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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May 18. 2023

For Emma, Forever Ago

Bon Iver (2008)






Emma is not a person, Emma is not a place you stuck in,
Emma is pain you cannot erase. 


이전 밴드의 실패, 연인과의 이별, 단핵증 등 일련의 악재를 겪은 후 저스틴 버논은 위스콘신의 오두막에 3개월 동안 머무르며 앨범을 만든다. 앨범은 프랑스어로 '좋은 겨울'이라는 뜻을 가진 'Bon Iver'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위스콘신이 겨울에 매우 추운 지역이고 겨울이라는 계절이 차갑고 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앨범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기타 한 대와 Shure SM57 마이크 한 대로 만들어진 이 앨범의 이름은 'For Emma, Forever Ago'이다. 저스틴 버논은 엠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위의 인용문 같은 대답을 전했다. 앨범을 한국말로 풀이하면 '오래전에 있었던 상처에 대하여'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Bon Iver로 데뷔하기 이전 작품들과 Bon Iver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저스틴 버논이 거쳐왔던 Deyarmond Edison, 본명으로 발표한 그의 솔로 앨범과 Bon Iver 1집은 포크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Bon Iver 이전의 앨범에서는 저스틴 버논의 보컬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두꺼운 팔세토를 찾아보기 힘들고, 기타의 보이싱에서 풀링과 해머링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정석적이고 경쾌한 포크 사운드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Only love is all maroon
Gluey feathers on a flume
Sky is womb and she's the moon



앨범의 첫 번째 곡 Flume에서부터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곡에서는 이카루스의 날개 신화를 자신에게 빗대면서 추락과 상실을 표현한다. 그에게 사랑은 오래되어 변색된 적갈색이고, 수로에는 접착제가 발라진 깃털이 떨어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이달로스는 미궁에 떨어진 깃털을 모아 접착제를 붙여 그의 아들 이카루스에게 날개를 만들어 주는데,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 근처까지 날아올랐다가 그만 태양빛에 날개가 녹아내리며 추락하게 된다. 그에게 사랑은 오래된 혈흔처럼 빛이 바랬고, 야심찬 시도는 그 흔적만이 흩어져 있다. 


햇빛에 의해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이미지는 탯줄을 자르고 출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금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태양이 그를 추락시킨다면 달은 그와 대비되는 위치에 있다. 달은 태양처럼 불태우고 추락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와 비슷하다.




그는 오두막에 칩거하기 전에 여러 종류의 실패와 좌절을 겪었지만 앨범에서 주를 이루는 주제는 사랑이다. 그에게 사랑은 비쩍 마르고 야위어 볼품없다(Skinny love). 사랑은 그에게 배신감을 선사하며(Blindsided), 빛바랜 약속을 보고 중얼거리게 한다(Lump Sum). 이 앨범에서 그는 쉽사리 사랑에 대한 긍정을 얘기하지 않는다.



I toured the light, so many foreign roads
For emma, forever ago



상실에 대한 고통이 주를 이루는 이 앨범은 후반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 'Re:Stacks'에서는 자신의 참담한 상황을 묘사하다가 마지막 벌스에서 지금껏 앨범에서 토로한 심정과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한다.



This is not the sound of a new man or crispy realization
It's the sound of the unlocking and the lift away
Your love will be safe with me


마지막 벌스가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에 전화벨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오두막에 칩거하며 시작된 앨범은 자신의 상처를 모두 꺼내놓은 후 오두막 밖으로 나가면서 끝을 맺는다.


누구나 결과론적인 희망을 말할 수 있지만 역경을 넘어선 후 말하는 긍정이 더욱 값지다. 담담하게 토로하는 마지막 가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에게 닥친 과거를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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