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네 시아버지 돌아가셨어.’
‘정말? 언제?’
‘어제 교회로 연락이 왔대. 엄마랑 아빠랑 시아버지랑 가깝게 지내시던 교회 분들이 모여서 장례식장에 갔는데, 너는 없고 모르는 사람들만 있다며 놀라서 전화 했더라고. 연락 안 온 거야?’
‘안 왔어.’
‘장례식장이 서울 OO병원이야.’
‘그래? 작은집에서 모셔왔나 보지.’
‘그간 한 번도 연락 없었어?’
‘그 후로 한 번도 없었어.’
‘그래도 가 봐. 가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고. 애들도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인사드리게 해. 그리고 가서 연락해. 너 있을 때 갈게.’
며느리는 소파에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 고약한 성질머리로 봐서 난 한겨울에 죽지 싶다. - 시아버지의 말대로 밖은 한겨울 풍경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에 다 얼어붙어버렸다.
–결국! -
며느리는 단전 저 밑에서부터 끌어올린 숨을 길게 토해 냈다.
그 해 삼월이었다.
시아버지는 아들의 삼오제까지 다 끝마친 후 며느리를 불러 앞에 앉혔다.
‘앞으로 어쩔 거냐?’
‘아버님 모시고 살려고요.’
‘네 친정 어미는?’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았으니, 아버님을 먼저 모시고 친정어머니 모시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알았다. 가 봐라.’
시아버지는 아들의 임종을 지켜보던 자리에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아들의 귀에 대고 약속했다.
-걱정 말고 가거라. 내가 네 처와 자식들 먹고 살게 해 줄 테니. -
남편은 그 말을 들은 것일까? 며느리는 보았다. 남편의 입가에 번진 고요한 미소를.
며느리가 남편도 없는데 홀시아버지를 모시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남편을 편히 갈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과부 며느리와 아들 없는 홀시아버지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는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꼈으며, 그 불편함은 화로, 화는 미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갈수록 예민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동생이 갑자기 간암 진단을 받은 것에 있었다. 초조와 불안 속에서 지내던 시아버지에게 결국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알았다. 내 지금 가마.’
며느리의 시아버지는 침통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커 보였다.
‘작은애비가 지금 막 세상을 떴다.’
‘… ….’
‘너는 상중이니 오지 말라는 구나.’
‘… ….’
‘다녀오마.’
현관문을 나서는 시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며느리의 시아버지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초주검이 되어 반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괘씸한 것들! 유언장 공개 하는데, 사위 놈들이라는 것들이 나를 문 앞에서부터 가로막지 뭐냐!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장모 그년이 시켰겠지. 절대로 들여놓지 말라고. 발칙한 년, 지가 그렇게 사는 게 다 누구 덕인데? 이제 다 죽었으니 끝났다? 분명 애비 몫도 내 몫도 있을 텐데. 지들끼리 다 해쳐먹으려고 눈깔들이 시뻘게 갖고 덤벼드는 꼴이란. 어디 잘 먹고 잘 살아라 봐라. 하늘이 안 무섭 거든. 내 다시는 그것들 보나 봐라.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소용없다! 소용없어!’
시아버지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미는 지, 시도 때도 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분을 토해내곤 했다.
‘연락 없냐?’
시아버지는 작은집에서 연락이 없자 초조함을 보였다.
‘네.’
‘작은집에 전화해서 당장 오지 않으면 내가 가서 자식들 불러 앉혀 놓고 다 까발린다고 해라!’
시아버지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며느리의 시작은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다.
‘앞으로도 나를 아주버님으로 모시겠소? 안 모시겠소?’
‘… ….’
‘제수씨도 알다시피, 남편 의사 공부 시킨 것도 나요, 쌍둥이 중 딸을 데려다 키운 것도 나요, 또 애들 모르게 그 애 걷어 키운 것도 나 아니요? 이런 사실을 애들 불러 놓고 다 얘기하리까?’
‘… ….’
시작은어머니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간 자리에는 흰 봉투가 놓여있었다. 며느리의 시아버지는 빠르게 봉투 속을 확인했다.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에이 썅년!!!!’
