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젤이나 왁스는 내 남자에게는 단연코 포마드이다.
내 남자는 20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 포마드를 머리카락에 바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딱 2대 8의 가르마에 늘 한쪽이 치우치게 그렇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아침부터 머리 손질에 정성을 들인다.
하지만 딱 요기까지
어느 날 치렁치렁 길어진 머리에 거기다 덕지덕지 바른 젤에서는 국물이 흘러내릴 정도였고 그 모양은 눈빛만 이상하고 야릇하다면 꼭 변태 같은 모습이었으며 징그러운 그 모습으로 마트에 가기 위해 나를 기다린다.
딸은 그 모습을 보고 아빠 머리가 꼭 밥도둑 같다며 놀리지만 그 남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나는 그 꼴이 싫어(아들도 아빠와 비슷하여 피부는 신경을 쓰지 않고 머리는 죽어라고 다듬는다 어유 꼴뵈기 싫구로)남편과 같이 나가기 싫었고 그 꼴을 한 스카이 같은 지아비에게 차마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없어 차분히 말을 해 본다.
"여보 머리 감고 젤 안 바르고 나가면 안 돼?"
"안돼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 다 내려와"
"그럼 자르고 가면 안돼?"
"에이 다음 주에 깎자 춥다"
"아이 머리에 젤 발라서 지들끼리 편먹어 다 갈라져 밑이 하얗게 다 보여 그리고 촌스러..."
"......"
남편은 자존심이 상하고 삐졌는지 더 이상 나에게 말이 없었다.
(이 정도면 삐졌으니 감던지 깎던지 하겠지)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욕을 얻어먹어도 싼 말을 또 서슴없이 한다.
"가자 마트"
"뭐... 니는 내말이 안 들리나?"
"왜?"
"어 니는 내 말이 지나가는 개가 짖는 것 같나 아니면 귀 구녕이 막혔나 머리가 촌스럽다고 했잖아"
"나도 말했잖아 다음 주에 자른다고 그라고 머리카락 힘이 없어 안 된 다했잖아"
남편은 키가 작은 것도 돈이 없는 것도 그리고 반짝반짝 좋은 차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숱이 부족한 것 그것이 아주 열등감에 사로 잡힌듯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열등감인 그 머리카락은 가늘고 숱이 적은 데다 색깔도 검은색이 아닌 검은 갈색 머리이다.
이 모든 것을 곱디 고운 딸이 직진하듯 고대로 닮았고 나는 늘 딸에게 "미안하다 니 애비랑 결혼해서 니를 이렇게 후회막심하게 놔낳네 "라고 말한다.
나는 마트로 가기 싫어 가만히 TV를 보는 척했지만 먹고살아야 하기에 그리고 애들이 서울에서 온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의 차에 실려 그곳에 당도했다.
도착하자 내 남자는 신이 났다.
오늘 애들이 오니 소주 두병 그리고 오늘 애들이 오니 살치살에 꽃등심 각각 한 팩씩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거침없이 카트 안으로 담아 나른다.
다음은 2층 에스컬레이터에 거의 도착하니 얼른 몸을 빼서 다리는 바퀴가 달린 듯 자연스럽게 헤어제품 코너로 직진 그리고는 혹시나 늘 떨어질까 미리 사놓는 1+1 헤어젤을 들고 나온다.
당당하게 들고 나오고서는 괜히 눈치가 보이는지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이거 떨어지기 전에 사놔야 돼"라며 나의 얼굴을 슬쩍 본다.
나는 내 남자를 골려줄 생각을 하며 3층으로 올라간다.
계산대에서 나의 순서는 앞에서 두 번째 기회는 이때다.
"여보 나비(15년 된 고양이 임) 모래가 없는데 하나 사 와요"
아침과는 좀 틀린 부드러운 말로 부탁을 했다.
딸은 어느날 내 남자에게 딱 붙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엄마는 꼭 아빠 심부름시킬 때만 높임말 쓰더라 그렇지 아빠?"
