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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Nov 04. 2021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위탁가족 에세이

천사를 만나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프롤로그-

행복한 이별을 준비하는 

위탁가족입니다    

      

우리 막내 은지는 엄마가 둘입니다. 낳아 준 엄마와 위탁 엄마. 

나는 은지의 위탁 엄마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만날 때부터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이 책도 언제일지 모르는 우리의 이별을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은지와 어떻게 가족이 되었는지, 어떻게 서로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는 건 우리의 역사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위탁 가족 이야기라서 조금 겁이 났습니다. 

혈연 가족도 아니고, 입양 가족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읽힐까? 

은지가 상처 받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 한동안 멈춰 서 있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처럼 내게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허수아비가 두뇌를, 양철 나무꾼이 심장을, 겁쟁이 사자가 물약을 받은 것처럼…, 

내게도 동화 같은 선물이 짜잔, 하고 주어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용기는 받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위탁 가족으로 살면서 편견을 마주할 때마다, 단단한 관념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내 안에서 용기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른풀처럼 바스락거리는 용기라도 발견한 날엔 그 힘으로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나는 은지의 위탁 엄마입니다. 

은지가 생후 11개월일 때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은지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 배가 얼마나 뚱뚱했는지, 

태어날 때 우렁차게 울었는지. 은지 이름은 누가 지어줬는지…. 

은지가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건너뛰고 엄마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위탁 엄마로 사는 동안은 더 생생히 기억하고 싶어서 틈틈이 메모해 두었습니다. 

첫걸음을 뗀 날, 처음으로 이빨이 빠진 날, 낳아준 엄마를 만나러 간 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은지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됐고, 조잘조잘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왕수다쟁이가 됐습니다. 

보조 바퀴를 떼고 자전거를 타고, 밥을 먹고 난 후엔 스스로 그릇을 치우는 의젓한 언니가 됐습니다. 

은지의 성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위탁 가족이 아니었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이 특별하고도 평범한 일상이 내 삶이어서 감사합니다. 

은지를 통해 배우고 있는 삶의 가치들이 조금씩 나를 성장시켜 줘서 또 감사합니다. 

성장할 때마다 용기를 찾을 힘을 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순간, 감사할 일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남남이 만나 가족이 되는 과정에서 절망도 후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의 자리는 감사였습니다. 

이것도 은지를 키우면서 배운 지혜입니다. 


은지의 엄마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할 즈음, 

중앙일보에서 위탁 가족 이야기를 연재해 보라고 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2년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를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응원에 덩달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원고를 모으고, 추려서 이렇게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 

퇴고하면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추가했고, 내용이 겹치는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원고를 모아놓고 전체를 읽다가 또 지난 시간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빵빵했던 은지, 팔목이 두 번이나 볼록볼록 접혔던 우량아 은지를 업고 

여기저기 자랑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내 앞에 있는 은지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쑥쑥 자라는 은지를 더 생생히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쓰려고 합니다. 

은지가 내 곁을 떠나는 날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서 전해주려고 합니다. 

그땐, 꼭 안아주면서 말할 겁니다. 


너는 나의 천사였다고.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 고마워하는 관계라고 하지요. 

우리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별 후에도 서로 고마워하면서 마음은 영원히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아기 천사 은지에게 배운 사랑과 겸손, 희망과 용기, 사람에 대한 재발견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같이 호흡하면서 때론 먹먹한 눈물로, 때론 배꼽 잡는 웃음으로 읽어주신다면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책이 위탁 가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내내 평안하세요. 


은지가 쓴 편지 (2021.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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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놀(다산북스)                                                                                         

* 일러스트- 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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