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만든 글감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우울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삭막하고 우울한 느낌이었다.
타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내 기준에서 인지상정의 바운더리에 속하는 일들을 상대가 하려 하지 않고, 그에 대한 짐을 내가 모두 이고 져야 한다는 거에 있어 분노를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에 있던 아픔들과 최근에 내가 깨달은 나에 대한 진실을 알아차린 후 그 두 가지의 사실이 결합되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에게 소망이 있었고, 그 소망은 나에게 결핍된 것들이었고, 그리고 난 그 결핍을 채우려 하니 괴로웠다.
그에 대한 분노를 또 난 타인에게 터뜨렸다.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이번 생의 나의 포지션은 내가 더 이해하고, 내가 더 아파하고, 내가 더 참는 거고, 내가 더 무거운 짐을 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포지션이 타인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때 나의 비밀스러운 고통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간 듯하다.
어디 가서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를 더 바라봐주고, 나를 더 생각해 주길 바라는데 언급했듯 이번생은 나는 나보다 타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괴로워했다. 이는 자기 연민도 아니다.
타인의 태도는 나의 포지션을 증명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아프다는 걸 말하는 건 너무도 가벼운 무게의 물건을 들고 투정하는 것과 같은 것 같았다.
딱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를 칭찬해 주는 건 너무 잘하는데, 누군가 나를 칭찬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 어색한 일이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받을 줄 알듯 칭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가 들었던 칭찬은 내 의무, 내 포지션을 되새기게 하는 칭찬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래도 듣지 않고, 그저 걸었다.
계속 머물고 있는 이 우울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와의 대화를 했다.
어떤 생각을 하거나 본 게 있으면 메모장에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었다.
카뮈는
마치 백색을 이해하자면 흑색이 필요한 만큼이나 부정적 사고의 하찮고 겸허한 방식들이 위대한 작품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적을 글감들, 그리고 나의 꾹꾹 눌러 담은 기록들이 생기는 것에 대한 감사를 하며 내 마음을 달래 본다.
나는 어쩌면 나에 대한 생각에 대한 갈망이 있다.
내 존재가 익숙하고 당연한 것처럼 나의 일관적인 태도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식은 침묵이다.
그 침묵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