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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22. 2021

- 누드 2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위탁엄마가 되는 여정>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깊고 깊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아침을 깨우는 남편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장난스럽게 들렸다. 피식 웃으며 눈을 뜨는데 내 잠옷 윗도리가 풀어져 있는 게 보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엄마의 따뜻한 가슴에 안기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유아기에 느꼈던 포근함을 다시 맛보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인지 모르겠다. 남편도 간밤에는 그 포근함이 그리웠을까.

팔을 등 뒤로 돌려 속옷 연결고리를 찾아 더듬거렸다. 쥐눈이콩만 한 고리가 자꾸 엉뚱한 곳에 끼워졌다. 손끝에 힘을 주고 다시 시도해 봤지만 자꾸만 어긋났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생활이 그랬다. 끼웠다가 풀기를 반복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함께 살아간다는 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대단한 일이다. 


나의 결혼생활은 내면의 옷을 벗어내는 과정이었다. 서로의 장․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숨은 상처가 들춰지는 누드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상하고 짓눌린 마음이 결혼생활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남편은 결혼 후 7년 동안 학생이었다. 학기 중에는 리포트를 쓰느라 자기 방에 들어가 있고,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남편이 집을 비우면 내 정서는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오랫동안 묻어둔 심리적 빈곤이 불안함과 허전함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왜 자꾸 예민해지는지, 왜 자꾸 관계가 뒤틀리는지. 남편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눌러놓았던 무의식이 일렁거렸다.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편을 탓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얽히고설킨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남편은 갑자기 잡힌 일정도 순순히 따르는 편이지만, 나는 계획된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미리 약속된 일정이 아니니까 가지 않겠다고 하면, 남편은 사람 사는 일이 계획대로만 될 수 있냐며 느릿느릿한 말로 타이른다. 나와는 다른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핵심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말하는 편인데, 남편은 이 얘기 저 얘기를 한정 없이 늘어놓는다. 답답한 마음에 핵심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 사는 얘기에 무슨 핵심이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결혼 전에는 그런 느긋함이 여유롭게 보였다. 문제는, 살수록 답답함과 줏대 없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을 상황에 따라 변형시키고 뒤집어 해석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고민하고 분석하고 곱씹어 보다가 그 무게를 덜어내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 동네 도서관이다. 서가에 낮은 자세로 꽂혀있는 책들은 낡고 허술한 내 관점을 조금씩 바꿔주었다. 특히, 결혼생활에 대한 책이나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한 책은 남편을, 남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다른 별에서 온 사람으로 비유될 만큼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고 능력과 업적을 중요시하는 반면, 여자는 관계 중심적이고 친밀한 대화나 아름다운 것에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과 내가 말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도 서로의 가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성격유형 검사(MBTI)를 받았다. 서로의 차이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였다. 검사 결과 남편의 성향은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으로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이라고 했다. 행동보다 반성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조언이 있었다. 

나는 ‘조용하고 표면에 나서지 않는 성향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체성과 독자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결과지 위에 표시된 막대그래프는 손톱만큼의 차이를 두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인식과 생활양식 기능에서 차이가 났다. 남편은 감성적으로 인식하는 유형인 반면, 나는 감각적으로 판단하는 유형이었다. 그만큼의 간격이 결혼 생활을 엎치락뒤치락하게 했다는 데 허망하기도 했다. 그동안 남편을 모르고 살았던, 아니 모르면서도 모르는 줄 몰랐던 내 무지가 부끄러웠다. 미안함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이었다. 조그만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식구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어리둥절해하는 얼굴들 앞에서 미안함은 촛농보다 먼저 흘러내렸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 내가….”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도 남편은 짙은 쌍꺼풀을 끔뻑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아니, 내가 더 미안해, 공부한답시고 당신 고생만 시켰잖아. 두툼한 손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순간, 데워진 감정이 눈에서 턱까지 빠르게 흘러내렸다. 감정의 벽이 허물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은 벌게진 얼굴로 슬그머니 다가와 손을 얹었고, 딸아이는 허리춤에 안겨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그날의 화해는 집안의 긴장을 풀고 막혔던 관계를 터주었다. 굳어진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용서의 위력을 경험한 날이었다.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함은 중년 아저씨의 잿빛 무게감으로 변해 버렸다. 까칠한 수염이며 귀밑머리에 올라온 흰머리 칼도 영락없는 아저씨 것이다. 남편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고 몸을 바짝 갖다 붙였다. 입술을 오므리고 귓가에 갖다 댔다. 평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해주면 하루 종일 싱글거릴 것 같았다. 검지로 한쪽 코를 막고 맹꽁이 소리로 불렀다. 

옵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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