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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상담소 Mar 15. 2023

선생님, 저는 요즘 어쩐지 좀 재미가 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요즘 어쩐지 매사 재미가 없습니다.


학교 일도 재미가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재미가 없습니다.

공부도 재미가 없고, 그 좋아했던 독서도 어쩐지 이전보다 재미가 덜한 듯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매너리즘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이 걱정해 주신 대로 건강이 나빠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언가 이러한 보편적인 것들보다 훨씬 더 고상한 무언가,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까닭 없이 내친 걸음도 멈추고서 허공 한가운델 헤매이는 것도

우수수 쏟아지는 낙엽을 멍하니 보다 급히 두 눈에 주워 담는 것도

몇 시간이고 한곳에 앉아 비 내리는 호숫가를 바라보고 섰는 것도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풍경을 숨만 겨우 쉬어 가며 감상하는 것도

다 겁 없이 마음에 시(詩)를 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 어쩐지 요즘 저는 아무것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저무는 석양 아래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그 겸손히 꿇은 무릎 위에 더욱 겸손히 포개고 앉아

하루가 오롯이 저물고 마는 그 한 편의 시를 두 눈에 담고만 싶어집니다.

 

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엔 곧 별들로 그 빈 곳을 채우듯

공허함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에도

별처럼 시가 와 박힐 것입니다.

   

학교도, 학생도, 아내도, 아이도 다 사라지고

이곳엔 그저 조용히 저물어가는 하루와 나와 기도가 있습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때가 되면 별이 뜨는 세상에는

오로지 나와 나의, 시(詩)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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