"그래?"
내 남자는 그것을 여태 몰랐던 것이다.
남편은 애견용품점으로 걸어간다.
계산대에서 얼른 물건을 올려 두고 저기 한쪽에 보이는 '미숙하게 선택했지만 다시 제자로 가길 원하는 물건이 모인 곳'으로 그 1+1 젤을 살짝 던져두었고 여유롭게 집으로 향한다.
월요일이 되고 직장을 다닌 이틀간은 그 원수 같은 젤은 찾지 않았다.
3일이 지난후 욕실에서는 무언가 자꾸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통 안으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그 1+1의 마트에서 사 온 젤을 달라는 말을 한다.
"여보 젤 하나 꺼내 줘"
"아 그거 마트에서 계산할 때 뺏어"
"......"
남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고 싱크대 서랍 안에서 가위를 빼서 들고 다시 욕실로 가더니 '나 지금 화났다'를 몸소 보여주듯 문을 꽝하고 닫아버렸다.
이내 가위는 세면대에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고 손가락 몇 개는 겨우 얼마 남지 않은 젤 통의 가장 넓은 부분을 훑고 있는지 첩첩 딸그락딸그락 소리가 나고 조금후 아까 다시 나왔던 그 통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세게...
그리고는 밥식이라 밥은 안 먹으면 안 되는지 오늘도 이쁘게 김치를 넣은 시래깃국을 한 그릇 뚝딱하고 나간다.
뭐 삐져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건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고 아이들조차 그 모습을 싫어하니 고치기는 해야 될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6시 20분이면 오던 내 남자는 단단히 삐졌는지 7시가 넘어도 오지 않았다.
10분만 더 기다려보고 전화를 해보리라 생각하고 토요일에 먹고 남은 내 남자의 애착 삼겹살의 불을 약간 낮춰 두었다.
그러자 이내 느린 터치감의 익숙한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중문에 비치는 남편의 실루엣에 나는 "왔어요?"라고 인사하고 삼겹살의 불을 다시 댕겼다.
남편은 중문을 들어오고 난 후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서 있는 남편이 궁금해 돌아보니 아침의 긴 머리의 변태는 온데간데없고 샤프한 키 작은 남자가 참으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뭐야 누구야 왜 이리 잘생겨졌어?"
남편은 흡사 미안하지만 박 서준의 모습이었고 나의 가슴은 혼자 벌렁벌렁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아침 내가 봐도 머리가 길더라 그래서 자르고 왔다 괴안체?"
"응 너무 잘생겨졌어 여보"
남편도 칭찬을 들어 좋은지 맛나게 먹던 밥은 더 맛나게 잘 먹고 그리고 나에게 의미 심장한 말은 했다.
"젤 이번주는 사제이?"
"......"
"여보?"
"알았어 사줄게"
그리고 남편은 젤을 꼭 발라야 하는 이유를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자신은 비록 자동차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곳의 사장님과 직원은 "문 팀장님 여기가 아무리 험한 일하는 공장이지만 항상 머리를 정갈하고 깔끔하게 오셨어 오시는 손님들이 좋아하십니다."
또
"팀장은 오늘 젤 안바르셨녀요?
어제 집에 안 들어가셨어요?"
"팀장님 어디 아프세요"
"팀장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물어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너무 가는 머리카락에 젤을 바르지 않으면 자신은 꼭 삼돌이 같은 얼굴이 되어 창피해서 나가기 싫다고 하니 아내로선 자연스럽고 후리 하고 내추럴한 것이 좋지만 자신의 머리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젤이라고 하니 바르도록 둬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삼돌이며 어때요 했지만 무엇보다 남편 스스로가 중요하기에 난 그 젤을 용소하기로 했다.
다시 남편의 머리카락은 길어지기 시작했고 이번 주는 진지한 대화를 해 볼 생각이다.
변태가 좋은지 삼돌이가 좋은지에 관해