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상담소 Feb 17. 2023

아버지는 탑차를 몰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잖아요?

가령 우측 끝 차선에 뜬금없이 세워진 탑차 때문에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든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2차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저만치 앞에서 탑차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더니 주행 차선 한복판에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니겠어요? 짜증이 잔뜩 난 상태로 꾸역꾸역 옆을 지나가려는데 탑차 운전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어르신 한 분이 내리시더니 뒤쪽에 늘어선 차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수인사를 보낸 뒤, 부랴부랴 물품을 내리더군요. 보조도 없이 혼자서요.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조수석의 아내에게, “저 사람 지금 무슨 기분일까?” 하고 물었더니, “별생각 없을걸?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겠다, 정도?”라며 건조하게 대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몇 년간 탑차를 몰고 다니시면서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내릴 때 따로 주차할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쩔 수 없이 우측 끝 차선, 인도 쪽으로 차를 바짝 붙여 세우고, 후다닥 물건을 내린 뒤 신속히 자리를 떠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상하차 일을 하시는 동안에는 남들이 아직 꿈속을 헤매는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는데도, 마지막 업장을 돌 때쯤이면 늘어난 차량 에 좀도둑처럼 눈치를 보며 길 한켠에 죄스러이 정차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시더군요.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태도로 자신의 일에 임했음에도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아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이기 때문에 어둡고 추운 찻길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늘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내공이 쌓이다 보면 아내의 말처럼 무덤덤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제게는, 선글라스 너머로 난감하고, 미안해하는 그의 표정 상처로 뭉개진 마음이 보이는 듯해서, 쉬이 그들에게 비난을 쏟아내던 지난 세월이 부끄러워지는, 그런 하루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약직의 인사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