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을 쓴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어서다. 나는 3년 전, 그러니까 2022년 1월, 현대자동차그룹을 퇴사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왜 남들은 다 가고 싶어 하는 회사를 너는 그만두려고 하냐고. 워라밸 좋고, 연봉 좋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맞는 말이었다. 당시 나는, '워라밸'을 극으로 끌어올린 삶을 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으며, 퇴근 시간은 무조건 5시. 회사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5시 10분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오롯이 나의 시간이었고, 나는 다양한 취미와 함께 그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3년 차로 접어든 해에, 60명 가까운 동기들 중 본사에서는 유일하게 조기 승진을 하였다. 당시 나는 팀 내에서 '일잘러' 소리를 들으며 주요 인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인테리어를 한다고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뛰쳐나와, 지금은 평균 퇴근시간 밤 10시에 주말 풀출근의 삶을 살고 있다. 연봉은 반 토막, 반의반 토막이 났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고 한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된 걸까.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라는 것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걸 못 견디게' 정도의 뜻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평범한 학생이었다. 수원에서 태어난 나는 수원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그저 수능,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살았다. 그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랬어야만 했다.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갈 틈은 한치도 없었고,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고민의 기회를 던져주지 않았다. 교사였던 두 부모님 역시 본인들이 인생을 살았던 보수적인 방향으로, 말하자면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내 학창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다. 남들처럼 나는 그저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그 안에 '왜'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왜 그 대학과 그 학과를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집과 가까워서, 그리고 요즘은 기계공학보다 전자전기공학이 전망이 좋다고 하길래 정도의 이유였다. 거기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졸업하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이유 없이 수능만을 좇은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 결과 역시 당연하게도, 나는 학과 공부에 흥미를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맥스웰 방정식이니, 삼상 변압기니 하는 것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400명의 동기들이 전부 대기업만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수능이라는 이정표는 어느덧 대기업으로 그 글자가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왜'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왜 지금 이것을 배우는 걸까. 나는 왜 이 학교에 다니는 걸까. 나는 왜 사는 걸까.
그 질문은 그 후 10년간 나를 괴롭혔다.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끝없는 투쟁이었다. 왜. 왜. 왜. 지금까지 살면서 친구들도, 부모님도, 학교도, 사회도, 그 어떤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던, 생각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그 '왜'를, 나는 굶주렸던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고, 또 물어뜯었다. 그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다. 그 거대한, 답 없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알아야 했다. 나만의 답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어떤 가치가 우선인지를 정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에 대해 끝없이 파고들며 '나 사용설명서'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꼭 그래야만 했다.
그것들을 여기에 전부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 그 치열한 투쟁의 결과로 나는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걸 못 견디게' 된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명확한 이유 없이 하루하루 그저 남들처럼 사는 걸 못 견디게' 된 거다. 스스로 작성한 나의 사용 설명서가 두꺼워질수록, 그 설명서와 맞지 않는 현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정한 그 설명서를 버리고, 내가 직접 작성한 내 설명서대로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서른의 나이에,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건 정말 짜릿한 것이었다. 태어남과 함께 시작된 내 인생의 수동성. 초중고 시절과 학과 선택,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끈질기게도 이어진 그 수동성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내 삶에 '남들이 하길래', '사회가 원해서'등의 이유는 없다. 순간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 예상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나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능동성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그것은 무한한 호기심과 동기부여, 열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오롯이 '나 사용법'에 의거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내'가 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끝내 나답게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 글을 누가 볼지는 모르겠다. 아무런 글도 없는 이 블로그에 누가 들어오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20대의 나처럼 '왜'라는 질문에 대하여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큰 힘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투쟁의 전우(?)로서 조금의 연대감이라도 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 연장선으로 다음에는 퇴사 후에 벌어진 일들을 한 번 써보려고 한다. 투쟁으로 마음가짐을 중무장한 사람이 작정하고 덤비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