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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Jan 19. 2023

일본 사람들은 선물과 이벤트를 좋아해

일본에서의 첫 직장에서 퇴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직무가 맞지 않아 1년을 거의 못 채우고 그만두던 터라 조용히 회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당시 설계팀에 있었고 3명의 여성이 있는 디자인팀과 같은 층에서 일하고 있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직접적으로 일할 기회는 거의 없어서 디자인팀의 여성 직원분들과는 평범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출근날, 디자인팀의 여성 두 분이 나에게 와서 각자 무언가를 건넸다.

"선물이에요^^"

음? 퇴직 선물? 나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 몇 번 대화도 해본 적 없는데 선물이라니...

하나는 바디솔트, 핸드크림 세트였고 다른 한 선물은 귀여운 사자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타월 손수건(일본인들이 여름에 사용하는 필수템)이었다.


일본인의 감성이 느껴지는 귀욤뽀짝 손수건


그냥 자기 동네에서 산 그런저런 물건이 아니었다. 백화점이나 적어도 전문 선물샵에서 구매한 듯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감동 이벤트를 시전하니 '나 그래도 회사 생활 나쁘지 않게 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일본인들의 이런 선물 이벤트는 종종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평생 살면서 선물, 이벤트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는데 5년 동안 일본에서 겪었던 관련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몇 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오미야게

가장 흔한 건 멀리 다른 지역에 가거나 출장,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직장에 돌리는 오미야게(お土産) 문화.

그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걸 사 오는데 주로 쿠키 같은 과자류가 많다. 매년 여름에 하와이로 가족 휴가를 다녀오는 여성 직원은 하와이에서 구매한 립밤을 선물하기도 했다. 


2. 자기 취향의 선물

자신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선물을 할 때도 많다. 한 번은 인사팀의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가 뜨개질을 했다며 딸기 인형(?)을 나에게 대뜸 선물했다. 귀엽긴 한데 도무지 이걸 어디에 쓰거나 꾸며야 할지 모르겠어서 결국 재직기간 내내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았었다. 

또 한 번은 다른 회사에서 남자 동기가 주말에 고전 동물 캐릭터? 뭐시기 박람회에 갔었는데 거기서 사 왔다며 토끼 그림이 그려진 나무 자석을 나에게 준 적도 있다. 이건 또 어디에 둬야 하나... 굉장히 난감했었다.


3. 생일 이벤트

생일 이벤트도 남다르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친구가 시부야의 한 레스토랑을 예약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레스토랑 예약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식사가 끝날 때쯤 친구는 식당에 미리 부탁한 내 이름이 새겨진 케이크를 적절한 타이밍에 생일 축하송과 함께 이벤트를 해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끔 대화 몇 번 나눈 게 고작이었던 같은 또래의 회사 동료 둘이 오코노미야끼 집에서 어떻게 내 생일을 알고,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에 오코노미야끼 위에 내 이름과 함께 Happy birthday to you 글씨를 예쁘게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봐도 식당 직원의 생일 이벤트 서비스였다.




이외에도 명함지갑, 텀블러 등등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내가 필요한 물건이건 아니건내 생각을 하며 그 선물을 골랐을 것 아니겠는가.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고마운 게 선물이다.


그런데 한국인 입장에선 처음에 적잖이 당황스럽긴 하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나같이 생일 선물 말고는 별로 챙기는 게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렇게까지 해준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리고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받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이런 걸 보면 일본사람들은 성의와 예의 표시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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