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방학이 드디어 시작됐다.
이름하야 크리스마스 방학이다.
지난주까지 기말고사가 이어졌기에, 기숙사에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파티는 이미 아기예수님 탄생 2주 전에 이루어졌다.
어떤 마을(Maynooth)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예수님을 구유에 모셔놓고 있기도 했다.
이미 10월 중순부터 대형몰과 마트에선 할로윈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하여 Ornament(외형장식)과 Decoration(소품)들이 판매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이었다.
각자 저마다의 집을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몄고, 이는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처럼 아일랜드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음악에선 The Cranberries(크랜베리스)의 리드보컬 Dolores O'Riordan(오리어던)의 대체불가능한 음색이 좋은 예이다. 켈트인들의 신화와 바이킹 문화가 곁들여진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감성이 곳곳에 녹아 내려져있다.
겨울방학에는 특히 학교 기숙사가 문을 닫기 때문에, 새로 지낼 곳을 각자가 따로 구해야 한다.
아일랜드 물가는 유럽 내에서도 상당히 높기에 굳이 춥고 비 내리는 아일랜드에서 머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따뜻하고 살기 좋은 남쪽을 검색하다 그만 몰타에 시선이 머물렀다. 몰타는 영어 어학연수로 매력적인 장소이다.
물론 몰타어가 따로 존재하지만, 오랜 시간 영국 식민지였고 영어를 공용어로 함께 사용하기에 영국, 아일랜드와 더불어 어학연수지로 인기가 높다.
특별히 날씨가 사계절 온화하고, 6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기에 해상레저로 인기가 높을뿐더러 물가도 비교적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영어공부를 하러 왔다가 인생을 즐기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후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날씨는 몰타보다 이곳 더블린이 더 따뜻하고 서울의 날씨가 알래스카 보다도 더 추운 상황이다.
아일랜드에서 지낼 날들이 그리 많지 않았음이 자각되었을 때, 가장 먼저 아쉬웠던 점은 이미 내 몸에 익숙해진 도시 더블린이었다. 약속 시간까지 1시간, 2시간, 3시간 남았을 때 구글맵을 보지 않고도 어디를 가야 할지 쉽게 정할 수 있고, 자투리 시간을 요긴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내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인 더블린은 비록 다른 유럽에 비해 볼거리와 관광지가 부족하지만, 나만의 추억과 스토리가 담겨 있기에 소중한 곳이 되어버렸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인 점이다. 그래서 나도 시간이 2시간 이상 나는 경우엔 큰 고민 없이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론 London(런던)에 비해 작품도 월등히 작고 규모도 볼 품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기자기한 미술관이 건네는 이야기와 위로는 제법 흥미롭다.
그래서 오늘은 더블린에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1. National Gallery of Ireland(내셔널 갤러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2위 The Long room을 보유한 Trinity(트리니티) College 근처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는 더블린에 갈 때면 내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그래도 국립미술관으로 규모 면에서 아일랜드에서 가장 크고, 관리와 발전적 측면에서도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매해 아일랜드 정부와 여러 루트를 통해 후원금을 받고, 그 후원금으로 경매를 통해 작품들을 구매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이번엔 Northen Ireland Belfast(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John Lavery(존 래버리)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먼저 특별전을 관람하고, 상설 전시관으로 발을 옮겼다.
상설전시관은 총 3개의 층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고, 고흐, 르느아루, 모네를 비롯한 화가의 작품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작품은 바로 Baroque(바로크)를 대표하는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카라바조)의 Cattura di Cristo(그리스도의 체포)라는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재인식과 수용을 통해 이상적인 미를 구현한 르네상스의 시대를 뒤로 하고 나타난 빛과 어둠의 대비와 사실적인 묘사를 표현하는 바로크 미술은 내게 삶과 이상이 괴리되지 않고 하나의 지점을 통해 교차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준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하늘을 바라보고 희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바로크 작품들이고 그래서 카라바조와 램브란트를 무척이나 선망한다.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 중인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에 대한 작품은 가톨릭 예수회가 소장한 작품으로 이 미술관에 무기한 작품을 전시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즉 작품에 대한 소유권은 예수회가 가지면서, 대중을 위한 생각과 작품 보관에 대한 측면을 이 미술관으로 넘긴 탁월한 결정으로 모두가 이 대작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이번에 몰타로 가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날씨라면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성 요한 기사단 성당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작품 The Beheading of St. John(세례자 요한의 참수)를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살인을 하고 도망자의 삶을 살다 그리게 된 이 작품이 바로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있었기 때문이다.
2. The Hugh Lane Municipal Gallery of Modern Art(휴 레인 갤러리)
약속이 더블린의 중심부인 거리 O'Connell Street(오코넬) 거리 특별히 Spire(첨탑) 근처이면 망설임 없이 휴레인 갤러리를 간다. 이곳은 작지만 나름 알차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약속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있으면 내 발은 이곳으로 향한다.
20세기 유럽에서 명화를 모았던 그의 이름을 기려 만든 박물관으로 특별히 이곳엔 가장 지저분한 작업실로 기억되는 Francis Bacon(프랜시스 베이컨)의 작업실이 복원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문학의 거장 William Butler Yeats(W.B 예이츠)의 동생 Jack Butler Yeats(J.B 예이츠)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워낙 형이 유명해서 가려진 느낌이지만, 난 잭버틀러 예이츠의 그림이 인상파 화가들의 붓칠만큼이나 멋지게 다가왔다. 그래서 예이츠의 그림이 그립거나 잠시 숨고를 장소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휴레인 갤러리는 다섯 손가락 후보군 안에 존재한다.
3. Ireland's museum for modern and contemporary art(아일랜드 현대미술관): IMMA
예전 유명한 Royal Hospital Kilmainham(킬마이넘) 병원의 한 곳에 위치한 현대 박물관으로 더블린에서 외곽 Heuston station(휴스턴) 기차역 근처에 위치한 곳이다. 특별히 찾아서 갈만한 곳은 아니고, Guinness Storehouse(기네스 맥주공장)이나 Phoenix Park(피닉스 공원)에 올 때 같이 방문하면 좋을 미술관이다. 현대 미술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명한 것은 바로 정원이다.
이 미술관 앞에 정원은 더블린에서 예쁘기로 유명한 정원이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이면 킬마이넘 정원에선 큰 콘서트들이 열리는데 23년도엔 오아시스의 리드기타리스트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노엘 갤러거)와 Tiësto(티에스토)가 와서 야외공연을 했다.
아일랜드에 살아가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문학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높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술 작품에 대한 열의와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켈트족의 감성과 섬나라의 민족성 그리고 바이킹 서사가 어우러져 만드는 독특한 문화가 아일랜드에는 존재한다. 위에 소개한 미술관 모두 무료로 개방하고 있기에,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아일랜드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물론 문화의 감수성은 언제나 Pup(펍)에서 즐기고 체험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방학을 맞이하여 잠시 그 문화를 접어두고 중세의 The Crusaders(십자군)으로 유명한 요한기사단이자 훗날 몰타 기사단으로 유명해진 몰타로 새로이 신발끈을 동여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