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이희경
길을 걷는데
휴대폰에 녹음기가 켜져 있었다
목소리들이 들어와
천 개의 물감을 엎질러 놓고
천 개의 이야기를 만든다
저마다의 소리들이 입가에 살포시 흘러
웅웅웅웅웅
단 한 색을 찾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던 순간에
복잡스러운 소리 속에서 선명해지는
“뭐, 대충 하면 안 되겠니?”
대충은 어떤 색깔일까?
회색? 너무 어두워
파스텔 톤의 연한 라벤더 색이 어울릴 것 같다
아냐, 코랄 색은 어떨까?
코랄색은 따뜻한 색이기도 하니까
대충에서 향기가 쏟아져 나온다
대충이라는 색깔로 물든 하루
정확히 잡히지 않는 잠깐의 휴식
모서리가 둥근 구름 위를 걷는다
나에게 요구하는 완벽함 속에
불확실한 것들의 모호함들
정확히 잡히지 않는 대충이
연한 코랄 빛깔로 퍼져 들어
나의 캔버스를 채우고 있었다
없어져버렸던 한 순간이 벙긋이 웃으며
찾아와
그대로 윤곽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내가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