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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May 16. 2024

아니야 하지마

미운 내 습관이 또 나오고 말았다.

“아니야 하지마”


나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남편은 잔뜩 화가 났다.


꼭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내가 혼자 있을 때 말을 건다.


젊은 여자. 혼자 있음.


딱 시비 걸기 좋은 타깃이 되곤 한다.


“저 젊은이 테이블 다 먹었어. 저기 가 있어.”


남편이 음식을 받으러 자리를 뜨자마자


건너편 할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정장 안에 새빨간 스카프를 받치고, 고급 원목 지팡이를 진 한 할아버지.


지나가는 자신의 지인들을 붙잡고 나를 가리키며 목청껏 외쳤다.


우리 테이블에는 따지도 않은

막걸리와 맥주병이 하나씩 있었고,

뭐 별스럽지 않게 넘기려는 그때,


“다 먹었어요?”


라고 할아버지가 직접적으로 말을 건넸다.


“아니요. 저희 술안주 더 가지러 갔어요.”


지인들을 붙잡아놓고 큰소리 떵떵 치던 할아버지는 이내,


“너무 오래 먹는 거 아니에요? 양보도 좀 하고 해야지.”


하며 나를 다그쳤다.


“저희 온지 30분도 채 안 됐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급하게 연락을 했으나

인파 속에서 연락은 닿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냥 지나가려는 지인들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의자를 모아서 자리를 만들었다.


참 시선이 따가웠다.


남원시의 유지인 듯,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생글생글 웃으며

철판돼지고기볶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마침 남편이 돌아오자

그 할아버지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심상치 않은 내 표정과 이야기를 듣고는

남편은 바로 뒤를 돌았다.


“아니야, 하지마.”


나는 남편을 말렸다.


나는 그냥 태생이 그런 사람이라서,


어른한테 순종하고, 남 보기에나 좋은 모범생으로 살았던 인생이라서,


그때는 나도 모르게 미운 내 습관이 또 나오고 말았다.


“아니, 양보는 무슨.”


하며 다시 일어서서 가려는 남편의 손목과 어깨를 붙잡고 돌려앉혔다.


“하지마... 됐어.”


그 할아버지는 지인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고 싶었을 거라는 이해를 하며


나로 인해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서너번을 더 말리고, 남편이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내 기분의 롤러코스터는 시작되었다.


또 남을 생각하느라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


내 자신에 대한 서운함.


자꾸 생각이 났다.


우리도 겨우 어렵게 잡은 자리였고,


주변에는 훨씬 먼저 자리를 잡은 테이블이 많았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랑 비슷하게 왔으니

상황을 알고 있었을테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양보를 강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남편과 있을 때의 나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또 젊은 여자가 원인인 듯했다.


- 말리지 말걸.


- 나 혼자랑 다르게 남편이 말하면 대화가 부드러워질 수도 있는데, 말리지 말걸.


그 할아버지 명예를 생각하느라 괜히 남편의 마음을 무시한 것만 같았다.

그것 또한 나를 괴롭히는 생각의 꼬리가 되었다.



우리 집에서 춘향제까지의 거리는

고속도로로 1시간이 넘는다.

저녁 8시의 뜨거운 열기는 백종원 축제답게 참 뜨거웠다.


유모차 탄 아가부터

지팡이 짊어진 노인까지,


웃음꽃 핀 사람들 속에서 야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 웃음꽃 사이에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과 축제의 분위기는 참 좋았지만,

내게만 이뤄진

‘양보 강요’ 사건으로

참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기억이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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