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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작가 박혜진 May 09. 2024

9. 내일부터 6시에 일어날 거야

깨알 글씨, 10분 단위로 아침 시간을 계획하다

아인이가 하는 몇 가지 일상적인 행동 중에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1.

책가방이나 준비물은 일찌감치 싸서 현관 앞에 둔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셋을 키워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언니 오빠는 하지 않던 행동을 아인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했다.


체조 학원을 매주 토요일 오후에 가는데,

작은 물 한 병, 간식, 추가로 필요한 옷가지, 간식 살 돈이 든 지갑을

가방에 넣어 현관 앞에 둔다.


2.

시간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아인이는 시간을 '역계산'해서 준비를 했다.

예를 들면, 9시 반에 나가야 한다고 하면

"긴 바늘이 6에 가면 나가야 하니까

4에 갈 때까지 이걸 하고 2에 갈 때까지는 저걸 할 거야."라고 알려 준다.


3.

1학년 입학을 하니 학사력을 받았는데,

가장 먼저 세었던 것은 방학하는 날까지 몇 밤을 자야 하는 가였다.

가장 즐거워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은 어린이날이었다. "몇 밤 자면 된다"며 좋아했다.

생일도 계획적으로 기다리며 준비했다.

자기 생일은 물론, 오빠 생일, 언니 생일, 엄마 생일, 아빠 생일을 서너 달 전부터 준비했다.

선물은 뭘 할 것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틈틈이 사탕이나 젤리, 액세서리를 모았다.


4.

올해부터 공식적으로 용돈을 받기 시작했다.

7일로 나누면 하루에 1천 원을 쓸 수 있단다.

엄마는 월 단위로 주고 싶어 했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단위도 커지고 관리하기도 어렵다며 일주일 단위로 받겠단다.

일요일 저녁 8시에.

 그때 기입장과 남은 돈을 맞춰 오기로 했다.

대신 엄마는

천 원짜리와 동전으로 정확한 금액을 준비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어쩌다 보니 2주 치를 한꺼번에 줘야 했다. 만 원짜리로 주려고 했더니 이번에도 딱 거절했다. 그러면 용돈을 넣는 아코디언 주머니에 주 별로 나눠 넣을 수가 없단다.   

결국 돈을 바꿔서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 동전으로 줬다.


요즘은 6월, 7월에 있는 오빠, 언니 생일 선물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살 돈을 모으느라 거의 간식을 안 사 먹는다.

어제 어버이날 꽃을 사는 데도 예산에 맞는 꽃을 사느라 고심 끝에 꽃을 샀다.

(뽀대 나는 꽃다발을 사드리고 싶었지만, 예산 초과!

고르고 골라 엄마 아빠 따로 드릴 수 있는 꽃을 1주일치 용돈을 들여 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쉬기'가 참 많다... 쉬는 게 중요한 아이.


5.

대동초등학교에 다녀오고 난 다음 날, 아인이는 어떤 결심을 했다.

공책에 무언가 끄적이더니 내일부터는 5시 반에 일어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8시에 자야 하는데, 일단 8시 반에 자 보기로 했다.

휴대폰 알람을 맞춰 놓고, 8시 반이 되자 자러 들어갔다.


아침 계획은 이러했다.

30분 운동하기, 샤워하기, 아침 먹기, 책 읽기, 중국어 10분 하기, 이 닦기, 운동 조금 더 하기

8시 20분에 학교로 출발하기.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얼버무렸다.

다음날 실제로 5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샤워도 했다.

아침을 6시 반에 먹었다!!!

이런저런 것을 다 하고 났는데도 8시가 안 됐다.

 

둘째 날 다시 잠들어서 늦게 하루를 시작하고 난 이후,

6시로 '현실적으로' 늦추었다.

언제까지 하나 두고 보고 있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전학 가서 통학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연산이 빠르지 않은 아인이.

그러나 시간 계산은 빠르고

실행은 즉각적이다.

마음먹은 대로 해내는 모습은

볼 수록 신기하다.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딸한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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