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미쌤 May 02. 2023

빈 자리에 남는 것은

빈 자리에는 참 많은 흔적과 상처와 그림자가 남는다. 5월도 내게는 그렇다. 사실 모든 달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올해는 아버지가 떠난 지 5년이 가득 지난 해, 할머니가 떠난지 4년이 가득 지난 해, 강아지가 떠난 지 꼬박 3년이 채워지는 중인 해다. 1월은 아버지의 생신, 2월은 할머니의 기일, 3월은 아버지의 기일, 5월은 어버이날, 강아지의 기일,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있다. 이래서 2018년 이후로 내게는 상반기가 괜시리 버겁고 어둡고 무거운 시기가 되었는데, 학교 일정상으로도 4-5월이 참 바쁘고 힘들어서 인생은 역시 설상가상이라는 게 새삼스러운 진실로 다가왔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론으로 애도의 과정에는 5단계가 있다고, 앞글자로 '부분타우순'으로 외웠었는데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의 5단계 중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희망하기로는 순응단계였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분노, 우울, 타협, 순응이 모두 뒤섞인 것 같기도 하다. 빈자리에 남는 것은 혼돈이다. 뭔지 모르겠는데 슬프고 화나고 원망스럽다가도 감사하다가도 억울한 그런 것.


나는 아직도 심폐소생술 교육이 많이 힘들다. 이상하게도 교직과 상담의 길에 발을 들여서 대학생 때부터 매년 심폐소생술교육을 듣고 있는데, 대학생 때는 교육을 받는 중에도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속으로 욱씬욱씬 화가 나기도 했었다. 올해도 첫 시험날 전교직원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고, 역시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5년 전에 비해서는 조금 더 그 감정을 티내지 않고 삭힐 수 있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들을 때면 내가 곁에 없어서 아빠를 살리지 못했다는 나 혼자만의 이상한 죄책감과 책임감, 진짜로 죽은 사람이 내 가족인데 그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쓰러지는 순간의 영상과 가족의 녹음을 들려주는 강의에 대한 심한 불편감과 때로는 유머를 섞는 강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 내가 과연 그 순간에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불안감 등이 마구 뒤섞여서 만화책에 나오는 뒤죽박죽 상태처럼 머리와 마음이 꼬여버린다. 그럼에도 속으로 삭히며 내가 상담교사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보상심리인지 뭔지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살리고 복과 덕을 짓고 있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갑자기 누군가가 죽는 상상이 떠오르면 심장이 막 뛰면서 짧은 순간 급격히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특히 이 상상은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을 때가 많은데, 우연히 전화했을 때 연락을 받지 않거나 집에 왔는데 사전공유없이 집이 비어 있거나 조용할 때면 순간적으로 엄마가 어딘가에서 쓰러졌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닐 것이라는 걸 알지만, 알면서도, 급하게 집에서 화장실과 베란다 문을 모두 열어보기도 하고 그저 못봐서 못받는 것일텐데도 연락이 닿기 위해 핸드폰, 집, 이모에게까지 전화를 연달아 걸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문득 나도 갑자기 죽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출근하거나 약속을 가면서 오늘 집을 걸어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 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갑자기 죽게 됐을 때 남게 될 가족들에 대해서도 너무 당황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자동적으로 이어져 떠오른다. 그래서 틈틈이 내 생각과 살아온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나의 죽음 뒤에도 남은 사람들이 너무 나에 대해 모른다는 당혹감과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 같아서. 또 갑작스러운 나의 빈 자리에도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해서.


그리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 사람들의 경험에 과하게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죽음과 인생의 끝은 각기 다르고, 그 상황과 관계성에 따라 모두가 서로 다른 감정선을 지니기 마련일텐데, 나의 감정이 아직 차분하게 평평해지지 못한 탓에 순간적으로 나의 감정이 과잉되어 내 마음대로 상상하여 이입되어버리고 만다. 그 사람과 그렇게 친밀하지 않음에도 먼 발치에서만 보면서도 과하게 감정이 동요하고 일렁인다.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을 과하게 강요할 때가 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거나 이상한 증상이 있다고 하거나 할때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보채고 약을 사와서 먹으라고 되풀이하며 강조한다. 또 다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인지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인지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이든지간에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직도 나는 죽음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분명 직후보다는 5년이 지난 지금이 조금 더 나아졌으니 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조금 더 담담해지기를 바래볼 뿐이다.


빈 자리에는 내가 남아있다. 나는 아직 남아있다. 빈 자리에서 비었다는 걸 모른 채 하며 벽으로 구석으로 고개를 돌리고 쭈그리고 외면하지 말고, 빈 자리인 걸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씩씩하게 온 힘 가득 당당하게 두 발로 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와 더 이상 비어있지 않게 따뜻한 온기로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곁의 온기는 충분히 많은 위로와 지지가 될 수 있기에.


빈 자리에 남는 것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다. 상처와 그림자와 어두움이 짙게 묻은 나이지만, 그럼에도 다정함과 따뜻함이 남아 있는 나. 그게 나를 떠난 존재들이 빈 자리에 남겨준 것인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