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다음 달에 부족한 돈은 80여만 원이었다. 그나마 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해봤지만, 친구는 아직 미취업 상태였고 자기 주변사람에게 부탁하기에도 80만 원 돈은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들 직장 생활하며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중이라 적지 않은 돈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여태까지처럼 또 한 번 대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빚이 지금처럼 많이 쌓이게 된 것은, 그만큼 생각 없이 계속 썼다기보다는 빚이 빚을 낳은경우이다. 내 급여를 넘어서는 지출이 생기기 시작해 임시방편으로 막기 위해 대출을 하나씩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창 코로나였던 시기,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웠었고 나 역시 한 달에 몇 십만 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을 급한 대로 메꿔줘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좋은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고 있던 내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가지고 있는 돈이 거의 남지 않는 정도였지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후로 좀 더 늘어난 지출에 다음 달에 낼 돈이 모자라게 되었다. 그때는 할부의 개념도 잘 몰라서 일시불로 많이 결제를 하던 시기였어서 더 그랬다.
한 달에 청구되는 카드값이 늘어나서 걱정이 깊어져가던 와중에 신용카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고성 전화였는데, 카드론을 권유하는 전화였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카드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영업사원 말대로 그저 한 달에 청구되는 카드값만 줄여줄 수 있는 더 나은 좋은 기회인 줄 알고 넘어가 덥석 받아 버렸고 얼마 안 가서 순식간에 큰 폭으로 떨어진 신용점수에 깜짝 놀라고 큰 후회를 했다. 더군다나 이자가 무려 20프로에 육박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나가는 돈도 결과적으론 훨씬 많았다.
나의 무지함으로 해버린 실수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대로라면 미래에 정작 필요한 순간에 대출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우선 직장 근처 은행에 가보기로 했다. 그때가 사회초년생으로서 처음 대출에 손을 대게 된 때인 것 같다. 은행에서 자주 이용해 본 예적금 업무가 아니라 낯설고 처음인 대출업무를 보게 되었다. 대출담당 직원에서 상담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고서 대출 신청을 했고 퇴근하고 나서 6시가 지나 대출 승인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론을 모두 상환하고 조금 남을 만큼의 돈이 입금이 되었고 바로 카드론을 청산하였다. 이자 부분도 1 금융권의 대출이라는 점도 훨씬 더 나았고 이 돈만 꾸준히 갚아가면 별 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는 생각보다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이어졌다. 급여만으론 부족해지는 와중에 지출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할부 결제로 필요한 지출의 한 달 결제금액을 줄여 봤지만 더해진 대출금이 문제였다. 카드론을 실수로라도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줄어들지 않은 지출 때문에 어차피 결과는 똑같았을까 라는 후회가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너무나 안 좋고 모두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빌릴 수는 없었고 후회와 절망을 했지만,나의 일은 내 스스로 해결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또다시 대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일은 고통스럽고 세금 공제 후의 금액은 적은 편이었지만, 4대 보험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만큼 대출도 쉽게 나오는 조건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거기다가 일한 지 어느새 1년이 넘어가면서 쌓인 연차로 인해서 승인이 더 쉬운 편이 되었다.
추가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얼마간을 버티고 또다시 추가 대출을 받는 반복적인 생활 끝에 3년이 넘게 되었고 퇴사를 끝으로 실업급여 생활을 하다가 생산직까지 오게 되었다. 그나마 추가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퇴직금과 실업급여의 도움이었다. 퇴직금을 모두 소모하고 재취업과 동시에 받던 도움이 끊어지게 되면서 유예되었던 문제도 함께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어렵사리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또 한 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제 막 입사한 사람에게 대출이 나올 리가 없었다.
조금이나마 급여가 높은 곳에 취업을 했는데 이렇게 연체되는 것인가 좌절하던 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전에 털어냈던 카드론이 떠오르면 시도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되었다.
금액은 넉넉히 나오지만 한 달에 나가는 돈이 기존 대출금보다 훨씬 많은 50만 원 돈이었다. 상환 기간이 짧은 만큼 내야 할 돈이 많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이 문제였던 날은 선택권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그 돈도 함께 갚아 나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불어나고 불어난 빚은 8천만 원에 육박하고 말았다.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총 량일뿐, 비교적 유예기간이 긴 보험대출까지 포함하면 1억에 육박할 것이다. 정말 빛이 빚을 낳았다.
아마 고액체무자들 중에 가장 많은 유형이 바로 나와 같이 빚을 빚으로 막다가 눈덩이같이 불어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지금처럼 코로나 사태와 같이 큰 경제적 위기를 겪은 후 오른 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원금은 많이 못 갚은 상태에서 이자로 많이 빠져나가니 그만큼 줄어들지 못한 만큼의 원금으로 빚진 생활을 더 오래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물가는 오르니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고통이 생겨나고 만다. 예전엔 과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살인적인 물가라는 말을 요즘은 정말 살과 심장이 떨리도록 느끼고 있다.
