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그놈의 밥 약속은.”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진짜 만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심지어 뭘 먹을지까지 구체적으로 정한다며 ‘언제 한 번’ 먹자는 밥 약속은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하다고,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왜들 그리 남발하는지 모르겠다고 책잡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네요. 어쩌면 정말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이것은 며칠 전,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시며 제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서로 정확한 계약 기간이나 계약 조건 등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우리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었기에, 누구라도 언제든 학교를 떠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동료 선생님의 이별 통보는 언제나 늘 급작스럽습니다.
떠나는 뒷모습에서 제 모습이 겹쳐 보인 듯한 건 기우였을까요.
어쩐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아 괜스레 울적해지고 맙니다.
학교에서 계약직이라 하면, 보통 시간 강사, 또는 기간제 교사를 가리킵니다. 계약직 교원이 채용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통상 정교사가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가령, 육아 휴직을 신청하거나, 장기 출장을 가게 되는) 상황에서 저희가 고용됩니다. 누군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은 자릴 비운 사람이 다시 돌아오면 맡아 둔 자리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잠시 정교사가 된 듯한 착각, 취업의 기쁨도 잠시, 꿈에서 깨어나듯 우리는 그 자리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약직 교원이란 태생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아, 물론 동정을 받기 위해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어쨌거나 저는 국어과 선생님의 교감 승진으로 생긴 공석을 메우기 위한 강사로 처음 학교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당시 임용을 준비하던 저는 반년짜리 계약을 맺었고, 처음 겪는 학교에서의 반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더군요. 계약 마지막 날, 저는 그동안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등의 말들을 주워섬기며 선생님들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정교사들과는 달리 언젠간 찾아올 끝을 알고 있던 저는, 정들지 말자고, 마음 두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고 또 다잡았지만 다정한 선생님들의 위로와 격려에 꽤나 ‘센치’해지고 있었습니다.
…민망하게도 저는 퇴사하던 바로 그 해, 반 년짜리 기간제로 다시 채용되었고,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마지막 인사가 무색할 만큼 질긴 명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만…
딱 반년 근무했을 때에도 울음을 참기 힘들었을 만큼 이곳은 정말 좋은 선생님들과 훌륭한 학생들이 함께하는 근사한 일터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정이 들어 버려서 떠나는 상황은 상상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나―
결국, 아직도 저는 한낱 계약직일 뿐입니다. 편견 없이 대해주시는 선생님, 착하고 예쁜 학생들 덕분으로 진짜 식구라도 된 양 행복에 젖어서 현실을 잊고 지냈지만, 냉정한 현실 앞에서 저는, 여전히 재계약만 기다리는 일개 계약직일 뿐입니다.
2010년이 넘어가면서 ‘철밥통’으로 불리던 교사들의 고용안정성에도 큰 파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교육부는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해 오던 전례를 깨고, 수시 교육과정 개정을 공표하였고, 대부분의 교과들을 선택과목화하였습니다. 현대 사회는 급격하게 성장하며 또 변화하기 때문에 교육과정 역시 더욱 발 빠르게 수정‧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따지고 보면 필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수시로 바뀌는 교육과정 때문에 학교가 감내해야 하는 고충은 상당합니다.
학교는 교육부가 정한 큰 틀 안에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해가며 자체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데요. 전체 학급 수, 한 학급 당 적정 학생 수, 학생 및 학부모의 수요와 교과별 교원의 티오(T.O)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학교 자체 교육과정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설 가능한 교과목과 교과별 단위 수 등이 결정되는데 매년 빠르게 변화하는 입시 트렌드에 의해 기존 교과가 사라지기도 하고, 기존 구성원들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교과의 개설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덜컥 정교사 한 사람을 뽑는 것이 학교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한 사람의 정교사를 뽑는 대신 여러 사람의 계약직 교원을 고용하게 됩니다. 해마다 갱신되는 계약을 통해 그때그때 수요가 높은 교과의 계약직 교원을 고용하고, 또 교체함으로써 정교사 채용 시 발생하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죠. 그녀는 제가 근무한 지 2년째 되던 해 여름, 2학기 시간 강사로 고용되었습니다. 최근 수능에서 필수 교과로 지정된 ‘한국사’ 수업을 담당할 선생님으로요.
근무하는 동안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민망해할까 싶어, 저는 일부러 더 쨍긋, 그녀를 째려보는 척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쑥쓰러워하면서 꾸뻑 목례를 건네곤 했습니다. 짓궂은 장난에도 재밌다는 듯 웃어주는 그녀가 꼭 여동생 같고 어쩐지 정다운 마음이 들었죠.
알아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1, 2년짜리 계약직 교원을 고용해서 쓰고, 또 상황에 따라 갈아 끼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란 걸요. 입학생의 숫자는 매년 눈에 띌 정도로 줄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턱대고 정교사만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학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한 직장이라는 교집합을 잃어버린 우리는 더 이상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고, 누가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서 식사를 하는 일도 없을 거란 것도 압니다, 다만…, 밥 한 번 먹자는 뻔한 거짓말조차 나눌 수 없다면 우리 사이에 어떤 말이 더 오고 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만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언제 한 번, 꼭 밥 같이 먹어요.”
그래서 저는 그녀와 똑같이 기약 없는 약속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인사치레에 불과하다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라며 비웃을 그 말로 우리의 마지막 인사를 갈음했습니다.
문득 뒷목이 뻐근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건너편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던 그녀 대신, 그녀가 떠나고 없는 배경만 외로이 남아 한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엔 "꼭 같이 밥 한 번 먹어요."하던 그녀의 목소리만 맴을 돌 듯 유난히 짜고 추운 뒷모습만 잔상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빈 자리를 채울 것이고, 남은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풍경에 적응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궁금합니다. 그때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 겹쳐 보이던 제 모습은 저의 착각이었을는지요. 꼭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은 그저 제 기우였을는지요.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가 아니라면, 과연 저는 어떤 말을 남겨야 할는지요. _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