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미쌤 Jan 13. 2024

일에서 희망(hope)과 의미(meaning) 찾기

2024년 새해의 첫 글은 요즘 많이 고민하는 주제인 "일에서 희망과 의미 찾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이다. 혹자는 일이란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이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는 허상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혹자는 일(work)은 인생의 주요한 분야들(work, play, love 등) 중 하나이며, 대다수의 시간을 들이는 이 곳에서 희망과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다고도 한다. 일에 대한 나의 가치관도 여러 차례 바뀌고 정교해져가는 과정 중인 것 같다. 대학생 시절의 나는 일과 공부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하는 공부와 일에 최대한의 노력과 열정을 투입했으며, 또 원하는 성취를 얻어내면서 나의 커리어는 수많은 성공들로 가득한 꽃길만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임용고시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원하는 대로 서울의 고등학교로 발령받은 신규 상담교사인 나는 아주 작은 월급에 실망했고, 또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일이 많아지는 기이한 교직 또는 공직의 구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그저 받은 월급만큼만 일하는 것이 이로운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햇수로 4년차인 지금은 나름대로 교직사회에 적응했고, 또 사회에 진출하는 나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비교해보면서 교직의 장점을 반대로 느끼기도 하면서, 나의 일에 지금까지는 미처 곰곰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떤 의미와 사명, 희망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상담교사 일을 하면서 과다한 업무로 야근을 반복하고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 일을 평생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감을 느끼던 2-3년차 무렵,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던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작년에 상담교사 교원학습공동체에 운이 좋게 합류하면서 또래 구성원들과 함께 교직원공제회 집단상담을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집단상담의 주제는 번아웃(소진) 관리였는데, 그곳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나의 강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작업을 하였다. 나의 토너먼트에서 최고로 승리한 강점은 '사랑(love)'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고 사랑을 받을줄도 줄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이런 강점을 직업인 상담교사로서도 늘 고민하고 발휘하고자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랑도 제대로 주어야 약이 된다고 믿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살펴가면서 상대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기억에 남는 다른 상담선생님의 강점에는 '희망(hope)'이 있었다. 교육이라는 분야는 아동청소년을 만나는 일이고 아동청소년은 우리나라의 미래와도 같기에,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교사라는 업은 '희망'이라는 가치와 강점을 믿는 자신에게 참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내게는 새삼스럽고 낯설게 다가왔다. 내가 어려서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꿈꾸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러한 의미와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상담교사의 일은, 또 교사의 일은 당장의 성과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부장님께서도 마치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다고 하셨는데, 그렇기에 일을 하면서도 이러한 구조는 늘 시험과 성적으로 당장의 성취와 결과를 내왔던 젊은 MZ세대인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또 동기부여가 되기 쉽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집단상담에서 오히려 당장의 결과나 인정과 칭찬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씨앗이 되어 미래에 싹을 틔운 것을 어쩌다가 알게 되었을 때 그 무엇보다도 보람차고 행복하다고 하신 동료 선생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랬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재학 중에는 치고받고 아웅다웅하며 아이의 현재를 함께 버텨내고 살아내기에 급급했는데, 졸업하고 찾아오는 아이들은 꼭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들이라고 많은 선배 선생님들께서 말씀해주셨고 또 정말로 그랬다. 졸업 후에 또 어떻게 그렇게 한 뼘 커서는, 그 때 감사했다고 말하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또 다르게 힘든 걸까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교육이라는 일은 현재의 성과가 아니라 미래에 나도 계산하지 못하는 어떤 변화와 성장을 초래하는 씨뿌리기의 일이라는 것을 그 때 한 번 새삼스럽게 깊이 느꼈다.



두번째로 유니세프와 서울시교육청이 협력하는 '마음톡톡 생명지킴이'협의체에서 멋쟁이 메이와 친구들 교재 검토 및 적용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내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사실 현장, 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하루는 매우 극적이고 역동적이라서 어떤 거대한 교육의 방향성이나 목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협의체 회의에 한달에 한 번 참여하면서 그 때만큼은 그러한 거대한 목표와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와 시간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다. 방금 전까지 생명존중위원회를 열고 긴박하게 학생 지원에 대해 논의하고 고민하고 선착순 접수인 지원사업에 공문을 허덕이며 작성하다가 급하게 나온 출장회의에서는 차분하고 점잖고 예쁘게 둘러앉아 위기 예방과 성장 지원을 위한 마음건강 교재에 대한 회의를 한다는 것이 무언가 기이하고 비현실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1년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 안에서 직접 또래상담 동아리 아이들과 개발한 교재로 3차시의 수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눈빛과 피드백을 받으면서 아주 소박하지만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협의체에 모여있는 초, 중, 고 학교급별로 수업에 대한 결과보고를 나누면서 이러한 작은 시작과 변화들이 쌓이면 또 어떤 거대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24년 1월 10일 협의회 자리를 가지면서 교재가 디자인 단계에 있어 마무리되는 현시점에서 그동안의 과정들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면서 또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논의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유니세프 모두 현재 교육계의 상담 마음건강 사업들의 프레임이 '위기학생 선별-치료비 지원-모니터링'의 사후개입에 치중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전체 학생들을 위한 사전예방과 발달성장 지원 측면의 보편적인 마음건강 수업, 궁극적으로는 사회정서학습(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은 당장의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긴 호흡의 정책에 과연 필요한 만큼의 예산이 확보될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마음도 나누었다. 2024년에는 사회정서성장지원과로 이름도 바꾸고 조직개편이 있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학생마음건강지원과 관련하여 교육부와 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도 되면서 걱정도 되었다. 학교라는 교육조직이 개별 학생의 마음건강을 위해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상담교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아직은 뭉뚱그려져 정체가 모호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와 담론의 자리에 함께 해보면서 교육이라는 일의 분야만큼 어떤 의미와 명분, 사명과 희망을 찾기 좋은 다른 분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런 교육계에 일하는 상담교사인 나도 어떤 희망과 의미를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의 내 생각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아직 3월에 어디로 이동하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학교보다는 교육청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기에,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3년간은 교육정책과 사업들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다루어 보고 배우면서 이러한 고민들을 조금 더 깊이 구체화해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교육지원청 위(Wee)센터에서 주관하는 상담교사 멘토링에 멘티로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최종적으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미래의 내 모습은 멘토 상담선생님처럼, 또 나의 강점인 사랑을 발휘하면서, 내 업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까지의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내 업을 사랑하게 되는 데에 일에서 찾는 의미와 희망이 기여한다면 그 또한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싶어졌다는 마음이기도 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기록의 힘 (2024 다이어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