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해 Apr 11. 2023

멈추어서 본다

폐지-빈수레

금요일 퇴근길, 홍대 앞

바로 옆 골목으로 벗어나

편의점에 밀려 보기 힘든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다


문 옆에 한 허름한 남자 노인이 쭈그려 앉아

한 손에는 반쯤 비어있는 소주병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거의 끝까지 핀 담배가 들려있다


왼편에 폐지를 모으는 작은 수레

몇 백 원.. 아님 몇 천 원

하루치의 고단함과 바꿔버린 소주 한 병의 만찬을 손에 쥐고

석양은 낮달을 붙잡고 취해있었다


조금만 벗어나면

끝 모를 추락이 더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그 간절함이 희망이었을 때

홍대 저녁의 거리가 흥청거렸다


삶이라는 한 글자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되뇌고 있을 시간이

허공에서 붉어질 때 노인은 담뱃불을 끄고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빈 수레를 끌고 간다


문득

그 노인, 낡은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나도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었다


그의 뒷모습은 담담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한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