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저는 딱히 실패랄 것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인생을 살아왔어요.
재수를 한 번 하긴 했지만, 재수는 필수라면서, 12년 정규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꿈꾸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꿈꾸던 지역의 꿈꾸던 학과에 진학했으니 2/3쯤 성공한 셈이었죠. 늘 원만한 인간관계에 다툼조차 없었고,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졸업 후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출산까지 남들 다 하는 건 물론이고, 못 하는 것도 조금쯤 이뤄가며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저는 딱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원 임용고사 합격입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름(‘나름’이란 부사어를 붙이는 걸 보면 어쨌든 백 퍼센트는 아니었다는 밑밥을 깔고 싶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열심히 했는데 이번에도 떨어지고 말았거든요. 같이 공부하던 선생님과 주변 분들은 대부분 1차까지는 합격을 하셨는데, 저는 10년 동안 1차 시험 한 번을 합격 못 해 봤네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답니다. 「허생전」의 '허생'도 10년 글 읽기로 뜻을 세웠다고 했구요. 10년이면 세상이 변하든, 내가 변하든 변해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의미 부여 하기도 좋구요. 같은 근무지에서 5년 기간제로 근무하는 동안, 이게 기간제 교사인지, 정교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안주했고, 주변 분위기에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 싶어 제 발로 빠져나오려고요. 나름대로 용기를 냈달까요. 남들 보기엔 그저 도망치는 정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요.
선생님,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의 실패를 인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해 보려구요. 계약이 끝나면 바로 머리 염색을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금발(white blonde)로요. 한 번도 제대로 염색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하얗게 반짝이는 머리를 하고 거리를 걸어보고 싶어요. 아직은 제법 찬 바람이 기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