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이 2년째 접어들었다. 코로나19로 중국의 공장 가동이 줄어 국외 미세먼지 유입도 줄어든 것일까.
지구의 하늘은 미세먼지 없는 맑고 투명한 하늘이 연일 지속되었다. 비 온 뒤 아파트 사이로 선명하고 커다란 쌍무지개가 뜬 것도 여러 번. 아이들이 키즈폰으로 무지개를 몇 장이나 찍어댔다. 너희도 무지개를 보면 보물을 찾고 싶어 지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해시태그 무지개를 감상하는 시간이 하늘을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 확연히 더 길겠지. 대상을 액정화면으로 옮겨 와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뇌는 같은 걸 보고 있다고 지각한다.
감상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줄줄 새고 있다. 그리고 나의 마법 같은 바람은 끼어들 새도 없이 무념한 상태로 지나버린다.
생생한 것을 두 눈으로 보는 찰나의 기쁨이 사라지면 아쉬움도 없다. 기다림도 옅어진다.
나의 소싯적 무지개는 기계 따위에 담을 수 없었기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미세먼지라는 단어도 들어본 적 없던 시대에 어린 나의 마음도 투명한 창문 같아서 미지의 것들을 더 잘 보았고 믿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주워 담았다.
비 오는 어느 날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공포체험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동네는 논두렁으로 둘러 싸여 있고 야트막한 거북이 모양의 산은 꼬리쯤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산자락 끝으로 돌아가야 반대편의 음침한 묘지들이 보였는데 아이들은 늘 그곳을 놀이터로 노렸지만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저 밖에서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그 시절 으뜸 공포 드라마는 누구나 아는, ‘전설의 고향’이었다. 시작 음악만 나와도 이불을 덮어썼고, 무서운 장면에서는 시야를 흐리멍덩하게 만들고서라도 꼭 보았다. 재방송을 하는 토요일 낮에는 혼자 보다가 귀신인지, 시체인지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하는 장면에서는 맨발로 골목으로 뛰쳐나온 적도 있다.
우리가 날 잡은 그날엔 공동묘지 위로 무지개까지 떴다. 아무도 무지개 끝에 보물이 있다는 말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다. 나만 잔뜩 무지개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런 건 없어.’, ‘바보 뚱딴지같은 소리야.’라는 말만큼은 듣기 싫었던 건지 입 밖으로 보물이라는 말을 꾹 집어삼킨다.
동네 아이들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새로운 놀 거리에 기대가 컸다. 이런 놀이에 성화 언니, 동춘이, 금준이, 마풍이 누구라도 빠지면 저만 손해다. 속으로는 진땀이 났지만 친구들과 같이 가는 길은 늘 요란스럽고 재미가 있었다. 점잖은 해골들이 시끄럽다고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
논두렁을 뛰어넘고 달리다 보면 어스름한 묘지가 보인다. 공포체험은 뭐니 뭐니 해도 이심전심.
입구에서 서로 등 떠미는 기분으로 밀어 넣다가 누군가 꺅, 소리를 지르는 통에 머리칼이 쭈뼛하고 발은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다들 뒤돌아서 냅다 뛴다. 나도 뒤늦게 따라 뛰었는데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무지개가 없다는 걸 어렴풋이 확인한 뒤였다.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정말 있을까? 무지개 끝은 어디에 있을까? 앞에 있는 무지개를 쫒다 보면 무지개는 놀리듯 그만큼 더 줄행랑쳐버리거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허영덩어리!
화려한 일곱 빛깔로 호리고 그 끝엔 보물이 있다니, 가까이 가면 도망쳐 버리는 주제에. 역시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는 힘이 있다. 묘하게 믿게 되니까.
크리스마스도 한참 멀었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산타는 진짜 있어요?”, “있지.”
그 말에 4학년인 형이 옆에서 “없어. 진짜로 썰매를 타고 나는 사진은 없잖아.”
아! 정말? 그럴듯한 수많은 사진을 보고서도 구별할 수 있다고?
작은 아이가 산타를 의심했던 처음은 다섯 살 때 어린이 집에서 체육선생님이 산타 옷으로 갈아입는 걸 봤다며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산타가 진짜 있다면 체육선생님이 왜 산타 흉내를 내는 거냐고 물었던 것이다. 앗! 선생님,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단박에 환상을 거짓이라 말해버리는 건 어딘가 내키지 않는다.
“가짜들이 흉내를 낸다는 건 어딘가에 진짜가 있다는 거지.”
