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하루를 기록합니다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 바닥엔 널브러진 옷. 줄지어선 개미들이 그 사이를 헤집고 기어간다. 찌는 듯한 더위는 내 숨통을 조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창문을 열자. 빨간 벽과 마주한 쇠창살. 반도 열리지 않는 창문 사이로는 바람 한 점 , 햇빛 한 뼘조차 들지 않는다. 여기서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할 거 같다.
"네 선배 끝났어요. 지금 가겠습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그만 나와 버렸다. 연민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도 그곳에 있기 싫었다. 선배한테 돌아가는 길,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어떻게 평생을 이곳에 살았을까. 아니 모두가 외치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아닌가. 어떻게 이런 삶이 존재 하냔 말이냐. 책에서만 마주했던 진실을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어차피 여름 아이템인데 그냥 대충해. 선배의 말이 귀에 맴돈다. 고민의 순간도 잠시 반쯤 옷을 걸친 헐벗은 미치광이가 지나간다. 아니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옷을 왜 벗고 다녀. 찌푸려지는 나의 얼굴. 그와 대조되는 골목길 주민들의 얼굴은 평온하다. 쪽방촌 골목길 옆, 깨진 거울 속 일그러진 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 나는 한낱 위선자에 불과하구나.
"나 때는 말이야 퇴근이 어딨어, 퇴근하다가도 지하철에서 선배 전화오면 기사 쓰고 그랬어"
그래 기자는 사명감이지. 부푼 꿈을 품고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촛불이 광장의 함성을 한데 모았던 그 날. 권력의 전당 앞에서 경비를 서며 시민들의 외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멀리 둔 시선을 거둬 가까이 가져왔을 땐 눈앞에 기자 선배들이 있었다. 나야말로 국가의 의무를 다한다는 명분에 억지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같은 밤을 보내는 기자들은 왜? 처음이었다. 그렇게나 멋져 보이더라. 뭐가 그들을 저렇게 가슴 뛰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나도 그 현장에 있어봐야겠더라.
그래도 하고 싶은걸 어떡해. 수십 번? 아니. 셀 수도 없다. 준비를 하니깐 더 하고 싶더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 닿지 않는 권력에 쓴 소리 낼 수 있는 일. 유일했고 짜릿할 것만 같았다. 아 그래 나는 삼성이고 대통령이고 비판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어. 허무맹랑하지만 사내대장부로써 그 정도 꿈은 품고 살아야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결국 기자가 되었다.
"나는 기자새끼들이 싫어"
더우시냐는 안부인사에 돌아온 첫 대답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뀐 게 없었단다. 매년 여름 악취에 문을 열지도 못하게 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공터로 나와 대형 선풍기에 의지하며 날이 저물어야 집에 들어갔다. 처음 취재를 왔을 때는 기대를 했다더라.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단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기자가 됐는데 세상은 우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요즘 수습보니깐 기자 아니고 직장인 같더라"
맞아요. 우리는 사실 바꿀 수 없어요. 세상의 신뢰도 없는데 우리가 무슨 사명감인가요. 그러니 쪽방촌 사람들아 더는 우리를 믿지 마세요. 믿기 힘드시다면, 이 글에 달린 댓글을 보세요.
댓글 : 아니요 , 기필코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한 번만 더 저희를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