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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여사 Nov 06. 2021

철없는 아내

그해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는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그러는데, 근처에 상황버섯이며 귀한 약재들을 가마솥에다 넣고 사흘 밤낮 동안 고아 만드는 약이 있다는데, 한 번 써 볼래?’

‘응. 언제 되냐고 물어 봐.’


남편은 수술 후 항암치료를 세 차례에 걸쳐 받았지만 몸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고 있던 나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며칠 후,

‘자기야, 나 다녀올게. 화장실 가고 싶으면 참지 말고 벨 눌러. 아주머니 계시니까. 먹기 싫어도 조금이라도 먹고. 알겠지?’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두툼했던 남편의 손은 어느 날부터 조금씩 얇아지더니 급기야 뼈와 가죽만 남았다.  

남편은 말 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약속!’

‘약속!’

남편은 나를 안심 시키려고 목소리를 냈다. 남편의 서걱거리는 목소리는 상처투성이인 내 명치를 또다시 할퀴고 지나갔다.      

그런 남편의 모습은 마치 한 겨울 텅 빈 들판을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이 무서워 잔뜩 몸을 움츠린 채 떨고 있는 한 포기 마른 풀 같았다.


나는 아픔을 감추며,       

‘애들 데리고 다녀올게.’ 라고 말했다.

‘가는 김에 바람도 쐬고 와.’

‘아니야. 바람은 무슨. 자기 약 가지러 가는데 약만 가지고 바로 올 거야. 늦어도 다섯 시엔 도착할 거야. 그때 봐.’

나는 남편의 눈에다 내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그대의 눈빛에서 나는 한겨울 녹아내리는 오두막의 일곱 난장이를 비춰보오.

    그대의 아름다운 넋에 나의 넋을 섞어내며 언제나 사랑의 눈덩이를 가루 내어 뿌리리다!                                                                                                              

                                    <남편에게서 받은 연애편지 中>     



나는 운전석, 친구는 조수석, 아이들 셋은 뒷좌석에 앉았다.

‘얘들아, 출발한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안 돼. 자리 왔다 갔다 해도 안 되고.’

‘네!’

두 살 터울인 아이들은 만나자 마자 신이 나서 목청껏 외쳤다.      

‘약은 언제 된대?’

‘점심때쯤이나 된다나봐. 엄마가 너 온다고 음식 이것저것 준비 했다니까, 가는 김에 먹고 쉬고 애들 데리고 놀다 오자.’

‘놀긴, 안 돼. 빨리 와야지.’

‘얘들아, 이모네 가서 썰매 타고 놀까?’

‘네!’

친구와 아이들 셋은 이미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서로의 아이들이 이모라고 부르는 우리는 친 자매는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친 자매 이상으로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사이다.  

      

서울을 빠져 나온 차는 7번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나 지금 겨울이다! - 라고 저마다 외쳐 댔다. 꽁꽁 얼어붙은 강이며 눈 덮인 산과 들이며 대지에 퍼진 아침 햇살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찬란함으로 나의 뇌를 마비시켜 버렸다.           

‘좋다 좋아. 너어무 좋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나와 남편은 7번 국도 매니아였다. 연애 시절부터 둘은 시간만 나면 7번 국도를 달리곤 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밤에 출발해 밤안개 속에 깊게 잠긴 산야를 깨워 불러냈고, 새벽이면 강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가슴에 품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와 나는 한참을 침묵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배고파요!’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알겠어. 가다가 휴게소에서 맛난 거 먹자!’

‘와! 신난다!!!!’

‘이모도 신난다!’

‘휴게소 말고 봉주르 어때?’

‘좋아. 커피도 한 잔 할겸. 애들은 잔치 국수 먹이고.’

‘얘들아! 곧 봉주르에 도착하니까 신발도 신고 옷도 입고 준비준비!!!’

‘네!’     


주차장에 들어서자, 딸은 ‘여기 아빠랑 왔던 곳이다!!!! 라고 외쳤다.         

맞다. 봉주르!

