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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여사 Dec 04. 2021

그 의사에 그 환자

         

‘안녕하세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머리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아, 네. 앉으세요.’

의사는 손짓으로 진료의자를 가리켰다.

‘네.’

나는 사뿐사뿐 걸어 진료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의사는 그런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신가요?’

의사는 나를 쓱 쳐다보고는 컴퓨터로 고개를 돌렸다.

‘허리가 아파서요.’

‘허리가 … … 허리가 어떻게 아프신가요?’

이번에도 의사는 나를 쓱 보고는 컴퓨터 진료를 시작했다.

‘… ….’

내가 말을 안 하자 의사는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말을 시작했다.

‘허리가’

내 손은 아픈 허리를 가리키는데 의사는 컴퓨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의사라면 환자가 오면 환자와 마주보고 환자 상태를 안색으로 살피며 환자와 직접 대화 한 다음 진료 차트를 작성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그 병원을 처음 방문한 환자다. 그렇다면 더 더욱 환자를 관찰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내가 말을 하지 않자 나를 쳐다보며

‘허리가 어떻게 아프신가요?’

재차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빨리 말해. 얼른 작성해야 한다고. 나 바빠. -로 들렸다.       


나는 일단 화를 참기로 했다.   

‘그림을 큰 걸 그리느라 서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때부턴가 이쪽 근육이 뭉쳤는지 너무 아파요. 근육 가운데가 상처 난 것처럼 찌릿 찌릿 아프다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간질간질 하기도 하다가 … ….’

‘언제부터 그렇습니까?’

의사는 말을 끊었다.      


어이가 없었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것은 물론 중간에 말을 끊다니, –이것 보세요, 의사님. 제 말 아직 안 끝났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꽤 됐는데, 심하게 아픈 건 한 이 주?’

‘… ….’

의사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오로지 컴퓨터 진료에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됐어요. 의사님. 의사님은 계속 키보드나 두드리세요. 전 다른 병원으로 가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사실 나는 의사가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생긴 것이 그랬고, 거무튀튀한 피부 상태가 그랬고, 사투리인지 표준말인지 모를 어투가 그랬다. 게다가 목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했으며 말은 엄청나게 빨랐다.      


‘일단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드시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시고요.’     


-벌써 약을 처방했다고? 너무 하는 거 아냐? 어느 쪽 허리인지 허리 상태가 어떤 지 정확하게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약을? 미친 거 아냐? -     


‘사진은 안 찍나요?’

나는 속으로 참을 인자를 쓰며 겉웃음으로 그 속을 감췄다.         


‘일단 근육이 뭉쳤다고 하셔서, 근이완제를 처방했고요. 물리치료도 받아 보시고요. 약은 오 일 치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여전히 컴퓨터 진료에 몰두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제가요, 백신 맞고 나서 더 아파진 것 같아요.’     

나는 백신이라는 말에 의사가 놀라 나를 쳐다보기를 기다렸다.     


아니었다.

의사는 컴퓨터에 박제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환자분, 근육 뭉친 건 백신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나에게 그 말은 –환자분, 쓰잘머리 없는 말 자꾸 늘어놓지 말고 빨리 가세요. 다음 환자 받아야 하니까. -로 들렸다.      


-그래 간다 가. 중이 절 싫으면 지가 가야지 절더러 가라할 순 없으니, 내가 간다 가. 다신 오나 봐라. -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들어올 때처럼 공손히 인사한 후 진료실 문을 향해 사뿐히 걸었다.

‘환자분, 물리치료 꼭 받고 가시고요.’

-알았다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라, 의사야. -     


진료실을 나온 나는 대기 중인 환자들 틈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왜 병원에만 오면 천하에 순한 양이야? -  

-몰라서 물어? 그건 당연히 의사가 병을 고쳐주니까,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환자의 의사에 대한 기본 예의 아니겠어? 그럼 의사가 내 맘에 안 든다고, 너 잘났어 정말, 그러면 되겠니? 그래도 의산데.-      


‘오여사님!’

‘네!’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는 채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주먹 꽉 쥐시고.’

‘… ….’

‘혈관이 꼬불꼬불해서 어렵네요.’  

‘맞아요. 뽑을 때마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찔러야 하더라고요.’

‘흠 … … 아플 거예요. 아파도 참으세요.’

‘네.’

아픔을 참기 위해 다문 입술에 힘을 주며 두 눈도 꽉 감았다.

–근데 피는 왜 뽑는 거지? 물리치료 하는데 피검사도 하나? -     

동네 개인 병원에서 허리가 아픈 환자에게 피검사를 하다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이제부터 난 무조건 이 병원이야! -를 외쳤다.        