시아버지의 고함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던 시작은어머니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분주하게 외출을 일삼던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불러 앞에 앉혔다.
‘이 집을 네 명의로 해 주마.’
‘네?’
‘대신 네 어미한테 말해서 이 집 시세의 반을 내게 현찰로 다오.’
‘네?’
‘나는 그 돈 갖고 미련 없이 한국을 뜰 거다.’
시아버지는 자기의 계획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 나는 그 돈을 갖고 캐나다로 가서 북에 있는 자식들에게로 가겠다. 거기서 생을 마감하겠다. - 였다.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시아버지는 북에 형제들과 친자식 넷이 있다. 삼팔선이 그어지기 직전에 서울에 왔다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시아버지는 죽기 전에 어떻게든 자식들을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방법이 틀렸다.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말리고 싶지 않았다.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차라리 돈으로 시아버지와 관계로 맺어진 인연을 끝내고 싶었다.
친정어머니는 흔쾌히 돈을 마련해 주셨다. 그 돈이면 딸이 남편도 없는 홀시아버지의 시집살이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데, 어느 부모가 안 된다고 하겠는가.
폭염은 연일 기승을 떨쳤다.
며느리는 공항까지 시아버지를 배웅했다. 시아버지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밭은 걸음으로 캐나다 행 탑승구를 빠져 나갔다.
믿기지가 않았다. 남편의 죽음과 작은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시아버지의 캐나다 행. 그 모든 사건들은 단막 드라마처럼 빠른 진행으로 끝나버렸다.
-또 다른 행복이 있을까? -
남편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며느리는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곤 했었다.
있었다. 또 다른 행복은 분명 있었다. 며느리는 아픈 친정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두 아이와도 일상을 회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행복했다. 기뻤다.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너무 서둘렀나 보다. 행복을 되찾는 일을. 누군가 질투가 났나 보다. 우리끼리 행복했고 우리끼리 기뻤고 우리끼리 웃어서.
되찾은 행복은 너무 빨리 가버렸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다.’
시아버지였다.
며느리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방에 있던 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할아버지!’
아들은 소파에 앉은 시아버지에게 가서 안겼다.
‘오냐!’
‘할아버지 이제 안 갈 거지?’
‘안 간다 안 가! 할애비 너랑 살러 왔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들으라는 듯 말에 힘을 주었다.
며느리는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가는 듯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갔던 일은?’
‘잘 안됐다.’
‘네?’
‘그 쪽에서 마음먹고 사기를 쳤지 뭐냐.’
‘… ….’
‘전에 날 모신다고 하지 않았냐? 내 여기서 생을 마감할 작정이다.’
‘아니요. 안됩니다. 저희하고는 다 끝났어요.’
‘네 이 년! 네 년이 어드러케 나한테 그 따위 말을? 쌍 것 같으니라구!’
시아버지는 험상궂게 눈을 부릅뜨고 으름장을 놓았다.
‘네. 맞아요. 쌍것이에요. 그래서 못 모십니다! 사흘 드릴게요. 이집에서 나가세요. 이 집은 제 겁니다!’
며느리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다짐을 두었다. 자신은 물론 두 아이와 친정어머니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에게 또 다시 일상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며느리는 이를 악물었다. 쓸데없는 말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악물고 또 악물었다.
다음 날, 정오가 지났을 때였다.
‘엄마, 할아버지가 이상해!’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시아버지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있었다. 며느리는 구급차를 불렀다.
‘돌아가시진 않겠어요?’
‘일단 위급 상황은 넘겼으니 지켜봅시다.’
며느리는 작은집에 전화를 걸었다.
‘난 몸이 아파서 못 가고 애들한테 얘기 해보마.’
작은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한 겨울 한파가 휘몰아쳤다.
끝내 작은집 에서는 아무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회복이 되었다.
의사는 –노인 분께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 하신 것 같다. - 고 말했다.
퇴원 후, 며느리는 시아버지 앞에 앉았다.
‘양로원에 모실게요.’
‘뭐? 양로원? 안 간다! 난 못 간다!’
‘이 집에서 같이 살 수는 없어요.’
