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ji berry Mar 27. 2022

왜 너는 기자해?

수습기자의 하루를 기록합니다. 

III.  그래 우리도 염치가 없는게 아니랍니다


"이거 한 번 확인해봐요" 

.

.

"네. 선배 확인하고 처리하겠습니다."


▲(확) 회사서 생수병 물 마시다 직원 2명 쓰러져...경찰, 수삭 착수 


회사의 특성상 발생기사**와 확인기사** 처리를 많이 한다(이렇게 말하면 업계 사람들이면 대충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눈치챘으리라 생각한다). 하루에 기사를 몇 개씩 쓰는 날이 다반사라 일이 많아 힘들면서도 그만큼 현장의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은 물론 매일 매일 나의 결과물이 나오니 그 자부심도 크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수습이라는 신분 때문에 부담스러운 나머지 아침 일찍 라인 검색을** 할 때만 되면 '제발 오늘은 별일 없게 해주세요' 라고 간절히 빌곤했다. 


사건팀 1달 차. 이제는 적응이 될 것만 같았던 그날도 1진 선배가 토스한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어김없이 형사과장에게 전화했다. 기사를 쓸 당시만 하더라도 이 사건이 그렇게 커질 줄 정말 상상도 못했다. 자고 일어나보니 이게 대채 무슨 일인가. 야근 선배가 내 기사에 이어서 종합기사를 낸 것이었다.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어제 빌고 빌었는데. 


▲생수 마시고 직원 쓰러진 회사서 또 다른 직원 숨진 채 발견(종합)



발생기사

1. 명사. 기자들의 은어로, 기자회견 및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내용을 파악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 

확인기사  

1. 명사. 기자들의 은어로, 타사의 보도가 먼저 나와 해당 사건을 후속 보도하기 위해 내용을 직접 확인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

라인검색  

1. 명사. 기자들의 은어로,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 권역을 크게 나눠 본인이 담당하는 구역의 사건.사고를 파악하는 일.  

종합기사 

1. 명사, 기자들의 은어로, 사건.사고의 진행 상황에 변함에 따라 추후의 변동사항을 반영해 보도하는 것.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A와 B가 회사 사무실에 놓여있는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시고 쓰러졌다. A는 곧바로 회복해 퇴원했지만 B씨는 사경을 헤매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 당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C씨는 사건발생 다음날 자신의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돼야 마땅하지만 사건의 중대함을 감안해 C씨에 대한 수사는 추후에 계속 되었고 결과적으로 경찰은 C씨가 이번 사건의 피의자이며 범행동기는 '인사 불만'으로 밝혀졌다. 


"아니 제발 좀 가시라고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당시 사경을 헤매고 있는 B씨의 병원 그리고 장례식장까지 취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기자로써 가장 힘든 취재라 함은 사명감과 도의적 윤리가 부딪히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남을 헤아리기 위해 기자가 됐지만 대부분은 남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이미는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00아 무리하지마 굳이 안 해도 된다." 


울고 있는 유가족에게 도저히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던 순간 온 선배의 카톡이었다. 무리하지마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됐던지. 수습기간 사건을 알아와야한다는 책임감에 종종 실수하기 마련이다. 바로 기자 정신에 취하는 것. 사명감에 취해 최소한의 도리를 잊는 행동들 말이다. 


이날 이후 선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나도 꼭 경험하지 못한 후배에게 위로와 올바른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자고 말이다. 이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죽음을 목격한 순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짧지만 위로가 됐던 그 한마디가 매순간 마음을 다잡게 했다. 



작가의 이전글 왜 너는 기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