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상담소 May 08. 2024

어쩌면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중일지 몰라





  무언가 적어야만 할 것 같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사실 노트북은 아니고 태블릿을 열었다. 노트북은 파우치에 넣어 두었고, 아마도 충전이 안 되어 있을 것이고, 마우스 패드도 꺼내야 하고, 마우스도 찾아야 하니 귀찮았다. 쓴 글을 저장하려면 USB도 있어야 하니 이래저래 '무언가 적어야만 할 것 같'았던 지금 이 감정이 금세 휘발되어 버릴 것 같아 손이 닿는 곳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선택했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서 지금 이것저것 두들겨 보고는 있는데… 이 글이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언젠가, 조금 귀찮더라도 USB를 꺼내 저장해 놓을 수 있으려면 좀 그럴 듯한 글이 적혀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적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이다. 그러고 보면 마치 지금 내 생활과 이 글은 좀 비슷하다. 글과 작가는 닮는다더니 어쩜 일리가 있다.



  며칠 전 아내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톰 행크스 주연)'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열 번 정도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본 건 대략 10년쯤 전이었다. 다들 한 번씩 그런 적 있지 않나? 분명히 보긴 봤는데 주인공 이름은 물론 대략적인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경우. 나는 삼국지를 소설로만 17번을 읽었다, 이건 나름 내 자부심이기 때문에 횟수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드문드문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고, 밥 먹듯이 외고 있었던 인물들의 이름과 자(字, 중국식 second name이랄까, 아무튼)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충격을 받고서는 다시 삼국지를 펼쳐 18번째 읽고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고, 그러니까.







  영화 어땠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의외로 아내는 꽤 긴 감상평을 내놓았다. 척이 다시 육지로 살아 돌아왔을 때, 척의 연인이었던 캘리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잖아. 그리고 척이 결국에는 캘리를 보내주고. 마지막에 척이 그러잖아.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그저 숨을 쉬었다고. 숨을 쉬고 살다 보니 나를 표류하게 만들었던 파도는 또 다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주었다고. 그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한 며칠 전쯤에도 나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저 틈만 나면 누웠고 누워서 잠을 잤다. 자고 또 잤다. 밥도 안 먹고 잤다. 그래, 어쩌면 나는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망망대해에 누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끝없는 부침(浮沈)을 반복하며 그렇게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나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지만, 어쨌든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그냥 누워만 있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든 언젠가는 이 모든 것도 끝이 날 것이다.



  중간에 생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표류하는 동안, 어쨌든 우리는 살아내야만 한다. 그냥 숨만 쉬기 심심하다면 옹냥꽁냥 뭐라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바람 빠진 배구공에 사람 얼굴 그려넣듯 무의미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는 건 아니고 오랜만에 불쑥 찾아온 감성이 낯설어 변명하듯 오늘치 마음을 갈무리해 보려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