그곳은 내 가족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더 먼저, 나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연애 시절에도 그리고 결혼 후에도 (아이들이 생긴 후에는 가끔은 친정엄마 찬스를 썼으며, 가끔은 자는 애들을 뒷좌석에 눕혀 데리고 다녔다.) 밤안개에 잠긴 산야를 뚫고 달리다 봉주르에 도착하면 남편은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작고 귀여운 불꽃을 튀기다가도, 한 번씩 불꼬리를 크게 휘두르며 농염한 여인의 색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모닥불 밑에서는 꼭히 누구 거랄 것도 없이 은박지에 싸서 던져 넣은 감자며 고구마며 밤이 재속에 묻혀 익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내게 무슨 그리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자기야, 로 말을 시작하면 신새벽이 다되도록 끝낼 줄을 몰랐다. 나는 그런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별이 보이면 별을 보았고, 별이 없으면 내가 별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시답지 않은 질문으로 추임새를 넣어 남편의 이야기에 흥을 돋아 주기도 했다.             


‘너도 잔치 국수 먹을래?’

‘아니. 난 커피만 한 잔 할래.’

나는 잔치국수를 먹는 아이들 곁에서 남편의 자취를 눈으로 따라가 보았다.       


거의 십 년을 다니던 곳이니 그 넓은 구석구석 남편의 자취가 없는 곳은 없었다.       

-남편은 여기에 또 올 수 있을까? -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속내를 눈치 챈 친구는 ‘자, 다들 일어납시다!’ 라고 외치며 아이들을 앞세웠다.

‘일어나! 가자!’

친구는 내 등을 쓸어 주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힘내자. 또 알아? 이번 약 먹고 툴툴 털고 일어나 앉을지.’      

      

다시 차를 타고 달린지 한 시간 쯤 지났다.  

‘저기 외할머니 집이다!’

친구 아들이 외쳤다.

‘다 왔다! 모두들 내릴 준비!’

‘네!’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신나했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친구어머니가 단걸음에 달려 나오셨다.

‘어서 와라 어서들 와. 오느라고 고생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힘들지? 사람 병간호가 얼마나 힘든데, 얼굴이 영 못쓰게 됐네.’

친구어머니는 차에서 내리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 애들 보는 데 뭐해?’

‘할머니!’

친구 아들은 친구어머니의 허리춤에 가서 안겼다.

‘그래그래 우리 똥강아지. 어여들 들어가자 들어가, 춥지? 어서들 안으로 들어가자.’

친구어머니는 아이들을 몰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전화로 누누이 부탁했건만.’

‘괜찮아, 걱정되니까 그러시지.’     


방으로 들어가자 친구어머니는 아랫목을 내주셨다.

‘춥다. 이리 앉아라. 배고프지?’

아랫목은 뜨끈뜨끈하게 달궈져 있었다.

‘나랑 애들은 오다가 잔치국수 먹었는데 얘는 안 먹었어.’

‘못 먹지 못 먹어. 못 먹는 게 당연하지. 남편이 그러고 누웠는데 목에 음식이 안 넘어 가지.’

친구 어머니는 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연신 내 손등을 쓸었다.

‘엄마! 자꾸 왜 그래?’

‘왜 그러긴, 속이 상해서 그러지. 젊디젊은 나이에 암이 걸렸으니.’

친구어머니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얘들아, 저쪽 방에 가보자. 저 방에 장난감도 있고 게임기도 있단다.’

친구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병원에서는 뭐라 그러니?’

‘… ….’

‘엄마, 상 차리게 이리 나와!’

‘간다 가! 상 차리는 동안 여기 좀 누워 있어라.’

친구어머니는 곁에 있던 베개를 내게 밀어 주며 –한창 재밌게  나이에 가엾어서 어쩌나,  어린 것들 데리고 젊은 것이 어쩌라고,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혼자말로 계속 되뇌었다.  


친구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친한 친구들 간에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친구는 대학 시절 자취를 했는데, 친구어머니의 김치며 반찬들이 오는 날은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많이 먹어라. 니가 기운 내야지. 니가 지치면 큰일 난다.’