‘안 간다고 하지 않니!’
시아버지는 주먹 쥔 손을 치켜 들었다.
‘소용없어요. 양로원으로 가시는 게 최선이세요. 결정하세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가 이 꼴 당하려고 이때까지 살았단 말이냐! 형이 불쌍하지도 않냐! 날 데려 가라! 날 데려 가! 네 이년!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시아버지는 울부짖었다.
며느리는 외면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자. 견디자. 버티자. - 라고 자신을 다그쳤다.
이틀이 지났다.
‘가마.’
시아버지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말했다.
일주일 뒤,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양로원까지 배웅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찾아뵐게요.’
‘필요 없다. 가거라.’
며느리는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와 차에 탔다. 운전하면서는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서웠다. 갈 때 뒷자리에 앉은 시아버지가 안가겠다며 머리채를 휘어잡기라도 할까봐. 안 있겠다며 다리를 붙잡고 늘어질까 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시아버지의 태도에 의심이 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뒤가 영 개운치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싸한 기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싸한 기운은 그냥 지나쳐 가지 않았다.
다음 날,
‘언니, 어떻게 큰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내쫓을 수가 있어요?
작은집 막내딸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서슬이 퍼래서 덤벼들었다.
‘큰아버지 꼬셔서 이 아파트 뺏더니 이젠 아예 내 쫓아요? 그러고도 언니가 사람이에요?’
‘그러는 그 쪽은요. 돌아가실 것 같다고 연락했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그리고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 이 아파트 왜 줬냐고? 나 이 아파트 거저 받지 않았어요.’
‘언니!’
‘언니라고 부르지 말아요. 내가 언제 고모 언니였던 적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가슴 아프면 고모가 모시세요.’
작은집 막내딸은 일곱 살까지 큰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았고 친아버지를 작은 아버지로 알았다. 연달아 딸만 넷을 낳던 작은 어머니는 이란성쌍둥이를 낳자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을 버리려고 했다. 잘못 된 미신을 믿은 탓이다. 시아버지는 그 어린 핏덩어리가 불쌍해 데려다 키웠다.
‘그래요! 내가 모실 거예요!’
‘좋아요. 대신 모시다가 못 모시겠다고 내 집으로 되돌려 보낼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만약 그랬다가는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니까요. 알았으면 가세요!’
막내딸은 화가 난 채로 달려 나갔다.
작은집 막내딸이 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작은어머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네가 뭔데 걔한테 모시라 마라 하는 거냐?’
‘작은어머니가 그러셨죠? 남편이 죽었는데 시아주버님이 어딨냐고, 저도 같아요. 남편이 죽었는데 시아버지가 어딨어요?’
‘그 철없는 것이 큰아버지 불쌍하다고 울며불며 모시겠다는데 내가 그 꼴을 어찌 보겠니?’
‘저는 모르죠. 저도 할 만큼 했어요. 내쫓았다고요? 가서 물어보세요. 아버님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돌아 다녔는지. 저하고 애들하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더니, 친정어머니의 생짜 같은 돈 가져다가 사기나 당하고.’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분했다. 그런 소리 들고 있는 상황이. 서러웠다.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미웠다. 시아버지의 그 파렴치한 행동거지들이.
그 후로 시아버지도 작은집 식구들도 며느리를 찾지 않았다. 며느리 역시 그랬다. 다 끝났다고 여겼다. 잊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잊어지지가 않았다. 그냥 시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며느리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까 전화했던 친구였다.
‘어디야?’
‘집.’
‘안 갔어?’
‘고민 중이야.’
‘좀 전에 교회 동산 관리 집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무슨 소리야?’
‘작은집 사람이 집사님한테 전화해서 너 욕을 엄청나게 했나 봐. 아주 나쁜 년이라고. 큰아버지 재산 빼돌려서 도망간 년이라고. 그래서 큰아버지가 양로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형편이 안 되서 모시지는 못했지만, 면회는 자주 갔다고.’
‘… ….’
