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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타 Mar 19.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천하의 난봉꾼 토마시는 의사로서의 직업에 충실하였지만 정작 퇴근 후에는 여자들을 찾아 다녔다. 정사를 나누어도 잠은 자신의 집에서 혼자 잤다. 잠자리에 대한 두 개의 관점을 고집스럽게 견지하며 지냈다. 그에게는 스쳐지나간 여자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보헤미아 출신의 테레자가 자신을 만나러 프라하를 찾아 왔을 때에도 그는 이전의 방식대로 그녀를 대하였다. 그녀와 동거를 하게 되고 결혼을 하였어도 정부 사비나와의 정사를 마다하지 않았고 잠자리 또한 구분하였다. 이러한 통속적인 상열지사의 스토리에 대해 밀란 작가는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을 소설의 인물에 용해하였다. 작가는 통속적인 서정을 서사와 통섭하는 기법을 러시아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니아를 연상한다. 하지만 작가의 독특한 존재론적 인식을 체화하여 나름 기교적이다. 타자의 관점에서 존재론을 파악하는 것이 새롭다. 너 없이는죽는다고 난리를 치더라도 헤어지고 나서는 연인 중 일방은 다른 일방을 흐릿한 기억에 둘 뿐이다. 설령 한 편이 애절한 연정에 몸서리치더라도. 이를 두고 저자는 관계성으로 파악한 존재 관념을 바탕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규정한다. 철학의 사조와는 언뜻 다른 인식을 갖는 듯하나 존재의 관념에  관계성을 내포한  하이데거의 철학에 닿는 듯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작가가 주목하고자 한 부분은 회귀하는 존재론을 설파한 니체였다. 그렇고 그런 여자 테레자가 프라하에 남아 있을 것을 선택한 순간 토마시는 의사로서의 직분이 보장된 스위스행을 내팽개쳤다. 선택이라기 보다는 베토벤의 4중주의 당위적 표현에 가까웠다. 이어서 억압적인 프라하의 사태는 토마시에게서 의사직업을 박탈하고 보헤미아에서 트럭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도록 한다. 가끔 그녀와의 정사를 위해 고물 트럭을 타고 인근 호텔로 갔다 왔다. 그러다 비탈길에서 트럭이 추락하여 둘 다 정사하고 말았다. 운행 당시 트럭의 브레이크는 고장난 상태였다. 닥터 지바고의 유리가 라라를 보기 위해 행한 선택과 그 죽음에 유비한다. 찰나와 영겁을 가르는 순간이고 선택이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는 금강경의 교리를 연상하였다.


  이 소설의 백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우울해 하던 사비나가, 토마시와 테레자의 부고를 접하고 두 사람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정사 사실을 인식 한 후, 인근의 공동묘지를 배회하던 장면이다. 그러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장례식장에 참여하여 망인이 묻힐 구덩이를 보고 도망쳐 나왔다. 분명코 사비나는 망인의 사체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망인이 이승을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꼈다. 핍진하게 죽음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다. 아울러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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