‘너무 맛있어요.’

갓 지은 쌀밥이며 내가 좋아하는 식혜며, 마침 맞게 익은 시원한 김장김치며, 꿀맛이 따로 없었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 밥 한 공기가 사라져 버렸다.

‘더 먹어라.’

‘네.’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이런 상을 받아 본지가.

남편이 입원한 후부터 나는 병원 밥을 먹어야 했다. 남편이 못 먹겠다고 하면, 나는 배가 고파도 참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한 날,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자기야, 미안한데 나가서 먹으면 안될까? 음식 냄새가 너무 싫어서.’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남편은 내게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한동안 남편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 후로부터였다. 나는 남편 앞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가자미 식혜랑 명태식혜는 너희들한테 보내려고 진즉에 해놨는데 마침 온다고들 해서 안보내고 뒀어. 두 군데다 똑같이 나눠 담아 놨으니까 갈 때 잘 챙겨들 가거라. 김치랑 한치 젓갈이랑 명란젓이랑, 깻잎김치랑 손 가는대로 하긴 했는데 어떨라나 모르겠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건 무조건 맛있어요. 힘드셨겠어요.’

‘늘 하던 건데. 힘은 니가 들지. 그래 얼마나 힘드냐 대체 병이 얼마나 깊은 거야? 통 말들을 안 해주니 내가 답답하다. 기도 할 때도 뭘 알아야 기도를 하지.’

‘엄마, 제발 그만해. 먹은 거 체하겠다.’

‘아니야, 나 괜찮아. … …, 길어야 육 개월이래요.’

‘아이고 이 일을 어쩌냐?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진즉에 손을 좀 쓰지.’

‘생각도 못했어요.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 소화제 먹이고, 기운 없어 보여서 한약 한 제 지어 먹이고, 살이 빠진 듯해서 물으니까 다이어트 한다 해서 그런 가 보다 했어요.’

‘하긴 겉이 상하면 눈에 보이니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지. 속이 상하면 본인이 아프다고 말 안하면 모르지 몰라.’

‘사실 지난 여름에 친정엄마가 당뇨로 다리 절단 수술하느라, 거기에만 신경 썼지, 남편한테 전혀 신경을 못 썼어요.’

‘맞다. 그랬지. 그래 친정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시냐? 말씀은 드렸냐?’

‘그냥 초기라 수술하고 항암 치료 받으면 괜찮다고 말씀드렸어요. 안 그래도 본인 때문에 발견이 늦어진 거라며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데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잘했다. 몸도 편찮으신데 알았다가 뭔 일 난다. 뭔 일 나.’

‘실은 쟤 남편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래서 엄마한테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될 수 있으면 안 알리는 거야. 혹시라도 쟤 남편 귀에 들어 갈까봐.’

‘병원에서 말 안 해주냐?’

‘다행히 시동생이 그 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 사 년 차라, 그렇게 말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네 어머니도 홀몸이라 도울 손이 필요할 텐데.’

‘엄마 친구 분이 함께 계시면서 도와주시고 계셔요.’

‘아이고, 그렇게 고마울 데가 다 있나, 니가 한 시름 놨네.’

‘나도 그 친구 분처럼 갈 수 있으면 가서 애들이라도 봐주면 좋은데.’

‘아니에요. 어머니.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집에는 아주머니 한 분 계셔요. 그리고 얘도 자주 와서 같이 있어 주고요.’

‘그래 잘했다.’

‘이제 그만! 너도 갈 때 운전하려면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 엄마는 가서 약 다 됐나 보고 가져 오고. 나는 애들 데리고 강에 가서 썰매 좀 태우고 올게.’

‘내 정신 좀 봐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약은 다 되었을 것이니 내 가져 오마.’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아니다. 내가 다녀 올 테니, 얘 말대로 너는 눈 좀 붙여라.’

‘어머니, 이거.’

나는 일어서는 어머니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

‘미안하다. 약을 내가 해줘야 하는 건데.’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구해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해요.’