‘매장 경비가 얼마냐고 묻더니, 돈이 없다면서, 양로원에 큰아버지 이름으로 된 통장이 있는데, 그 돈으로 지불 하겠다고 하더래. 좀 천천히 지불해도 되냐고 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양로원에서 서류상 며느리가 보호자로 되어 있어서, 며느리 외에 누구한테도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대. 그래서 도망간 며느리를 실종신고 했다고 하더래.’
‘… ….’
‘집사님이 그런 여자하고 어떻게 친구냐면서, 당장 연락해서 다른 돈은 두고라도 장례비라도 내놓으라고 전해달라고 하더라고.’
‘애들 데리고 갈게. 거기서 만나.’
‘알았어.’
며느리는 아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갔다. 가는 동안 딸은 옛 기억이 날 때마다 말을 했지만 아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손자를 꽤나 좋아했었다. 이유는 남자여서다. 둘 사이에는 그 둘만이 아는 정이 쌓여있었다. 반면 시아버지는 딸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자여서다. 시아버지는 유독 남녀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할아버지가 쟤는 새 자전거 사주고 나는 중고로 사줬어. - 그 단적인 예다.
며느리는 딸과 아들을 앞세우고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빈소에 있던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
작은집 큰사위가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예전보다 얼굴은 늙었고 몸은 한층 더 부풀어 있었다.
‘아버님께 인사부터 드릴게요.’
‘아버님? 누가 지 아버님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당장 나가! 그래, 알겠다. 너 그 돈마저 뺏어 가려고 왔지?’
막내딸은 앉은 채로 고함쳤다.
‘막내 처제, 이왕 오셨으니 인사부터 드리게 합시다.’
‘아이고! 우리 큰아버지 불쌍해서 어쩌나! 큰아버지! 저 년 나가라고 하세요! 큰아버지 쫓아낸 저 잘난 년 말이에요!’
막내딸은 빈소 안을 데굴데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자, 자, 처제 진정해요.’
큰사위는 막내딸에게 만류의 눈짓을 보냈다.
며느리는 아들을 앞에 세웠다. 향을 피우고 영정 사진과 마주 했다. 양로원에서 찍은 듯 했다. 영정사진 속 시아버지는 마지막 모습보다 늙어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이지만 전처럼 대하기 힘들지는 않았다. 편히 가시길 기도했다. 가서 아들 만나면 우리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기도했다. 앞에 선 아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큰사위는 앞서 빈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들은 앉아서도 연신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많이 컸구나! 학교는?’
‘둘 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아들은 일학년, 딸은 삼학년이에요.’
‘잘 들어라. 임시로 내가 상주 노릇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네가 상주다. 네 자리는 저기다.’
큰사위는 아들에게 자리를 알려주었다. 아들은 일어나 그 자리에 가 앉았다.
‘그동안 왜 연락 한 번 없이 지내셨어요?’
-연락? 누가 원하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잖아. -
며느리는 목구멍까지 올라 온 말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누가 왔다고?’
작은집 셋째 딸이 빈소 안으로 들어오며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왜 왔어요?’
셋째 딸은 며느리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날 찾는다고 해서요.’
‘찾아요? 누가요?’
‘실종신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왔어요.’
셋째 딸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래요. 맞아요.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실종 신고했어요.’
‘그래요? 그 돈 찾으려고요?’
‘그 돈이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큰아버지 장례 못치를 정도로 어려운 형편인가요?’
‘네.
‘네? 그렇군요. 대기업 간부에, 의사 사모님에, 목사 사모님인 분들이 큰아버지 장례를 못 치를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고요? 좋아요. 아버님 장례는 제가 치를 테니, 가세요.’
‘알겠어요. 우리도 할 만큼 했어요.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여기로 모시고 왔고, 빈소 마련하고 화장터며 운구차며.’
‘알았으니 가세요. 그 돈 받고 싶으면 나중에 계산서 주시고요. 돌려드릴 테니까요.’
‘고마워요.’
셋째 딸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막내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손님 오셨는데요?’
큰사위가 며느리를 쳐다보았다.
며느리의 친구가 빈소 안으로 들어왔다. 친구는 문상을 마치고 아들과 목례를 나눴다.
