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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Dec 21. 2022

헤어질 결심 :상반되는 사랑의 의미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2) 후기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무언의 해석에서 태어나고, 또 그것으로 양육된다. 

사랑의 이유


사랑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이다. 가끔은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듯이, 살면서 마주치는 몇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은 일종의 불가항력이다. 모든 마주침과 인연을 통제할 수 없기에 사랑이라는 사건의 발생은 우연으로 보이기도 하고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 사랑이 양방향적 소통을 이루려면 상대로부터 그에 걸맞은 응답이 돌아와야 한다.

응답을 요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다. 


선악(善惡)과 달리 호오(好惡)에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없어도 당사자에게는 사랑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할 수 있다. 누군가 내 삶에 스며드는 것은 파도처럼 몰아칠 수도, 잉크처럼 천천히 퍼질 수도 있겠으나, 속도와 무관하게 감정의 발현 자체는 예방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래는 남편의 죽음을 말 대신 사진으로 설명 받겠다고 말한다. 그 이후로 비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랜 연인처럼 보인다. 초밥을 먹은 후 뒷정리를 할 때는 조금도 동선이 겹치지 않고, 식사 후에는 직접 칫솔에 치약을 발라준다. 그들은 피의자와 경찰, 한국인과 중국인의 입장으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국적과 신분에 상관없이 익숙하다. 사랑은 반드시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미결로 결정된 사랑 


극 중에서 맺어진 사랑은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 서래는 두 번 결혼했으나 그녀의 남자는 모두 죽었고, 이주임은 이혼했으며, 주말부부의 60%는 이혼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하자던 해준 부부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물론 결정된 사랑이 모두 붕괴되었다고 해서 미결된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도 않는다.


또 다시 피의자의 신분이 된 서래의 손에는 결혼반지 대신 수갑이 채워져 있다. 피의자의 도주를 우려해서 수갑을 찼지만 수갑을 찬 두 사람의 모습은 사회 통념에 어긋난 마음에 대한 징벌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갑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보다도 확실하게 서로를 구속한다. 해준과 반지를 나눠가진 정안은 멀고 희미하지만 수갑을 찬 서래는 가깝고 분명하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이별이나 연인처럼 분명한 관계로 끝나지 못한다. 그들의 관계는 안개 가득한 이포의 날씨처럼 모호한 형태로 끝을 맺는다. 미결사건 때문에 잠 못드는 해준을 보며 서래는 집착의 대상이 자신이기를 바란다. 서래는 자살 후 남은 삶의 흔적을 통해 영원으로 기억되려 한다. 미결로 남아버린 사랑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사건으로 결정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특정 상황만으로 규정된 대상은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서래는 첫 번째 남편에게는 가부장적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두 번째 남편에게는 살인 사건의 가해자이다. 살인의 동기도 마냥 단순하지 않다. 살인은 분명한 죄이지만 그는 여러 사기 혐의를 받는 사기꾼이었으며,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빌미로 협박하는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은 이분법적 잣대로 단정 짓기 어려운데, 그 복합성의 기저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 


붕괴의 사전적 의미는 '무너지고 깨어짐'이다. 서래는 해준이 갖고 있는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품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확인한다. 고결한 인간이 나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은 잔인할지언정 나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더없이 확실하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을 확인하는 형태를 문제 삼을 수 있어도 사람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추락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은 희극이다. 


미결 사건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해준을 잠들게 하는 사람도 서래고, 부산에서 이포로 이사 간 해준의 불면증을 악화시킨 사람도 서래다. 그런 서래는 자살을 통해 해준에게 영원으로 남으려 한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은 인자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것처럼 죽음을 통해 영원히 기억되려 하는 모습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형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안개 가득한 이포의 집구석에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세상에는 탐탁치 않은 모습으로 자리잡은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 


서래가 보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는 붕괴현장에 고립된 여자를 찾아간 남자가 등장한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뛰어들게 한 것은 사랑이다. 사람을 죽이고, 피의자의 신분이 되어서라도 얼굴 한 번 보려고 행동하게 한 것은 사랑이다. 감옥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또다시 살인을 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과연 세상 일은 딱 두 가지 뿐인데, 남자 때문에 일어나는 일과 여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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