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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13. 2022

'경찰'은 더 이상 '호구'가 아닙니다

다 함께, 더 크게 외칩시다

[월간 <치안문제> 기고글]

'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자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모양이 벌어진 범의 아가리와 같다고 하여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호구의 사전적 의미를 보는데 바둑에서 쓰이는 말이었구나 하는 생경함과 동시에 어쩐지 우리 경찰 조직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짠했습니다.

'경찰'. 대개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공무원을 말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도로 등 시설물 파손이나 쓰레기 투기, 동물 사체, 감염병, 소음, 불법체류자, 정신질환자 등 국가에서 하는 일이면 경찰업무가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전쟁이라도 난다면 무기를 들고 군인과 같이 싸울 것이고, 재난상황에서는 소방과 같이 현장에서 질서유지 등 안전조치를 함께 하겠지요. 하지만 갓 신임 때는 수많은 취객들을 상대하며 내가 이러려고 경찰이 됐나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인사불성 취객에게도, 안하무인 범죄자에게도 선생님이라 칭하며 친절을 다하는 경찰들.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투철한 건지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같은 건지.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물러 터진 지팡이가 과연 국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한때는 경찰이 권력의 시녀노릇이나 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억압하고 개인의 자유를 짓밟고 불의를 저지르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찰헌장에서 친절을 첫 번째로 꼽은 것일까요. 현재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인권침해 문제가 상당히 사회적으로 민감하기에 경찰이라고 해서 법적 근거 없이 멋대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감히 꿈도 못 꿀 일이 되었습니다. 경찰활동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법률이 많아지고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피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무기 사용뿐만 아니라 수갑 사용마저 부담스러운 실정이니 오히려 경찰의 인권은 범죄자의 인권보다 아래에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니까요. 범죄현장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 공무원에 비해 계급도 많아서 근무기간 대비 직급이 낮고 당연히 퇴직연금도 차이가 납니다. 타 직렬에 비해 짧은 평균수명과 높은 자살률이 우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말해주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경찰이 그야말로 '호구'에 들어간 꼴이지요.

설상가상 경찰 처우개선을 위해 처음 직장협의회가 '전국 직협'을 연대를 추진했을 당시, '불법 사조직'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내부 경찰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외부에 우리의 의견을 개진해주어도 시원치 않을 경찰청이,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며 '법령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다'라고 경고하며 직협 연대의 입을 틀어막았었지요. 그런데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 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직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전국연합 조직을 설립해 상급 기관의 장과 고충을 협의·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법 사조직'이라는 오명을 쓰고도 개인 시간을 들이고 사비를 털어가며 조직과 동료들을 위해 애써주신 직원 분들 덕택에 이제 우리를 가두려 했던 바둑돌 석 점을 우리 색깔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같은 색깔이 맞는지 어쩌면 더 두고 봐야 할까요.

몇 년 전, 경찰청에서 백범일지 독후감 대회를 주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인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정신이 담긴 ‘백범일지’를 읽고, 진정한 애국 안민의 길과 국민의 경종이 되기를 당부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되새기며 올바른 국가관과 경찰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 단체들도 당시에는 반란을 꾀하는 '불법 사조직'으로 취급당하며 엄청난 탄압과 수많은 고초를 겪었겠지요. 다행히도 백범 선생님의 애국 안민 정신은 잘 계승되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위대한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를 저격한 것은 일제도 다른 외세도 아닌 같은 대한민국 동포 안두희였다는 것입니다. 부디 누구든지 그런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호구에 들어간, 호구 잡힌 경찰이었지만 스스로 택한 직업이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음으로 양으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 비로소 경찰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무원직협법 개정안 통과를 기점으로 10월 출범할 경찰 연합회 구성까지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경찰 조직 전반의 처우개선의 훌륭한 포석이 되길 두 손 모아 고대해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칠 우리의 목소리가 과연 어디까지 가 닿을 런지요. 함께, 더 크게 외칩시다. 경찰은 더 이상 호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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