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검사
‘그래도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야.’
포근한 속삭임을 내게 건넨 게 얼마 만인가.
소나기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1월의 시작 날,
의사가 정밀검사를 권했다.
‘또 영업하시네’
생각도 잠시,
나는 홀리듯이 의사의 뜻대로 하고 있었다.
아픈 곳도 없고,
국가 암검진에서도 정상소견으로 나왔는데
면역력이 약해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
내 업무 스트레스는 과도했고,
그 업무는 바로 이틀 전에야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뭐, 직장인이라면 다들 겪는 거 아니겠어?’
아침이 오면 나도 위와 같이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눈을 뜰 때마다
가슴 한 가운데가 타는 듯이 뜨거웠다.
사무실 풍경만 떠올라도 속이 미식거렸다.
그리고 이내 잘못된 공기를 마신 것처럼,
위가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 살필 여유 없어. 몸은 나아지겠지, 뭐’
바로 차키를 챙기고 직장으로 엑셀을 밟는다.
가는 와중에도
오늘은 누가 내게 민원을 넣을지 두려웠다.
나의 어린 고객님들보다
훨씬 더 두려운 건,
동료였다.
아이들은 이유가 납득되면 듣기라도 하니까.
그러나 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내뱉는
‘논리적인 척하는 개소리’는
내가 있는 곳을 도살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논리가 통하지 않으면
‘몇살이죠?’가 어김없이 나왔다.
나는 전체 인원의 근무스케줄표를 짰다.
각각의 이기심이 날리는 화살에 나는 시들어갔다.
‘그냥 투덜거려본다’는
그 한마디가 나에겐
하루에 20건, 30건인 경우가 많았다.
투덜이는 그냥 좀 받아주면 된다.
그보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냅두고,
툭툭 출장을 가버리는 상황이었다.
뒷수습은 나의 몫이었다.
근무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늘 긴장해야 했고,
10분 쉬는 시간 안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내 본 업무가 구멍나기 시작했다.
타일러도 보고, 화도 냈다.
전체 사내메시지로 쪽도 줘봤다.
다 소용이 없었다.
그와 친한 상사는 나더러
서비스직이라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답을 했다.
원하는대로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출장과 병가자가
하루에 4명씩 겹치는 날도 많았다.
그들의 일주일 스케줄을
모두 급하게 채워야했다.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출근하려고 했지만
나는 허락되지 않았다.
‘당신 업무는 아침에 없으면 안 돼. 퇴근하고 가.’
관리자가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건전지 몇 개를
겨우 돌려가며 버터야 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업무가 바빠서 무관심했다.
힘들게 하는 몇몇은
해가 바껴도 여전히 숨통을 조여왔다.
‘힘든 거 있으면 말해. 자살 같은 거 하지마!’
관리자가 말했다.
뉴스에는 한참
같은 직업군의 자살 이슈가 이어지고 있었다.
‘병가 낼 거면 다른 대타자 구해놓고 가.’
관리자가 말했다.
대타는 구할 수 없다.
가을, 겨울의 인력풀은 얼어붙었으니까.
그리고 내 업무는 항상 기피순위 1순위니까.
정밀검사 결과가 나왔다.
증상도 없고 예방주사도 일찍 맞아서
괜찮을 거라고 했던 의사는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암 전단계입니다. 바로 수술날짜 잡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