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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6. 2023

Boat & Cave Tour

네덜란드 교환학생 D+52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어제 광란의 칸투스(Cantus,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나름 큰 연례행사임. 아주 무식하게 술을 먹게 된다.)가 끝나고 적당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길 잘했다. 덕분에 지은이와 나는 아침 11시 반까지 마스강 선착장으로 모이라는 Boat & Cave Tour에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하면 버리고 갈 테니 알아서 배를 타고 동굴로 오라'는 경고문을 보냈길래 쫄아서 후다닥 갔는데, 이게 웬걸. 12시가 다 돼서 출발했다. 하여간 어느 나라나 11시 반에 오라면 12시에 오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이번 투어 역시 ISN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듯한데, 메일로도 안내문이 왔었다고 하지만 사실 지은이가 신청하길래 따라서 했다. 지은이는 본인 입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내가 보기엔 알뜰살뜰하게 유익한 것들을 잘 챙기는 것 같아서 부럽다. 아주 똑똑한 왈라비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Boat & Cave Tour는 마스트리히트에 교환학생을 오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패키지다! 7.50유로가 아깝지 않은 체험이었다.

보트 앤 케이브 투어라는 이름답게 일단 보트를 타고 간다. 이게 우리가 타고 간 보트인데, 안에 레스토랑 같은 것도 있다.
오늘은 평균적인 네덜란드 날씨였다(우중충하고 칙칙하단 소리다). 아마 볕이 잘 드는 날이었으면 꽤 멋진 보트 체험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보트를 타고 한참 가다가 내리래서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우루루 내렸다. 강가에 웬 귀여운 웰시코기 한마리가 우리를 구경하길래 "오! 코기!"하고 탄성을 뱉었는데, 우리 옆에 있던 외국인이 "Ohhhh its corgi!"이래버려서 좀 머쓱했다. 한국어로는 코기라고만 해서  coggy 인지 corgi 인지 몰랐다는 이야기...


조금 걷다 보니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근데 이건 동굴이라기보단... 갱 아닌가?

네, 갱 맞습니다. 벨기에까지 이어져있는 거대한 석회석 광산이라고 한다. 무려 13세기에 만들어진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곳!! 가이드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면서 네덜란드는 지형상 동굴이 있을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 참, 그렇겠구나. 위의 사진은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동굴, 아니 갱도 출입구의 모습. 왜 이렇게 굳게 닫아놓는지는 뒤에 알게된다.





이곳의 여기의 벽은 석회 광산답게 전부 석회암인데, 그 위에 석탄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바래거나 훼손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보존된다고 한다. 가이드 할아버지께서 플래시를 들어 이 그림을 뙇! 보여주셨을 때 다들 막 놀래서 웅성웅성했다. 용을 그린거라고 하는데, 딱 서양 동화에서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무찌르는 그 용처럼 생겼다. 화가들은 이 안에서 그림을 그릴 때 불빛 하나만 두고 그렸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잘 보이지 않겠지만 윗 사진에서 내가 동그라미 친 곳에는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는데, 어떤 인부가 작업을 하다가 올려놓은 병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보존 차원에서 그냥 놔둔듯. 저게 저렇게 높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동굴이 위에서부터 파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 가이드 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하면. "This cave is not HIGH, but DEEP". 처음 동굴에 들어가면 천장이 무척 높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그게 높은 천장이 아니라 그만큼 위에서부터 깊게 파내려간 것이라고! 


1551년에 누구누구 왔다감, 이렇게 쓴 낙서. 하여간 어딜 가나 이런 곳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무려 466년 전 낙서가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다니 신기하다. 사실 처음에는 최근에 써놓고 누가 장난친거 아니야? 했는데 저 글씨에 남아있는 탄소로 연대 측정을 해보니 1551년의 낙서가 맞다고 한다.


이 복도는 꽤 최근에 붕괴 사고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안전하다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붕괴 사고 이외에도 이 동굴에서는 이전에 인명사고가 있었으니... 현재 동굴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멋모르고 여기에 들어왔다가 조난당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동굴은 미로처럼 무척 길이 복잡하고 불빛을 켜더라도 여전히 어두워서, 숙련된 가이드가 아니면 일단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스스로 탈출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가이드를 하기 위해서는 몇년동안 이 동굴 입구에서부터 조금씩 들어왔다가 길을 더듬어 나가는 연습을 수백번 하면서 길을 전부 외운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이드 할아버지도 한번은 관광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갑자기 길이 헷갈려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그걸 티내면 관광객들이 패닉에 빠지므로 태연한 척 하고 길을 찾다가 익숙한 포인트가 나오자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숙련된 가이드도 그런데 일반인들은 말 다했지 뭐. 거기다가 불까지 꺼진다면,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불이 꺼지면 이곳은 말 그대로 '완벽한 어둠'속에 잠긴다. 손으로 더듬어서 빠져나갈 수준이 도저히 아닌 것. 따라서 혹시라도 조난을 당한다면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누군가가 자기를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ㅠㅠ


