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제게 “잘 지내셨죠?”, “식사는 하셨어요?”,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따위의 질문을 하고 제가 대답을 하면 자판을 두드려 제 대답을 기록했습니다.
고객 센터에서 근무할 때 어떤 낯 모를 사람의 말을 들으며 … 아니, 그걸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귓등으로 흘리며 … 아무 의미 없이 자판을 두드리던 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듣고 있다는 표시였죠. 그때 저의 모니터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들이 음절을 이루어 하얀 배경 위에 가득 채워지곤 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의 모니터에도 의미 없는 자음과 모음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을까요? 방금 내게 한 질문들도 사실은 다 가식 아니야? 이렇게 저는 또 쓸데없는 의심을 하고 맙니다.
_선생님, 있잖아요. 세상에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있나 봐요.
_음…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_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제게 돈을 빌려 달라더라구요.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사정은 기구했으나 저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걸 깨닫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저를 덮쳤거든요.
_잘하셨네요. 경계를 잘 지으셔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 말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쉽게 구원할 수 없어요.
_선생님, … 이제 저를 버리시려는 건가요?
선생님은 여전히 자판을 두드리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농담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_선생님, 저한테 칭찬 한마디만 해 주시겠어요?
_음…?
_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럽죠. 어른이 되면서 칭찬받을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정말 제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스스로 이유를 찾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칭찬에 목매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였나.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_충분히 잘하고 계시는데요.
_감사해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네요.
_어, 이거면 되겠어요?
_네, 선생님. 충분히 위로가 된 것 같아요.
병원을 나서자 새삼스러운 햇볕에 손그늘을 만들어 눈부심을 잠시 피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겨울바람이 기분 좋게 양 볼을 스쳤습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오랜만에 외출을 해서인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