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드디어 실물로 만났다. 생애 처음으로 내 이름이 찍힌 책이었다. 나를 포함해 9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쓴 책이어서 혼자 이름이 찍힌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름이 찍혔다는 사실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다. 흥미롭다는 표현이 좀 안 어울리긴 하다. 첫 책을 실물로 만나는 순간을 여러 번 상상했었다. 내 이름이 찍힌 책이라… 눈물이 나려나, 형언할 수 없이 기쁘려나. 그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는데, 막상 책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흥미롭다.’ 였다. 이게 다라고? 싶을 만큼 감격스러운 장면이 없었다.
지난 4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한 독립서점에서 5회째 주최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4월부터 총 6번의 온라인 만남이 있었고, 이후엔 카톡으로 서로 원고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책을 완성했다. 9명의 작가가 책의 기획과 원고 방향부터 시작해서 표지 및 엽서, 책갈피 등 굿즈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한 원고당 최소 4~5차례에 걸친 퇴고 과정이 있었고, 탈고 후에도 여전한 오타와 자잘한 수정을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쏟았다 (특히 프로젝트의 주최자이자 주관자인 책방지기님이 편집자 역할로 끝까지 고생했다).
그래서 더더욱 의문이었다. 물리적인 시간과 무수한 노력을 기울인 책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는데, 나는 어째서 이보다 더 감격하지 않는 것인가.
꼬박 반년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수십번 같은 원고를 읽어온 탓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설렘이 이제는 무뎌진 걸까. 공동 집필이어서 그런 걸까. 개인 책이었다면 조금 더 감흥이 있었을까. 아니면 벌써 글 쓰는 일이 재미없어진 건가. 여러 의문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모두 아니었다.
딱 한 가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건, 최근 들어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문제나 참여한 작가님들이 관련된 건 아니었다. 다만 ‘공동집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하필 팔로우 중인 작가 중 몇 명이 공동집필에 관한 부정적인 글을 올린 게 시발점이었다. 공동집필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작가들은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 과정을 밟아 책을 낸 이들이었고, 아직 그런 과정을 따라가 본 적 없는 나로선 그들의 의견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작가이기에, 그가 공동집필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꽤 큰 타격이었다. 나는 곧장 브런치 이력에 자랑스럽게 올려뒀던 공동집필 책 제목을 삭제했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지워 버렸다. 내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또 시작부터 글러 먹은 건가. 자책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자세히 읽으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이 공통으로 비판하는 건 특정 프로젝트였다. 요즘 인스타그램 광고에서도 빈번하게 보이는 ‘@주 만에 작가 되기’ 라는 프로젝트 말이다. 제대로 된 편집자도 없이 단기간에 글을 완성하고, 그저 책을 내는 일 그 자체에 주목한 듯한 프로젝트였다.. ‘작가가 단기 속성 자격증이 되어버렸다‘는 한 작가의 푸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충분한 퇴고의 시간을 거쳤고, 어느 정도 편집자의 역할을 할 사람도 있었으니 조금 떳떳해도 되는 걸까.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선까지 신경 쓰고 사는 게 무척 피곤하단 생각도 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아무리 기성작가라 할지라도 내가 이 작업에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느냐에 따라 내가 만들어 낸 작품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게 아닐까. 작가의 문턱이 낮아진 건 맞지만, 그래서 불법으로 책을 만든 건 아니지 않냐, 라는 소심한 반항을 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워낙 독립출판으로 기존 책의 틀을 깨는 작품도 많이 나오는 시대이니만큼, 어느 정도 새로운 책 집필 방식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매 시대에서 반복되온 기성세대와 신진세대의 갈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정도로 깊게 이야기하려던 건 아니니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하고.)
사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긴 했다. 내가 내 책에 감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결론적으로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원래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책을 낸다는 건 그냥 원래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책의 실물을 처음 보는 그 순간이 대단히 감격스럽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는. 그저 오…! 라는 감탄사와 흥미롭다는 생각. 그리고 책 사진을 찍으려 주변을 신경 써서 정리하고, 사진이라도 예쁘게 남기자며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사진 여러 장을 찍는 일. 혹여나 모서리가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책을 만지는 정도의 정성.
작가는 많아졌고 책도 많아졌다. 대신 책 시장은 줄었고,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책을 만들기로 작정하고부터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들어온 어두운 출판시장 이야기에 돌연 질려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이 출판되고 조용히 묻힌다. 과연 우리의 책은 누구에게 얼마나 읽혀질까. 어엿한 종이책을 출간했고, 나름대로 작가로 데뷔도 한 셈이지만, 결국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출간 전부터 힘이 빠지는 듯했다. 그토록 원하던 책을 내고도 여전히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되어 버린다면, 사람들이 읽는 글이 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약간의 막막함이 함께 떠올랐다.
그래도 또 힘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사람이니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홍보를…
이 글은 결국 신세 한탄의 탈을 쓴 홍보의 글로 마무리 지어질 운명이었던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