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는 문장성분의 종류를 결정하는 조사가 있습니다. 이/가, 을/를, 의, 에게, 으로...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조사들을 격조사라 부르는데, 격조사의 '격'은 자격을 의미하는 '격(格)' 자를 씁니다. 즉, 격조사는 앞에 놓이는 말에게 일정한 자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에 의해 나의 자격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새삼 서글퍼집니다.
선생님, 오늘 제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임용고사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뻐야 마땅할 일이었습니다만, 제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급격한 속도로 감정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더라고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말이에요.
선생님, 저의 자격을 누군가가 부여해 준다고 생각하니 슬퍼집니다. 결국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저는 자격이 없는 셈이겠죠. 스스로 모자람 없이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결국 자격없는 사람으로 남게 된 것 같아 쓸쓸한 기분입니다. 하나둘 자격을 갖추고 떠나가는데 저만 제자리에 남겨진 것 같아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