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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Dec 16. 2022

본즈 앤 올 : 결핍을 채우는 사랑

본즈 앤 올(Bones and All, 2022) 후기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보편에 섞일 수 없는 특이성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눈치가  조금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적 결함이 사회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존속에 해를 끼칠 정도라면 어떨까? 주인공 '매런'은 타고난 식인 습성 때문에 3살 때 어머니가 떠나가고 18살에는 아버지가 떠나간다. 그녀의 식인 습성은 원치 않은 것이지만 그와 무관하게 주위를 폐허로 만든다. 도저히 사회에 섞일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 매런은 원죄와도 같은 식인 습성에 대해 알기 위해 본 적 없는 엄마를 찾아 나선다.


본성을 대하는 서로 다른 입장


  영화에서는 식인에 대한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몇 사람이 등장한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처음 만난 이터 '설리'는 왠지 모를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3 인칭 화하며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고, 사냥감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먹지 않고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잡아먹는다. 여행길에서 만난 또 다른 이터 '제이크'는 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과 함께 다니는데, 식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가 식인을 하는 이유는 순전히 동경심 때문이다. '리'는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매런과 달리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남성을 먹어치우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식인 습성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식인 습성에 대한 입장 차이가 멀어진 이들을 한데 묶어주지 못한다.


외로움은 한 곳에 섞이지 못하고  


  무리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매런의 엄마는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두었고, 설리는 평생을 이해해주는 사람 없이 외롭게 살았다. 리는 매런을 만나기 전까지 떠돌며 살거나 강가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매런과 리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설리의 재등장으로 안식은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 식인이라는 저주를 타고난 이상 외로움은 따라다닐 운명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성폭행을 시도하는 설리를 제압하는 상황에서 감독은 긴급한 상황과 대비되는 연출을 보여준다.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과 달리 바깥에서 바라본 집은 적막하고,  옆에 자리 잡은 나무에 내리쬐는 햇살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풍경은 평화롭다. 특별할  없는 일상을 조명할 때는 다급한 음악도 멈춘다. 다시 상황을 조명하는 카메라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관객의 마음을 고조시키는 음악 소리는 긴급하다. 일반인들의 풍경과 이터들의 대조되는 모습은 강간, 살인, 피가 난무하는 현장이 식인 습성을 타고난 이들에게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사랑이 널 자유롭게 해 줄지도


  설리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폐를 찔린 리는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느끼고 자신을 먹어달라고 한다. 일반인의 입이 사랑을 표현하는 애정 수단으로써 기능한다면 이터의 입은 동시에 살인의 역할까지 가진다. 식인 습성은 그들이 일반인들과 섞이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이 연인일  있도록 하는 특성이다. 먹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결국 결핍을 채우는 행위이기에 리가 말하는 ' 사랑하고 먹어 달라는 (Love me and eat me)' 그들만이 가능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끝내 치닫는 비극


  식인이라는 극단적 소재를 걷어낸  영화는 아웃사이더들이 떠나는 '로드 무비'. 로드 무비가 갖는 특징은 여정 속에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겪고 여행을 떠나게  소재에 대해 해답을 내놓는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본즈  올은 로맨스 영화이면서 동시에 성장물의 서사를 가진다. 리는 축제에서 먹어치운 남자의 악몽을 꾸는  도덕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매런과 함께 가정을 꾸리며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끝내 식인 습성에서 자유로울  없던 결말을 맞이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문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외적 요인의 비극이라면 본즈  올은 해결될  없는 내적 요인의 비극이라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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