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포항에서는 전국체천이 열렸다.
그때 나는 고2였다.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 스케치북 크기의 여러 가지 색깔이 든 카드도 무거운 뿐만 아니라, 더위를 견디기 위한 물과 도시락 그리고 갈아입을 옷까지 바리바리 싼 가방은 여름날에는 정말 힘 빠지게 하는 물건들이었다.
나라와 시에서 하던 전국체전에 우린 하루 두 번 그리고 일주에 세 번 개인 버스비를 내고 땀을 흘리며 거의 한 달을 포항체육관으로 연습을 하기 위해 그것들을 들고 다녔다.
체전이 열리기 며칠을 앞둔 막판에는 일주일 내내 체육관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이제 적당히 순서를 다 꾀고 있던 나는 카드를 들다말다했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2시를 넘길 때는 몸이 많이 지쳐 죽을 지경이었다.
체전을 삼사일 남겨둔 어느 날.
4시쯤 끝이 났던 카드섹션 연습이 그날따라 30분 일찍 끝이 나는 것 같아, 괜히 신이 났고 집으로 일찍 가는 것 같아 엄청 기대가 되었다.
나와 학교 아이들은 학교별 반별로 줄을서 종례를 위해 선생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집을 빨리 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늘의 인솔 담당 선생님은 약간 높은 곳에 올라가 방송용 마이크를 쥐고는 각자가 정해진 자리의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번호 부른 사람은 앞으로 나와!"
한 십여 명이 자신의 번호에 앞으로 나갔고, 그 당시 무섭고 엄하기로 유명한 체육선생님이었기에 불려 나간 애들은 뭔가 잘못된 일이 생김을 짐작했다.
하물며 불려 나가지 않은 애들조차 긴장하며 앞에 험한 인상을 쓰고 있던 선생님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방송용 마이크를 내려놓은 선생님은 그 손에 커다랗고, 누런 몽둥이를 어디에서 들고 나와 당장이라도 13대 1로 싸울 듯 불려 나간 친구들 쪽으로 질질 끌고 왔다.
그런 몽둥이는 학교에서는 본적이 없었고 조폭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봄직한 그런 각목 같은 몽둥이 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체벌을 한 선생님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누구도 그것에 반항하거나, 때리면 안 된다고 하는 다른 선생님조차 없었다.
방송용 마이크가 옆에 있었던 터라 몽둥이로 엉덩이를 몇 대씩 맞는 친구들은 맞는 소리뿐 아니라, 울음소리까지 크게 들렸다.
맞아야 하는 이유는 제대로 순서에 맞춰 카드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왜 똑바로 하지 않았어?"
"왜 안 들었어?"
선생님의 훈계하는 말은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때 나는 걸리지 않은 나를 참 운 좋은 아이라 생각하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거의 반이상을 들지 않은 나는 내 주위에 행운의 여신이 있어 꼭 순서에 맞게 들어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는 생각이었다.
졸업을 하고 포항체육관을 지나갈 일이 있을 때 보이던 그 자리에서 당시 맞았던 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꼭 때려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물론 성실이 들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야단을 치신다면 잔소리라 생각 않고 알아먹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 기분 좋게 즐겁게 카드를 들도록 만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생님이나 체전 운영자는 늘 엄포를 두는 사람처럼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얼음물이라도 하나씩 주며 열심히 하자는 체전 운영자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나라의 체전에 사비를 들이며 참여한다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본다.
반대편 그늘에 앉은 선생님은 더워도 약간만 더웠을 것이고, 아마도 까마귀는 되지 않은 듯했다.
여름 한 달 동안을 다닌 우리는 새까만 까마귀가 되었고 팔과 목에서는 껍질이 벗겨질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지금 같았으면 인권이 나올만한 일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인권보다 나라, 단체, 학교가 우선이었던 사회라 우리는 더했다는 말과 아 그건 약과라고 하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궁금하다.
지금도 카드섹션을 한다는 전국체전과 세계 체전이라는 올림픽에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지 왠지 정말 궁금하다.
지금은 누구든 비도덕적으로 운영비를 줄이려 학생들은 막 굴리는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 그것이 옳은 일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