아이들 둘 다 “진짜요?” 하더니 꽤 그럴듯한 지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한다.(큰 아이는 더 얘기하기가 귀찮아 보임) 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꼭 교회를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즈음의 냄새와 분위기가 어린 마음을 들뜨게 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떠올린다. 교회 친구들과 아기 예수가 나오는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면 내 머리 위에도 천사처럼 도넛 모양의 고리 같은 게 빛나는 건 아닐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전과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그날의 즐거움 중 하나는 당연히 산타가 주는 선물을 받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검정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 안엔 언제나 공책이나 연필 같은 문구류였는데 소원으로 빌었던 것들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무엇을 갖고 싶었던 건지는 생각이 안 나도 ‘또, 공책이네.’하고 실망했던 건 기억난다. 산타가 검정 비닐에다 선물을 넣어 준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음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갖고 싶은 선물을 떠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나는 일 년 내내 산타가 어디서 보고 있다가 크리스마스 때 나쁜 아이인지 착한 아이인지 판가름한다고 여겼다. 나쁜 일, 착한 일을 주판으로 탁탁 쳐가며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평범한 아이였지만 때때로 나쁜 짓도 했다. 티브이 위에 놓인 동전 꾸러미에서 오백 원을 몰래 가져간다던지, 돼지 저금통에 손을 댄다든지 말이다. 그래도 산타에게 선물을 못 받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산타는 생각보다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이 컴컴한 옷장 속에서 저금통을 거꾸로 들고 흔든 건 산타도 모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산타도 모를 그 일을 성화 언니네 엄마에게 들켜버렸으니.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고 옷장에서 나올 때 창밖에서 안을 보던 아줌마랑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머니를 찾고 있던 것일까? 수상쩍게 옷장에서 나오다니 그것도 돼지저금통을 안고서. 아아, 어린 심정에도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고 말았다. 어쩌면 아줌마가 나에게 나쁜 독을 빼내려고 내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줌마는 체한 사람을 고쳐주는 일을 했는데 내가 보기엔 나쁜 기운을 몸 밖으로 빼내는 기묘한 작업으로 보였기 때문에 환자가 앉는 긴 의자에 끌려가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이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다. 대신 아주머니를 보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역시 사람은 죄짓고는 편히 살 수 없다. 비록 우리 집 저금통이었지만. 돼지저금통의 무게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말했던 것 같다. 어머니, 우리 집에 꼬마 도둑이 셋일지도 몰라요.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고서야 나는 동전 훔치는 걸 멈추었을 테지. 산타를 믿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사실 지금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진짜가 있으니 가짜가 있는 거지!
초등학교 가는 지름길은 논두렁길이었다. 죽은 뱀도 보았고 살아있는 독사도 보았다. 흠칫 놀라면서도 그 길로 다니는 게 재미있었다. 논두렁길 중앙엔 작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흙탕물이라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넓은 밭과 그 귀퉁이에 붙은 웅덩이는 전에 살던 집주인 할아버지의 것이었다. 하루는 지나가는데 웅덩이에서 ‘철썩, 풍덩.’하고 물이 튀는 것이다. 놀라서 웅덩이를 보는데 엄청나게 큰 잉어였다.
솟구칠 때 은색 비늘이 반짝였다. 순간 잡고 싶은 욕심이 발끝까지 뻗쳤다. 그걸 우리 집 밥상에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싶었을까? 가끔씩 쑥을 캐면 저녁에 조갯살을 넣은 쑥 된장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쑥을 캐 온 나를 칭찬해주셨다. 그러면 당장 또 쑥을 캐러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이 남의 웅덩이 속 잉어에게로 옮겨 간 것일까?
노을이 지는 들판에서 흙탕물의 잉어가 솟구쳐 오르는 걸 보면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아서 잡을 엄두가 안 났다. 그러다 잉어를 잡을 도구가 자연스럽게 내 손에 쥐어졌는데 비 오는 날 하교 길이었다. 커다란 우산을 거꾸로 뒤집어 물속을 헤집으며 잉어랑 멱살잡이를 하듯 엎치락뒤치락했다.
잉어는 잡힐 듯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가도 꼬리를 힘차게 굴려 곧 빠져나갔다. 이 과정이 수 없이 반복되었는데 잉어의 힘이 감당이 안 된 나는 곧 뻗어버릴 지경이었다. 잉어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찰나의 희열과 놓쳐버렸던 순간들이 교차하면서 나는 혼이 쏙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잉어에게 복수심과 동시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날 기어코 그놈을 잡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우산을 들고 나섰다. 전쟁터로 나서는 비장한 군인처럼. 도대체 남의 집 잉어를 탐내면서 그렇게 당당한 집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어쩌면 웅덩이만 주인 할아버지의 것이지 잉어는 그저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먼저 잡는 놈이 장땡!
버석한 흙길을 걸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먼지바람이 일었다. 웅덩이에 도착하자 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니 전쟁 따윈 없었다는 듯이 텅 비어있다. 돌무더기로 빙 둘러쳐진 인공의 구덩이 속은 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꼭 시커먼 목구멍 같았다. 그 목구멍은 연못을 몽땅 삼키고 나까지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까? 텅 빈 구덩이처럼 어린 나도 꽤 공허하고 혼돈스러워지고 말았다. 나는 이 길을 지나면서 늘 ‘사라진 잉어는 어디로 갔을까’하며 궁금해했다. 그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붉은 노을 아래 은빛으로 빛나던 아름다운 나의 잉어는 판타지였을까?
그 잉어는 어디로 갔을까?
주인 할아버지의 보약이 되었을까? 역시 그건 싫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당연하고도 정당하다. 상상력은 언제나 날개를 달고 있다.
그 날개는 우리 은하를 넘어서 120억 광년을 날고 있으니. 나의 잉어는 어디쯤 유영하고 있을까.
인간이 어린이였을 때를 잘 기억하는 것은 처음 보고 경험하는 세상이 새롭고 즐거워서라고 한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지금 반복되는 어제와 오늘이 한 달 전과 다를 게 무엇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꼭 반복되는 생활이 지루함의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얼핏 느낀다.
그 근원의 중심은 ‘호기심’이 아닐까. 호기심 없는 삶은 시들하고 맛대가리 없다.
퇴행성관절염보다 더 무서운 건 어린이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말이야 뭘, 하루도 빠짐없이 칼슘을 챙겨 먹고 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