‘약 값이 비싸서 어쩌냐?’

‘괜찮아요. 먹고 낫기만 한다면 돈은.’

‘그래, 기도하자. 먹고 깨끗이 낫게 해달라고 너도 나도 다 같이 기도 하자. 저 어린 것들 생각해서라도.’

친구어머니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제발. 엄마가 자꾸 이러면 쟤 마음은. 엄마 마음 다 아니까 그만해.’

친구어머니와 친구가 방을 나간 후 나는 베개를 베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노곤한 몸을 풀어 놓았다.  


‘엄마!’

딸의 목소리였다.


눈을 떴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벌떡 일어나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밖은 이미 어둠에 싸여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잔거야. 진작 깨우지 그랬어.’

‘우리도 지금 막 왔어. 엄마가 곤히 자기에 그냥 뒀대. 그동안 잠 한번 편히 자 봤겠냐며.’

‘몇 시야?’

‘다섯 시.’

‘다섯 시? 다섯 시에 도착한다고 약속 했는데. 약은?’

‘엄마가 식히려고 베란다에 뒀대.’

‘얘들아 가자. 아빠 기다리신다.’

나는 아이들을 재촉했다.

‘기다려. 애들 몸도 녹이고 저녁도 먹여야 해.’

그때서야 아이들의 얼굴을 봤다. 세 아이 모두 볼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럴 시간 없어. 가야 돼.’

‘애들 배고파서 안 돼. 지금껏 강에서 노느라 먹지도 않았어. 저녁 다 됐으니까 먹기만 하면 돼.’     


나와 친구는 아이들이 먹는 동안 짐을 챙겨 차 트렁크에 실었다.     

‘가볼게요. 매 번 신세만 지고 너무 감사드려요.’

‘신세라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서운하지. 너도 이미 내 딸인데. 빠진 거 없이 다 잘 챙겼지?’

‘네.’

‘얼른들 가라. 운전 조심하고. 다음에는 식구들 다같이 오너라.’

친구어머니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럴게요.’

‘엄마, 들어 가. 우리 간다.’     


이미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친구는 피곤했는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잠이 들었다.


- 뭐라고 하지? 약이 좀 늦게 되었다고 할까? 차사고 땜에 도로가 막혔었다고 할까? 애들이 자꾸 놀겠다며 떼써서? 괜찮아. 바람 쐬고 오라고 했으니까, 바람 쐬고 왔다고 하지. 저 약 먹고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있을까? 있을 거야. 있어야 해. -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문득 언제부턴가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 소리가 안 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미러로 보니 세 아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일어나 봐.’

나는 친구를 깨웠다.

‘잠깐 졸았네. 미안. 왜?’

‘애들 잠들었는데 담요라도 덮어줘야 할 것 같아서. 트렁크에 담요가 있으니까, 차를 잠시 세울게.’

나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친구도 조수석에서 내렸다.

‘여기 담요!’

친구는 담요를 받아 차 뒷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나는 혹시 실은 짐들이 기울어지지나 않았나 싶어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어떡해?’

‘왜? 무슨 일이야? 약이 쏟아졌어?’

‘없어. 안 실었나 봐!’

‘뭐를?’

‘약!’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니. 약 가지러 가서 약을 안 가지고 오다니. 미쳤다 미쳤어!’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한 시간 동안 달려 온 길을 되돌아 달렸다.      

차 소리를 들었는지 친구어머니는 맨발로 달려 나오셨다.

‘알았구나 알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는 너희들 가고 조금 있다가 알았는데,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지. 그냥 앉아서 기도만 했다. 제발 알게 해달라고.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알게 해달라고.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왔으니 다행이다. 어서 가지고 조심해서 가거라.’


나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 왔다.

남편에게 아무 변명이라도 하려고 남편의 방문을 열었다. 남편은 아침에 본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침대 곁에 가서 섰다. 남편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자기야, 나 왔어.’ 라고 속삭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늦게 왔지? 미안. 내가 왜 늦었냐면 사실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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