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나이많은 남자는 정말 어른스러울까?

by 옥샘

7살 많은 남자와 결혼하면서 나는 그가 어른스럽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해서 어려웠던 세상의 일들을 척척 대신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기대는 실망을 부르고 막상 실제로 함께 살아보니 나와 이남자는 결혼1년차 초보 남편일 뿐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처음 자취생활을 시작했을때 나를 당황하게 한것들은 참 많았다. 때맞춰 날아오는 고지서를 제때 납부하는 것, 자동이체를 등록하는 것,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기는 돈을 어떻게 저금하고 투자할 것인지, 구두굽은 어디서 어떻게 가는 것인지, 운동화 빨래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음식을 사먹는 다던지, 장을 봐서 음식을 해먹는 것 등 일일히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일들이 밀려들어와서 부모님집에 살면서 학교다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만큼 나는 혼자서 할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뒤이어 서울로 올라온 여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면서 내가 먼저 와서 알고 있던 것들을 가르쳐주고 몇가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곤 했다. 후에 나 혼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여동생은 내 빈자리를 아주 크게 느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인줄 그때서야 알았다면서.


나는 일본에 가서 다시한번 '모르는 일 알아가기'를 시작해야했다. 쓰레기분리수거, 장보기, 공과금내기, 현금인출하기, 통장만들기, 아르바이트 구하기 등등. 일본어가 꽤 능숙한 편이었지만 일상회화와 관공서 서류의 내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더듬더듬 읽어내서 주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곤 했다.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다. 그렇게 나는 일본에서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돌아와서는 영국어학연수를 가서 또 이과정을 반복했다. 그때는 여동생과 함께여서 둘이서 헤쳐나가니 좀 마음고생은 덜 했다. 그래도 언제나 언니로서 더 잘 알아야하고 더 잘 해결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영어도 내가 조금 더 잘하니 나서야 할때는 내가 나서서 이야기 하고, 예약도 내가하고 그런 과정에서 아주 예민한 상태가 되기도 했던것 같다.

결혼을 하면 내가 하기 어려운 일들을 남편이 대신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나에게 어려운 일은 남편에게도 어려웠다. 결국 더 의지가 있는 사람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처리해야하는 것일 뿐.


결혼을 통해서 혼자 짊어져야 할 것들에서 도망칠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참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그때는 그만큼 남편이 듬직해보이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도 지금의 내나이보다 한참 어렸는데 말이다.


남편친구들이 나를 처음 본것은 그가 31살 내가 24살 대학생인 시절이다. 그때 남편의 친구들은 한명을 빼고는 모두 결혼을 했었고 아이들중 가장 큰 아이가 4살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남편친구의 부인들은 둘은 동갑내기 한명은 3살 연하였는데 그전까지 막내였던 언니보다도 4살 어린 내가 얼마나 어리게 느껴졌을지 생각해보면 어쩐지 웃음이 난다. 언니들은 요즘도 나를 만나면 '니가 올해 몇살이지?'라고 묻고 내가 39살이라고 말하면 아연한 얼굴을 한다. '니가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됐니?'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나는 깔깔 웃으면서 '언니들만 나이먹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정신없이 웃는다.


나와 남편은 연애할때 7살이던 우리 막내동생을 데리고 썰매도 타러가고 워터파크도 갔었다. 그 동생이 우리가 결혼할때는 9살이었는데 버진로드 앞에서 누나 결혼 안하면 안되냐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녀석이 오늘 생일인데 얼마전 군대를 제대하고 여자친구랑 노느라고 집에는 잠만 자러 밤 12시에 올예정이란다.


나와 남편사이에는 7살 아들이 있다. 남편은 예전 우리 막내동생과 놀아줄때보다 나이가 들었고 그때의 에너지가 많이 사라져서 언젠가 우리가 가정을 꾸리면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모습 보여주겠지 했던 기대들은 또 한번 무너졌지만 그래도 방금전 저녁은 먹었니하고 다정하게 전화해준 남편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감사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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