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6년의 연애기간을 끝내고 2010년 크리스마스에 결혼을 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신일이 아닌 결혼기념일이다.
청첩장을 돌릴 당시 크리스마스에 결혼한다고 민폐 커플이라며 친구들에게 욕 꽤나 먹었지만 그래도 그날 결혼한 덕분에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되는 딸아이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는 날이 아닌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라고 알려줬다.
어릴 적 이유 없이 마음이 들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 엄마는 교회도 안 다니면서 크리스마스는 왜 기다리냐고,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만들 거면 부처님 오신 날에 등도 달아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더랬다. 하지만 이젠 종교와 상관없이 떳떳하게 마음껏 그날을 누구보다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생겼다.
우리 부부가 크리스마스에 결혼한 이유는 특별한 날에 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고, 종교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었다. 취미로 동양 철학을 공부하시던 외가댁 친척분이 날짜를 잡아 주셨는데, 그 해는 두 날짜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크리스마스여서 그냥 그날을 고르게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특별한 날에 결혼하게 되어 내심 기분은 좋았다. 게다가 결혼기념일에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은 적어도 없으니 더더욱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우리만의 특별한 날이 아니다 보니 안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어딜 가나 사람들이 넘쳐나고, 예약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우리만의 결혼기념일을 오롯이 즐기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이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함이 밀려왔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결혼기념일의 특별한 이벤트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맛있는 음식과 와인 한 병 사 와 세 식구 둘러앉아 잔잔한 캐럴 음악을 틀어 놓고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즐기게 됐다. 밖에서 들인 비용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마음 편히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은 집콕이 최고야!' 서로를 세뇌시키며 크리스마스는 집에서를 고수하는 편이다.
뭐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긴 하지만 따뜻한 우리만의 공간에서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남편과 여전히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올해도 메리 결혼기념일 해야겠다.
모두모두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