯이 '죄(The Sin)'인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나체의 여성을 커다란 뱀이 휘감고 있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의 얼굴 왼쪽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듯한 섬찟한 뱀의 얼굴이 있다. 나는 이 그림을 처음에는 휙 스쳐 지나갔다가 문득 어? 하는 마음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제서야 뱀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 성경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알테 피나코텍에서 휙휙 전시를 보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둘다 새벽 차를 타고 오느라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이다. D의 빠른 검색으로 트립어드바이저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는 팬케이크 맛집, '미스터 팬케이크'로 향했다.




미스터 팬케이크(Mr. Pancake)에서의 브런치

메뉴가 귀여워서 한 장 찍었는데, 보면 세트 이름들이 미스터 베이컨, 미스터 소세지, 미스터 체리 이런식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미스터 블루베리와 미스터 체리를 시켰는데, 주문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미스터 베이컨을 가장 많이 시키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ㅋㅋㅋㅋㅋ배를 채우려면 육류와 달걀이 있는 메뉴를 시켰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펜케이크. 내가 시킨 미스터 체리는 펜케이크에 바닐라 시럽, 그리고 구운 체리를 얹은 메뉴였다. 결론은 그저 그렇다. 차라리 미스터 베이컨이나 미스터 애플 시킬걸..팬케이크 자체는 맛있지만 두개 먹고 나니 배불러서 하나는 남겼다. 양을 좀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유럽 사람들 양에는 이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날은 뒤에 남은 글이 많아서 두 편으로 쪼개 올려야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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