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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Apr 30. 2023

그럴 수도 있지! 이상하지 않아.

매달 하나씩은 글을 업로드하기로 결심했던 연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4월의 마지막 날 침대에서 겨우겨우 일어나 노트북을 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학교에서는 한명뿐인 상담교사로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로 인해 정말로 정신없는 눈물의 한달을 보내고 있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초1, 초4, 중1, 고1 전체를 대상으로 정서행동발달상의 어려움을 지닌 아이들을 발굴, 선별(screening)하여 조기에 개입하고 보호자의 협조를 얻어 적절한 심리정서적 지원을 연계해주고자 하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다. 취지는 좋으나, 너무나 바쁘고 학업으로 정신없는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라는 사업은 주류가 아니며 거의 혼자 검사, 면담, 상담, 연계, 관리를 주도하려다 보니 넉다운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검사와 상담의 과정 속에서 묻힐 뻔했지만 발견된 아이들의 고통은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 감사하고 또 다행인 순간들이 많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한 공간 속에서 묻혀 지내면서 자신의 고통따위는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지내다가, 우연히 검사에 자신도 모르게 솔직히 응답해서 상담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마음을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담담하게라도 입 밖으로 뱉어내게 되면, 그 순간이 이 아이에게는 참으로도 의미있고 후련한 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월에는 별이 된 스타도 있었고 죽음으로 몸을 던진 아이들도 있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차오르는 한달이었다. 나는 아직도 죽음에 대해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지만, 게속해서 죽음을 묻고 듣고 말하는 자리에 있기에 이것이 나의 사명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었다.  



아이들이 많이 하는 말에는 "제가 솔직히 힘든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말과 "제 감정을 저도 모르겠어요."라는 말이다. 나또한 그랬기 때문에 고등학생씩이나 됐는데 자기 감정 하나도 모른다는 게 말이되나 싶지만,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 어른들도 자기 감정을 잘 모르는데, 청소년기의 아이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힘든 건 맞는지, 내가 울만한 상황이 맞는지, 왜 힘든건지, 힘들긴 한건지 등등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수많은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꾸만 승인받고 타당화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찾아 헤맨다. 그럴 때 내가 아이들에게 많이 해주는 말은 "그럴 수도 있지! 이상하지 않아." "너가 힘들면 힘든거지, 이유가 왜 필요하겠어?" "네가 하는 모든 고민들은 네 또래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들인걸. 이상하지 않아."등등이다. 우리는 왜 내가 느끼는 감정마저도 자꾸 타인의 시선에 빗대어 평가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타당화받고자 애를 쓰는 걸까. 사실 감정은 그 자체로 이유가 필요없다. 감정과 느낌은 그것이 이미 떠오른 이상, 그럴만 하니까 떠오른 것이고, 그 이유를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남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그 자체로 충분히 수용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아이들이 내게 "잘 참고 혼자 삭히면 될 일을 왜 꺼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울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수차례 이렇게 말해준다. "완벽한 존재라서 힘든 감정을 느끼지도 않고 힘듦을 꺼내어 나누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힘든 감정을 느끼고 꺼내어 나누지 않으면 고통스럽고 버거운거야. 그러니까 꺼내어 나누어야 하는거야. ㅇㅇ이가 힘들지 않으면 선생님도 이야기하라고 안하지.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 ㅇㅇ이는 지금 힘든데? 눈물도 나고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걸로 느껴지는데? 그럴 때는 힘든 마음을 서로 나누고 공감받고 위로받으면서 그 시간을 버텨내는거야. 상부상조하는거지.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또 아이들이 우려하는 것 하나. "힘들다고 말하면 친구들도 힘들어질거고, 부모님은 속상해하시고 걱정하실 게 뻔해서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럴 때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선생님은 ㅇㅇ이가 말하는 걸 듣고 마냥 힘들기만 하지 않은데? ㅇㅇ이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고맙고, 선생님도 힘들 때는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고 힘을 얻으면서, 그렇게 사람들과의 연결망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인 것 같아. " 그리고 "선생님이 만약 ㅇㅇ이 엄마라면, ㅇㅇ이가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냈다는 것을 다 지나고 나중에 알게 되면 그건 더더욱 속상하고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아. 힘들다는 걸 알면 그 순간에는 당연히 어머니도 놀라시고 걱정하시겠지만, 힘든 시기를 ㅇㅇ이와 함께 보내고 힘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면 좋겠다. ㅇㅇ이가 직접 말하는 게 힘들면, 선생님이 어머니께 대신 말씀드려볼까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힘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힘든 것은 그냥 힘든 것이고, 그냥 뱉어내고 나누면 되는 것이다. 꽁꽁 숨기고 혼자 힘들어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힘든 마음의 짐을 끌어안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주변의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슬픔은 나누면 두명의 슬픈 사람이 생길 뿐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슬픔을 나누는 직업을 가진 내가 보기에는 슬픔을 나누면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슬프지만 든든한 두 사람이 생기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는 슬픈 두명의 사람이 되지만, 곧 슬픔을 극복하고 소화해내어 함께 웃는 두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시 느끼지만,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만 또 그 회복을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은 참 불완전한 존재이고, 서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더이상은 나의 감정에 의문을 품지 않고 그저 나누고 그렇게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기를. 어떤 힘듦도 어떤 슬픔도 어떤 기쁨도 영원한 것은 없기에, 순간순간의 감정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매몰되기 보다는 충분히 느끼고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인생은 종합선물세트여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 감정은 좋고 행복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쁘기도 행복하기도 벅차기도 설레기도 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절망스럽고 우울하기도 한 것이 인생이다. 흑이 있어야 백이 있고 낮음이 있어야 높음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의 감정을 그냥 인정해주면 좋겠다.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 하고. 



그럴 수도 있지! 이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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