아무튼, 사고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세기 전쯤 마을 소년원에서 몰래 빠져나온 청소년들 몇명이 랜턴 하나만 달랑 들고 이 동굴로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 뭔가 재밌는 탐험을 기대했던 거겠지만, 결국 그들은 17일인가 후에 동굴을 수색하던 마을 주민들에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들고 온 랜턴은 당연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꺼졌을 것이고, 불빛이 있어도 미궁같은 이 곳에서 불이 꺼졌을 때에 그들이 느꼈을 공포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패닉과 저체온증(그리고 아마 17일이나 지났으니 배고픔까지 가세하지 않았을까)으로 죽었을 거라고 설명하셨다. 또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기는 진짜 동굴이 아니므로 안에 어떤 생물도 살지 않는다. 물은 커녕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동물도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은 오로지 석회암과 완벽한 어둠 뿐. 이 안에서 조난당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물이 살지 않기 때문에 대왕 동굴 거미같은건 없다고 하셨다. 다만 가끔 겨울잠을 자는 박쥐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비교적 허술하게 '출입 금지'라고만 써있다는 벨기에쪽 입구를 통해 들어온, 무려 마스트리히트의 학생 커플이 있었다고 한다. 가이드 할아버지 왈, "아마 걔네는 로맨틱한 무언가를 바랐겠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나간 순간 로맨스같은 건 없었을거다." 마냥 웃기에는 너무 무서운 말이다.

그런데 이 대담한 커플은 달랑 핸드폰만 들고 이 위험한 동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당연히 나가는 길을 못 찾았을 테고, 핸드폰 배터리는 얼마 가지 않아 꺼져버렸다. 기적적으로, 이들은 갱 안을 미친듯이 헤매다가 천장에 난 약간의 틈새로 빛이 스며나오는 곳을 찾았다. 커플은 틈새를 향해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고, 정말 또 기적적으로 바로 위의 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가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불러와 커플은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걔네 분명 헤어졌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 말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기는 The Flower Road 라고 한다. 예전에 전쟁때인가 마스 사람들이 이 동굴 안으로 피신했었는데, 길을 잃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 자기가 제대로 왔다는 걸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려놨다고 한다.


이 멍청하게 생긴 물고기는 뭔가, 싶겠지만 이것은 아아아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던 생물이다. 이름은 mosae 사우로스라는데,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모사사우루스'라고 나온다. 우리가 쇼핑하러 가던 mosae forum의 그 모세라고 말하셔서 약간 당황함. 길이가 거의 18미터까지도 됐다고 하는 수중 공룡인데, 덩치가 엄청 크고 다른 생물들을 다 잡아먹어서 바닷속의 티라노사우루스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중에 찾아보고 흥미로웠던 건 쥬라기 공원 최근 시리즈에서 물 속에서 불쑥 솟아올라 티라노사우루스를 가볍게 냠냠해버린 그 수중 공룡이 바로 모사사우루스의 DNA로 만들었다는 설정이라고.


초반에는 이렇게 상어를 먹이로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는 이녀석이 티라노를 꿀꺽한다.


그때 하필 또 3D로 영화를 봤어서 솔직히 너무 무서웠는데, 이런게 이 동굴이 있던 자리에 살았다는 사실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오래전에 이 동굴 안에서 모사사우루스의 잔해가 최초로 발견되었는데, 마스트리히트를 침략했던 프랑스가 낼름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원래는 잘 숨겨뒀었는데 ,프랑스군이 이 뼈를 가져온 사람에게 고급 포도주 600병을 주겠다고 하자 다음날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반환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동굴 안에 있던 십자가와 스페인이 침략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벽화. 제일 오른쪽 사진 속 글자들은 스페인어라고 한다.




동굴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보트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진짜 동굴은 아니었지만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투어 중간에 가이드 할아버지께서 이곳의 어둠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우리들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셨던 때다.


서서히 불빛이 멀어질 때만 해도 '에이, 그래도 사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 어느정도 보이겠지' 했는데, 세상에. 불빛의 흔적이 사라지자마자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마치 눈을 감은 것처럼, 아니면 내 시력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처럼 눈 앞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서서 웅성거리고 움직이고 있는데 눈으로는 아주 조금의 움직임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지은이와 손을 잡고 있는데도 손에 느껴지는 온기 이외에는 그 어느것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 분명 누군가의 손과 닿아 있음을 느끼지만, 나와 이어진 것은 딱 손뿐이고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어둠이었다.


사람이 한 가지 감각을 잃으면 나머지 감각이 예민해진다는데, 굉장히 큰 자극인 시각이 사라지니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다른 감각을 통해서만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했다. 요즘 감각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이라 그런지 더욱 인상깊은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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