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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Jan 21. 2023

일본의 매너 ① 엘리베이터

그들의 배려에 진심은 몇 스푼 들어갈까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흔히 그 나라의 사소한 매너나 관례 같은 것들을 경험한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 겪었던 캐나다인들의 '다음 사람 문 잡아주기'는 내가 맘에 드는 매너 중 하나다.


그 당시 나는 지하철 역 건물 안에서 출구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첫 외국생활에 신이 나서 사방의 모든 장면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출구까지 한 5미터 남짓 남겨뒀을까? 저 앞사람의 실루엣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멀끔한 룩의 남성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던 중이었던 것 같은데 들어오다 말고 문을 잡은 상태로 얼음땡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순간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날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건가? 야! 왜 그러고 서 있어? 다시 나가려고? 무섭게 왜 계속 쳐다보는 거야... 아 설마?'

설마 날 위해 문을 잡아주고 있는 건가 싶어 약간의 뜀박질을 하여 그 남자가 잡고 있던 문을 같이 잡았다. 그러자 그 남자, 어린 동양인의 초조한 표정이 귀여웠는지(아님 웃겼는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가던 길을 다시 가버렸다.


"와, 여기 정말 외국 맞구나. 문도 다 잡아주고... 벨보이인 줄."


한국에선 쉽게 느껴보지 못한 여유와 배려였다. 그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서, 나도 남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서 밴쿠버에 있는 4개월 내내 나도 그들의 문 잡아주기 매너에 적극 동참했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상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만뒀지만.


밈이 될 정도면 말 다했네




일본에 와서 처음 경험한 매너는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있는 사람이 마지막에 내리기'였다. 엘리베이터는 보통 처음에 탄 사람이 버튼을 누른다. 그러니 처음에 탄 사람이 마지막에 내리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내릴 때 열림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리다가 갑자기 닫히는 문에 낑기는 불상사를 막고자 함이다.


사람이 여러 명 탄 경우라면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근데 일본에선 딱 두 사람만 타도 문이 열림과 동시에 버튼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열림 버튼 위에 안착시킨다. 그럼 다른 사람은 그 사인을 확인하고서 가벼운 목례와 함께 먼저 내린다.


처음 이 매너를 접했을 땐 캐나다에서처럼 똑같이 내가 외국에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러는 이유가 뭘까.


1. 순수한 이타심과 배려심

2. 1+1이 2인 것처럼 당연한 것. 교육의 산물?


캐나다에선 1번을, 일본에선 1번보다는 2번을 더 많이 느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캐나다인 표정은 늘 여유가 흘러넘쳤기 때문에 그들의 매너에선 그 어떤 억지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베풀길 원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일본인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캐나다인 같은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난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의무감이 얼굴에 쓰여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당신에게 배려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규범을 행하고 있으니 그다음 단계에서 당신은 감사히 받으시면 됩니다. 적절한 감사표시 잊지 마시고요.'


보통 타인에게 배려받는 과정이 이러하긴 하지만 뭐랄까... 방송 3사 연말 시상식에서 구색 맞추기용으로 상을 타가는 수상자의 기분이랄까. 그니까 기쁘긴 한데 사실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닌 불편한 느낌.

사소한 매너에 뭘 그렇게 따지고 들 필요가 있겠냐, 배려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맞다. 그 사람의 진심까지 대접받고자 하는 나만의 욕심일 수 도 있다.


문제는 막상 내가 남에게 베풀려고 할 때 인지부조화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배려있게 행동하는 건 좋은데 애당초 배려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 아닌가? 난 배려있는 사람이 아니라 배려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마음 상태로는 내가 배려를 베풀어도 내가 그들에게서 의무감을 느꼈듯이 받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것만 같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배려란 말인가.


5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니 나도 여느 일본인과 다름없이 엘리베이터에서의 매너를 항상 지키고 있었다. 다만 그 배려에 진심과 여유, 기쁨 따위는 없었고 대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고 일본에 가면 일본법을 따라야 한다는 이방인의 학습결과만이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가끔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면 일본에서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젠 문이 열리면 어르신이나 택배기사,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재빨리 내린다. 나의 배려는 더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빨리 닫히지 않는다. 그걸 일본 사람들이 모를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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