매달 월급날에 가까워져 가면 곧 대출금을 내야 한다는 문자들도 함께 연달아 오게 되는데 그 심리적 압박감과 중압감, 우울감은 말도 못 할 정도이다. 지겹다 수준이 아니라 매달 겪는 고통이자 형벌에 가깝다.
한 번씩, 열악한 경제적 상황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깊어지거나 크게 터져 버리고 나면 저 멀리 있던 과거까지 현재로 모두 끌고 와서 나를 사정없이 내리누르고 무너뜨린다. 이를테면, 벌써 4-5년 동안 쉬지 않고 돈을 벌었음에도 남은 돈은커녕 빚만 8천이 넘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만큼 커다란 좌절을 내게 안긴다.
그 좌절이 깊어지게 되면 자연스레 삶에 대한 것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삶을 언제까지 계속 살아야 할까라는 고통 어린 의문이 드는데 여기에서 더 심각해지면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게 느껴져서 죽고만 싶어 진다.
나쁜 생각이라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란 것은 인간의 마음을 사정없이 사지로 몰아넣는다.
궁지에 몰렸을 때, 타인을 해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을 대신하여 해치고 끝을 낸 생각 속에 빠져들기 쉽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도 물론 있지만, 더 이상 아무에게도 무엇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더 죽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과 얼마간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이제 내 인생은 완전히 망해서 앞으로도 고통만 이어질 뿐인 것이 아닐까?라는 희망 하나 없이 망가진 인생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우울감, 실행까지 더해졌을 때 사람은 죽게 되는 것 같다.
어느 퇴근길에 오른 통근 버스 안의 틀어져 있던 TV 속에 전세 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사기를 당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일하던 사람이 얼마 안 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누구나 그 소식에 안타까움을 느꼈겠지만, 고액체무자로서 그 안타까운 사연은 내 일처럼 마음이 저리고 아팠다.
무슨 심정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감정을 갖고서 끝내 원치 않았을 슬픈 결말에 도달했고 도달할 수밖에 없었을지 잘 알 것 같아서 혼자 눈물을 삼키느라 혼났다.
내가 겪는 고통에 사기 피해라는 상실감과 배신감, 분노까지 더해졌을 테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슬프고 아팠다.
대출 이외에도 적지만 추가적인 수익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사는 중이지만 한 번씩 놓아버리고 싶어지고 힘겨워서 삶을 포함한 모든 게 차라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사회적인 여파를 떠나서 그게 나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솔직한 감정과 생각이다. 사실 채무의 양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그런 절망감과 우울감이다. 자꾸만 내게 삶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걸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어쩌면 할 일이 있음에도 자꾸만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날들도 솔직히 많았던 것 같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기복처럼, 나의 채무상태는 일정한데 그 안의 마음과 생각이 이리저리 널뛰기를 한다. 절망했다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져 봤다가 이따금씩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하늘이,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나를 가엾이 여겨 죽지는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을까. 죽음밖에 보이지 않던 무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경험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고 며칠인가 몇 주인가 모르게 극심한 채로 계속되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가 심리적으론 가장 큰 위기였을지 모른다. 정말 죽어야 할까, 죽을 수밖에 없을까라는 생각이 온몸을 뒤덮고 온몸 안에 들어차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정말 문득 갑자기 마음이 내려놓아지며 성질이 다른 생각 하나가 툭 하고 던져졌다. 그리고 그 생각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까지 단번에 지워냈다.
계속해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그러니 오래 살 생각을 하지 말고 남들과 같은 미래를 꿈꾸거나 비교하지 말고 그저 얼마간, 벌만큼 벌다가 죽으면 된다고. 지금은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아직은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때이니 섣불리 미리 죽지 말자고. 하지만 정말로 답이 없고 해 볼만큼 다 해봤는데도 안 된다면 그때 가서 죽더라도 늦지 않다고.
오히려 죽음을 하나의 선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의 생각과 마음이 나를 더 살 수 있게 했다. 어쩌면 죽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버거운 내게는
얹어진 짐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 참으로 신기한 역설이었다.
그 날이후로, 나는 나를 죽이는 행위를 실행까지 하진 않겠노라 굳게 다짐하게 되고 잘 지키고 있긴 하지만 생각과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자꾸 위기를 가져왔다. 나는 이것이 어쩌면 자꾸 현재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상황에 대한 것을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고 기억하게 되는 것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꾸 떠오르고 기억이 나는 것을 어떻게 해야 지워질지 생각했고 과거의 유사한 경험과 거기에서 깨달은 것으로 금방 어떻게 할지 결정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딘가에 기록을 해두면 아 이제 잊어도 괜찮다고 큰 안심을 하고서 머릿속에서 지우고서 잊고 지내는 경향이 있다는 걸.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내려놓으면서 머리와 마음에서 흰색 공간으로 오려두기와 붙여 넣기를 하고 심리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꼭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 아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되거나 병에 걸려 버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발버둥을 쳤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겼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이런 기록을 하며 안심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