‘그사이 많이 컸구나. 상주가 의젓하니, 할아버지께서 흐뭇하시겠다.’
‘고맙다.’
며느리는 앉아 있던 자리로 친구를 안내했다. 작은집은 조문객실을 따로 잡지 않았다. 음식이며 음료수도 아예 없었다.
‘저녁식사 하러 갑니다.’
큰사위는 며느리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흘리며 능구렁이처럼 빈소를 빠져 나갔다. 그 뒤를 셋째 딸과 막내딸이 쫓아갔다.
‘어떻게 된 거라니?’
‘안 물어 봤어. 하도 돈 돈 하길래 내가 장례 치를 테니 걱정 말고 가라 했어.’
‘작은아버지 의사 아니야?’
‘맞아. 돌아가셨잖아.’
‘맞다. 그래서 그때 그 난리를 쳤던 거지. 남의 일이라고 까맣게 잊었다.’
‘작은 아버지는 내과 의사, 큰 사위는 대기업 간부, 둘째, 셋째, 넷째 사위는 다 의사, 막내딸은 목사 사모, 막내아들은 흉부외과 의사. 며느리는 소아과 의사.’
‘완전 종합 병원이네.’
‘맞아, 둘째 사위는 치과, 셋째사위는 정형외과, 넷째 사위는 안과. 작은아버지는 종합 병원을 갖는 게 꿈이었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딸들을 중매결혼을 시켰고, 돌아가시기 전에 꿈을 이루셨지.’
‘대단하다. 그리고 통장은 뭐야?’
‘양로원으로 모실 때 죄송한 마음이 컸어. 그래서 통장에 천만 원을 넣어서 드렸지. 실은 장례비용이었어. 의지 삼으시라고 미리 드렸어.’
‘그랬구나. 참 작은집에서 조의금 들어 온 거 너 줬어?’
‘아니.’
‘웃긴다. 그 사람들. 어제 교회에서 기본으로 나오는 거하고 개인으로 한 것도 꽤 있는데.’
‘주겠지. 아니면 지금까지 들어간 장례비용으로 대체하던가.’
‘생색은 다 내면서. 어제도 교회 어르신들 붙들고 자기들이 다 했다면서 너를 나쁜 년으로 만들고는. 양로원은 언제 가려고?’
‘통장 비밀 번호 알아. 인출 카드도 있고.’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 돈이면 장례비용으로 충분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참, 이거… ….’
친구는 가방에서 흰 봉투 한 뭉치를 꺼내 며느리에게 건넸다.
‘안 받을래. 교회도 안 나가는데.’
‘아니야, 어차피 할아버지도 너도 인사 건넸던 사람들이야. 몇몇 사람들이 같이 오겠다는 걸, 혹시 몰라서 내가 말렸어. 서운해 하지 마.’
‘서운하긴. 교회 분들 뵐 낯이 없다. 시아버지를 이렇게 보내 드려야 하다니.’
‘장례 일정 마치고 교회 나와. 나와서 인사도 하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과 오해도 풀고.’
‘… ….’
‘알아. 네가 어떤 마음인지. 서운하지. 죽은 나사로도 살리신 예수님께서 저 어린 것들 아빠를 죽게 두셨으니, 왜 안 그러겠어. 잘 생각해 봐. 그게 예수님의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아픈 남편과 너와 아이들을 위한.’
며느리는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딸도 울었다. 아들도 울었다. 친구도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울음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각자 자기 설움의 무게만큼만 울었으니까.
‘너희만 두고 가려니까 발이 안 떨어진다.’
‘괜찮아. 어서 가.’
‘아침 일찍 올게. 내가 연락 드렸어. 목사님과 전도사님께서 발인 예배 인도하실 거야. 운구도 말씀드렸어.’
‘고맙다.’
친구가 떠난 빈소에는 며느리와 손자인 상주와 손녀만이 남았다.
그리고
발인 예배가 시작 되었음에도 화장이 끝났음에도 장례 모든 일정이 끝났음에도 저녁 먹겠다고 빈소를 나간 작은집 식구들은 빈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장례일정을 마친 직후, 상주는 며느리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