‘됐습니다.’

‘한 번에 하셨네요. 고마워요.’

나는 피가 빠져나간 혈관을 한번 어루만져주었다.


‘오여사님, 처방전 나왔습니다.’

‘네. 물리치료는 어디서?’

‘물리치료 받으시려고요?’

‘네.’

간호사는 차트를 확인하더니


‘원장님!’

간호사는 진료실과 바로 통하는 문에 대고 외쳤다.

‘오여사 환자분, 물리치료 받으신다는 데요!’

‘진료 받을 때 선생님이 받으라고 하셔서 받겠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간호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간호사 역시 같은 표정을 보였다.  

‘여기 봐. 여기엔 채혈로 … ….’

‘그러게요. 어떡해요?’

‘혹시 안 뽑아도 되는 피를 뽑았다는 거예요?’

‘네.’

간호사는 선웃음을 보이며 차트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선생님!!!!  내 피 돌려줘요!!!!’

나는 의사가 있는 진료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대기 중인 환자들은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일제히 나와 간호사들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진료실 앞에 나와 섰다.

‘내 귀중한 피 어쩌실 거예요?’

나는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앞 환자 분 하고 착각하는 바람에.’

의사는 열 중 쉬어 자세로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간호사들에게로 눈을 돌려  

-제발 이 환자 좀 처리해 줘. -

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였다.       

‘환자를 두고 착각이라뇨? 피를 뽑았으니 다행이지 넣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 ….’

의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간호사들은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어설픈 끼어들기는 아니 끼어드는 것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바쁜데 뭐하는 짓들인지.’

대기 환자들 중에서 불평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더했다가는 의도치 않게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는 수 없죠. 이왕 뽑았으니 피검사나 하죠 뭐.’

‘아, 네. 환자분 그건 저희가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사는 진료실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렸다.

간호사들은 그런 의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물리치료는 취소해 주세요.’

‘그냥 가시려고요?’

간호사는 내 낯빛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내일 오후 3시에 검사 결과 보러 나오세요.’      


나는 다음 날 피검사 결과를 보러 가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역류성 식도염이 도졌다. 병원에 가기 싫어 약국 약을 먹었는데 효과가 없었다. 아파트를 나와 병원이 있는 상가를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지난 번 그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 가. -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근처에 다른 병원이 있는지 탐색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병원은  분을  걸어가야 했다. 이 삼복 더위에 십 분이라니.


‘어서 오세요.’

나는 지난 번 그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난번에 오셨던.’

간호사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오늘은 어디?’

‘식도염 때문에.’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궁금했다.

의사가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여전히 컴퓨터를 보며 진료 중인지. 피검사 결과를 보러 오지 않은 걸 기억하고 있을지.       


‘오여사님, 들어가세요.’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리 앉으세요.’

의사는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키다 나를 보았고, 나를 기억하는 듯 했다.      


‘오늘은?’

의사의 목소리에서 거북함이 묻어났다.  

‘본래 식도염이 있는데 다시 재발한 것 같아서요.’

의사의 컴퓨터 진료는 여전했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일 주일 정도요. 약국 약을 먹었는데 안 나아서요. 전에는 잘 들었는데.’

‘환자분, 몸이 항상 똑같지는 않습니다.’

‘네?’


-이 인간, 지금 뭐라는 거야? 나더러 나날이 아니, 순간순간 늙어 가고 있으니, 그걸 한시도 잊지 말고 살라는 거야 뭐야? -     


‘약은 일 주일 치 드려보겠습니다. 일단 드셔보시고 다시 진료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지난번에 한 피검사 결과를 볼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잠깐만요. 오여사님이 어디 있더라?’

의사는 검사 결과지를 한 뭉치 꺼내더니 열심히 뒤적였다.


‘당뇨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요.’

‘당뇨가 있으신가요?’

‘아직까지 약을 먹지는 않는데, 검사할 때마다 한계 수치가 나와서 선생님들께서 신경 써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네 …… 허리 아프신 건 좀 어떻습니까?’

의사는 검사결과지를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 를 반복했다.


‘아, 그때 약 주신 게 잘 안 들어서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도수치료 하니까 많이 좋아졌어요.’     

순간 의사의 손동작이 멈췄다.


나는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환자분께서 피검사 한 지가 한 달이 넘은 관계로 검사결과지가 없습니다. 필요하시면 새로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럼.’

의사는 표정 없는 얼굴로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 …?’     


‘간호사, 다음 환자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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